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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19. 2023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1

소문의 시작.

  07:00 A.M


  숙취로 으깨지는 머리를 붙잡고 습관처럼 휴대폰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벼락같이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오늘부터 백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케케묵은 씁쓸함이 마음 한 켠에 맴돈다.

  

  시작이 언제였을까.


  얼굴도 모르는 이사의 차에 탔다부터 일까, 새로운 팀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 부터 일까.


  어느쪽이든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는 나고 발 없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는 걸 몸소 체험하기엔 충분했다. 신규 편성된 팀에 배정받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 적응하기도 바쁜 나날들이었다. 고객센터 시절부터 함께 해온 동료들과 제법 화목하게 지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내가 신규 팀의 팀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아니냐고 제법 믿고 의지했던 여직원이 남직원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는 것이다. 당시 팀장과 그 남직원은 술자리를 가지는 중이었어서 그 소문을 팀장도 알게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여직원은 계속해서 나도 그자리에 함께 있는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자발적으로 야근 중이었다. 


  원래 업무 이외에 데이터를 정리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그걸 내가 맡게 되었다. 아무도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데이터라 어떻게 정리를 해야하는지 막막하기만 해서 팀장님께 자주 여쭤본게 화근이었나. 머리가 캄캄했다. 따로 업무를 배정해준게 특혜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두번째 전화가 왔다. 이번엔 팀장님으로부터다. 어떤 직원이 내가 퇴근 후 이사님의 차에 탔다는 걸 봤다는거다. 그 분이 누구냐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얼굴은 당연히 모르고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분이었다. 당시 2년차였는데 타팀원들이나 임직원분들에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원체 주변에 관심이 없다.) 


  그 때부터인가. 밤이 되어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밥을 먹으면 토하기를 반복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들과 끼니조차 소화해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자 두 달만에 체중은 십키로가 줄어있었다. 감히 표현하자면 악플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연예인들의 심정을 여실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억울했다. 한없이. 그러나 말할 곳이 없었다. 모두 내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아니라고, 다 소문일뿐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썩어들어가는 듯했다. 


  캐물었다는 여직원을 안다. 평소에 집안사정과 속내도 가끔 털어놓을 만큼 제법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매일 밤을 번뇌했다. 사실은 다 알고 있다고, 당신이 이 소문의 진원지라는 것을. 그러니 정정해달라고. 수많은 밤을 허공에 대고 화를 내기도 하고 부탁을 해보기도 하면서 보냈다.


  시들어가는 영혼과는 다르게 살이 빠지니 외적으로는 더 나아보였나보다. 소문을 낸 주동자와 그의 무리들은 나와 마주칠 때면 태연하게 왜이렇게 말랐냐, 예뻐졌다 등의 소리를 해댔다. 나는 그 곳에서 웃었다. 나를 이 지옥에 몰아넣은 사람들 앞에서 하하 그런가요- 멋쩍은듯 웃으며 대꾸했다. 속은 더욱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전면 승부를 할지 이대로 모르는 척 넘어갈지 고민했다. 결론은 모르는 척 넘어가는 거였다. 일단 악의적인 소문을 냈다면 원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나는 그 원하는 바가 어떤 것이든간에 달성하게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는 영향력의 차이였다. 근속년차에 비해 회사 내에 아는 사람도 친분이 없던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비유하자면 여왕벌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와 정면 승부를 한다?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점차 말수는 적어졌다. 자리도 구석으로 옮겨 입 다물고 일만 하다가 오기를 반복하며 일 년이 지나갔다. 



그렇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 갈데 없는 마음을 점차 술에 기대기 시작하는 날이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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