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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족, 편의점에서 한 끼 식사를

트렌드로 떠오른 편도족과 만족스러운 맛을 자랑하는 편의점 도시락

by 식작가

솔직하게 말해서 난


시작부터 솔직해져보자면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는 더욱 그랬고 지금도 썩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들어가도, 확실한 콘셉트를 가져도, 메인 반찬들이 훌륭해도 편의점 도시락은 편의점 도시락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반찬과 밥이 모두 균일한 온도를 가지고 비슷한 맛을 낸다. 불고기 도시락을 먹어도, 돈까쓰 도시락을 먹어도 맛을 내는 방식이 모두 비슷하게 느껴져서 내 식욕을 크게 자극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이 직접 만든 음식과 좁혀질 수 없는 맛의 격차가 있다. 그래서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종종 사 먹는다. 편의점 도시락이 잘 어울리는 날이 필경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편의점에 들어가서 어떤 도시락을 먹을까 고심한다. 고기가 많은 게 좋을까, 한식 위주의 도시락이 좋을까. 어떤 것이 더 먹을만할까. 나는 왜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까.


선호하지 않음에도 사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자취를 하면서도 한 끼를 제대로 차려먹고 싶어서 요리를 곧잘 했고 그것이 딱히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 모든 과정이 귀찮아질 때가 있다. 남이 한 음식을 먹고 싶고, 집밥처럼 다양한 반찬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나가서 먹기는 부담스럽고 집에서 편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편의점 도시락은 아주 괜찮은 선택지가 된다. 배달 음식도 있지만 그것을 시키고, 포장을 풀어서 다 먹고 정리하는 번잡스러운 과정도 귀찮을뿐더러 무엇보다 비싸다. 그냥 슬리퍼 끌고 집 앞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는 것이 더 간편하다. 반찬 하나하나에 지극정성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냥저냥 먹을만하고 나름 다양한 맛이 있는 것 같으니까. 우리 사회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이른바 편도족이 늘어난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믿는다.




편의점 음식 = 불신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이 첫 월드컵 원정 16강을 돌파했던 2010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 당시 편의점 음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맛'과는 거리가 살짝 있었다. 위생 관련해서도 이슈들이 있었지만 편의점 음식의 맛과 양은 늘 도마 위에 올랐었다. 심각하게 부실한 내용물과 처참한 맛. 편의점 음식의 대명사였던 삼각김밥도 내용물 논란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일반 김밥은 더 심했다. 편의점에서 사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편의점 도시락을 비롯한 그 당시 얼마 되지 않았던 간편식들도 다를 바 없었다. 오죽하면 편의점 음식의 광고 모델이었던 유명인의 이름이 양이 적고 맛이 없는 것의 대명사가 되었겠는가. 그 시절 편의점 음식은 확실히 굶는 것 다음의 차악이었다. 정말 먹을 곳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것이 편의점 음식이었다.


그 당시 편의점 음식의 주 소비층은 주로 10~20대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고 시간도 쪼개서 써야 하는 학생들이 주로 애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학원이 끝나고 종종 학원 1층에 있었던 편의점을 이용했고 가끔은 친구들과 놀고 나서 출출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번듯한 식당에 가서 먹기에는 어린 나이, 편의점은 좋은 식당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식당을 부모님들은 못마땅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생도, 맛도, 품질도 모두 의심이 갔다. 그리고 그 의심은 대게 맞아떨어졌다. 내 자녀가 조금 더 좋은 것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 결국 그 마음은 편의점 음식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되었다. 이것은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먹을 것에 대한 불신은 브랜드 이미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다가왔다. 먹을 것에 진심인 한국인들에게 먹을 것으로 장난을 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편의점들은 이제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누가 편의점 음식이 별로래?


