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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22. 2023

시간으로 돈을 사는 삶 #2

선택할 자유




사직의사를 들으신 팀장님은 순순히 알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만두고 평일과 주말당직(팀 특성상 당직이 있었다)을 아르바이트로 해줄 수 있냐는 해괴한(?) 제안을 하셨다. 당직을 아르바이트로 뛸 정도의 상태가 됐으면 그만두지 않았을거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역시 그렇겠지 하면서 씁쓸해하시는 팀장님의 모습에 더 황당했다. 내가 당연히 수락했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노비를 자처했다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아르바이트 제안까지 받고 나니 하루라도 더 빨리 그만두고 싶어졌다.




여느때와 같이 일을 하고 짐을 정리하면서 드디어 퇴사 당일이 되었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퇴사를 하면 인생 망하는 줄 알았다. 심신상태야 어찌됐든 내가 누리는 이 경제적 안정성을 포기하는게 맞는 일인지가 계속 선택을 하는데 발목을 잡았다. 두번째는 경력과 나이였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물경력처럼 보이는 이 경력으로 이 업계를 떠나서 과연 재취직을 할 수 있을까 가 걱정이었다. 응원해준 이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섣불리 결정한 것 아닌가 하는 조금 삐뚫어진 마음도 들었다. 걱정은 많았는데 이상하게 선택에 대한 후회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 예정대로 퇴사를 했다.






퇴사한지 4개월차가 되는 지금, 선택은 내리고 그에 따른 대가는 치루면 된다는 마음이다. 



우선적으로 포기해야할 것들은 역시 경제적인 것들이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비용을 줄이기.

배달-편의점-택시로 이어지던 소비로 연명하던 의식주는 비용을 줄이면서 오히려 건강한 생활패턴으로 변화했다.



첫번째로 매일 장을 봐 매 끼니를 차려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집근처 마트의 할인코너 하이에나다. 할인 상품이 나올 시간에 맞춰 그 앞에서 기웃기웃거린다.  

두번째로 왠만한 거리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의아할 수 있지만 회사 다니던 시절엔 야근 혹은 술 한잔 걸치고 택시로 귀가하는 날들이 많았다. 퇴사를 앞둔 막바지에는 출근조차 택시에 실려서 겨우겨우 출근했다. 덕분에 퇴사 직후에는 가까운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 계단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몸뚱이를 얻게 되었다. (지금은 가뿐하다) 

세번째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구매는 하지 않게 되었다. 스트레스 받으면 자잘한 물건이나 옷을 마구잡이로 구매하던 버릇도 저절로 고쳐졌다. 

이 세가지만으로도 비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전만큼 편하게 살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가벼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선택할 자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여유롭게 준비하고 어떤걸 해도 되었다. 운동,집안일, 독서, 마트 장보기, 아니면 그냥누워서 뒹굴거리기 등 색칠공부하듯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메꿔간다.


전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진 않지만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정말 만족도 최상이다.



'선택할 자유', 퇴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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