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마지막
기억을 복기한다는 것
늦은 아침, 전 직장 동료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다른 팀 직원이랑 사귀었다는데 사실이야?'
하하-. 웃음이 난다. 이 회사는 퇴사해서까지 난리구나.
회사에서 난 염문설(?)만 합쳐도 난 정말 희대의 카사노바가 따로없다.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능력자인줄.
길 가다 번호 한 번 따여본 적 없는 나다.(슬프다)
사실이면 어떻고, 사실이 아니면 어쩔텐가. 발 없는 말인데 아직도 달리고 있다니 이제는 신기할 정도다.
이제는 떠난 곳이니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첫번째 에피소드를 쓰고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급기야 밤에는 악몽까지 꿨다. 두번째 에피소드를 쓰려는데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잘 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잊고 산게 아니라 묻고 산거였나보다. 글을 쓰기 위해 당시를 떠올리면서 내내 가라앉아있었다.
글을 읽고 난 후의 반응도 무서웠다. 회사 내에서 트러블이 발생했다는 것에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내 행동에 뭔가가 있겠지 라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글을 써놓고도 올릴까 말까 수백번 망설였다. 후기 글을 쓰는 지금도 망설여진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써보기로 했고 발행까지 무사히 마쳤다. 마구잡이로 엉켜서 마냥 어둡고 칙칙했던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복기한다는 것. 상처와 다시 마주하는 것.
이는 수술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퇴사 후 내 안의 나와 마주하고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상담을 받는 그 때는 괜찮았는데 받고 나오면 한 주 내내 상태가 좋지 못했다. 복용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감이 지속되거나 무기력해지곤 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려 약을 먹었음에도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내원 때 정신과 선생님께 지난 상태를 말씀드렸더니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상담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고려해보라고 하셨다. 지난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수술과도 같아서 외과 수술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안하는 것처럼 섣부른 상담치료는 오히려 자기 연민으로 가득찰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고 하셨다. 나는 자기연민과 자기혐오가 동시에 왔다. 꼭 정신과 선생님의 조언만으로 그만둔 것은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지속되어 상담치료를 중단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무기력감은 아니고 눈물이 찔끔났다. 아직도 아픈 상처였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고 사람에 대한 무지할정도로 기대가 있었던 때여서 더욱 아팠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글로 쓰면서 뒤범벅된 시간들을 반듯이 정렬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덤덤해질 기억인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다시 마주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