한국에 상륙한 최초의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이었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해외의 많은 프랜차이즈들이 국내로 들어온 결과 중 하나였고 국민 소득이 상승했음을 알려주는 단초였다. 편의점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물건이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24시간 문을 여는 상점이라니. 게다가 각종 잡화부터 식료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그 이후로 많은 국내 기업들이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의 3강 체제에 이마트24가 점유율을 넘보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외식업이 아닌 엄연히 유통업인 편의점. 유통업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시도되었고 점점 편의점 브랜드들은 차별화에 애를 먹기 시작했다. 24시간 영업에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졌고 유통 기술은 발달할 대로 발달했다. 엇비슷한 편의점 음식을 팔았고 모두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유통업인 만큼 제품 그 자체에서 특별함을 주기가 힘들었다. 결국 혈을 뚫어줄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때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편의점 음식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언제부턴가 편의점 음식을 먹으면서 배를 채운다는 느낌보다는 그 음식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생겼다. 절대 사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던 편의점 김밥은 어느새 푸짐한 속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외주 업체에서 주로 납품을 받았던 것에서 PB제품, 그러니까 자체 제작 제품을 서서히 도입하면서 품질에 대한 신경을 썼으며 확실한 콘셉트를 들고 효과적인 마케팅을 했다. 소비자들은 특정 편의점 음식을 사기 위해 특정 브랜드의 편의점을 일부러 방문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GS25의 김밥을 좋아해서 김밥을 사기 위해서는 굳이 GS25를 찾아간다. 이런 나와 같은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편의점 브랜드들은 음식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전통적인 김밥, 삼각김밥, 도시락부터 샌드위치, 샐러드, 각종 HMR 식품과 PB 라면, 과자들까지, 질 좋은 제품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이제 편의점 음식이 불량식품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기어코 우리가 편도족이 되기까지


편의점 음식의 상승은 지칠 줄을 몰랐다. 지상파 방송과 콜라보를 하면서 자체 간편식 제품군을 꾸준히 출시하고 마케팅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는가 하면 타 기업들과의 콜라보를 진행해서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마침내 '대란'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인기 제품을 탄생시켰고 제품 하나를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돌아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비자는 기대감에 부풀어 편의점을 방문했고 브랜드 이미지가 상승했다. 이 선순환은 반복되어 많은 기업들이 콜라보와 편의점 유통 라인을 원했고 풍성해진 제품군으로 다시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 '편세권'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게 도시에는 거리에 수많은 편의점들이 들어섰고 이들은 해가 진작에 떨어진 어스름 새벽,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되었다. 그리고 외식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편의점들은 다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이 맞물리면서 외식 물가가 치솟았다. 밖에서 섣불리 음식을 사 먹기가 꺼려졌고 덩달아 장바구니 물가도 상승했다. 무섭게 오른 물가에 사람들은 편의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편의점 물가도 오른 것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밥 한 끼 때우는 값이 만원을 넘지 않았다. 도시락 하나면 밥과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는 미니 백반이나 다름없었다. 이 가격에 이 정도의 가성비를 뽑을 수 있는 음식점이 잘 없었다. 게다가 과거처럼 모두가 우르르 몰려가 점심을 먹는 시대도 지나갔다. 각자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다. 학교와 회사를 막론하고 점심을 가볍게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사람이 늘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원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없었다. 어쩌다 한번 정도는 그럴 수 있었지만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편도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훌륭한 대안이 되어 당당히 메뉴 리스트에 올랐고 맛과 양, 가격을 모두 챙긴 가성비 메뉴가 되면서 편의점 도시락의 시대가 열렸다.




편도족은 끈질기게 살아남을까


불과 몇 년 전 욜로를 외쳤던 우리는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무려 지출을 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이 등장한 것이다. 매우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챌린지에 도전하는 20~30대는 생각보다 많았다. 물가가 얼마나 상승했고 그만큼 우리의 삶이 얼마나 팍팍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사치, 과소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지출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도 못하겠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적당한 선에서 음식에 대한 소비를 지향한다. 편의점 도시락이 꽤나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편도족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 점심시간에 편의점에 가면 도시락은 물론이고 김밥 등의 간편식도 전부 매진된 것을 보면 정말 시대가 변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편의점 음식이 이 정도로 성장했고 물가가 무섭게 올랐구나. 진짜 편의점이 식당을 대체하고 있구나.


편의점은 위기에 빠진 브랜드를 구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고 결국 외식 물가 상승이라는, 그들로써는 기회를 만나 그 기량을 만개했다. 편의점의 신제품은 쏟아지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선택지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무지출 챌린지와 같이 편의점 음식값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물가 상승의 영향을 마냥 피해만 갈 수는 없는 편의점 음식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 것은 가격 대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격이 올라가서 우리의 심리적 선을 넘어버리면, 그마저도 비싸다고 인식되면 손길을 끊을 수도 있다. 그에 대비하여 불필요한 겉치레를 없애고 정말 도시락의 핵심만을 담은 제품을 구성해도 좋을 듯싶다.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과거에 비해 상승한 퀄리티에 환호한 우리지만, 아무리 프리미엄 트렌드가 외식 시장을 휩쓸었다지만 어디까지 편의점 음식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무작정 퀄리티 상승을 바라보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들의 강점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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