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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21. 2023

시간으로 돈을 사는 삶 #1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오래된 친구들과 간만에 약속이라도 잡으려치면 항상 누군가는 돈이 없고 다른 누군가는 시간이 없었다.  지갑이 가벼운 사회초년생 시절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정확히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타인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어져버린 것 아닐까.



근속년차가 늘어날수록 작고 소중한 월급은 조금씩이나마 올라갔고 제법 한 끼 배달 정도는 금액 상관하지않고 선택할 수 여유가 비로소 생겼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통보를 가장한 연봉 협상을 거치고 변하는 숫자들을 보며 처음엔 마냥 좋았고 뿌듯하기만 했다. 근로계약서의 숫자가 내 가치의 증명처럼 느껴졌다. 숫자가 오르면 오를수록 이 회사에서의 내 가치는 오르는 것 같은 어리석은 착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시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돈이 없는채로 시간을 버티는 것보단 돈이라도 있고 시간이 없는게 백배 낫지 했던건 오만한 착각이었다. 어느 덧 나는 시간으로 돈을 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시간으로 돈을 사는 삶. 퇴사를 결심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다.



입사 후 얼마지나지 않았을 땐 없는 돈으로 시간을 버티려니 그게 고단했다. 성과급이 따로 없어 명절수당이 들어오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고는 앞자리수가 바뀌었다. 월급날 룸메이트에게 밥 한끼 사줄 정도는 되었다. 인사평가 S등급을 받은 해엔 실수령액에 대한 체감이 달라졌다. 회사 근처로 구옥이지만 탁 트인 집으로 이사도 했다.



그리고 찾아왔다. 돈은 있지만 나에게 쏟을 시간이 없는 순간이.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부서이동과 함께 월급도 상승했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자 삶의 질은 오히려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좋아하던 운동도 의무처럼 느껴지고 하기 싫었다. 운동을 거르는 날이 지속되자 무기력은 더 심해졌다. 바디프로필 이후로 운동으로 삶의 추를 유지해가고 있었는데 운동마저 거르니 저울은 급격하게 나쁜쪽으로 기울었다.



들쭉날쭉한 퇴근시간과 함께 일과 나 사이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집까지 일을 끌어오는 날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꿈에서도 일을 하곤 했다. 퇴근이 일정치않으니 애써 돈을 지불한 PT를 가지 못하게 되고 한 번 가지 못하니 두 번 안가는 것은 더욱 쉬웠다.



다시 술을 가까이 하기 시작하는 날이 늘어갔다. 처음엔 힘들어서였는데 나중엔 힘들어서 술을 먹는지 술을 먹어서 힘든건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반복됐다. 왠지모를 회의감이 들었다. 삶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고 도무지 뭘 위해 사는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으로 돈을 사는 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가 퇴사를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퇴사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조차 생경했다. 평생 퇴사는 없었을 것처럼. 퇴사를 하려니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들이 모두 나를 짓눌렀다. 퇴사하게 되면 대출 이자, 카드값, 고민없이 먹고 쓰고 타고 다녔던 것들이 전부 다 무거운 짐이였다.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홀랑 다 써버리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상상까지 했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내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좋지 않은 근태로 이어졌다. 당일 연차와 반차를 쓰기 일쑤였고 유연근무라지만 엄연히 정해져있는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건강상태도 심각했다. 밥을 먹으면 구토를 하고 종국엔 알 수 없이 온 몸이 가려운 증상까지 찾아왔다. 알러지 검사를 해도 별다른 건 없다는데 밤마다 온 몸이 가려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출근을 하는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건 지인들이었다. 삶의 많은 우여곡절속에서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준 몇 안되는 그들은 어서 하루빨리 그만두라며 인생은 길고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보다 더한 위기는 많았고 그 위기를 헤쳐나가건 내 자신이었다는걸 일깨워줬다.




희망가득한 진심어린 응원을 받고 나니 비로소 결심이 섰다. 그리고 그 날 팀장님께 사직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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