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식좌를 위한 나라는 없다?

소식좌들을 공략한 식품, 외식 업계에 대하여

by 식작가

잘 먹는 것이 재능인 시대


먹방.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해외에서조차 먹방을 그대로 Mukbang이라고 번역할 정도로 K-먹방은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알았을까. 많이 먹는 것이 재능이 될 줄. 대식가들, 그중에서도 상식을 뛰어넘은 대식가들은 시대를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먹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자신의 유명세를 알릴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 먹방이 유행하기 전,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이른바 챌린지 대회가 유행했다. 햄버거 많이 먹기 챌린지, 핫도그 많이 먹기 챌린지와 같은 많이 먹기 챌린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푸드파이터를 가리는 대회들이었다. 하지만 이 대회들을 두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음식을 한계까지 먹는 미련한 사람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런 푸드파이터, 대식가들이 박수를 받기 시작했다. 맛깔나게 모든 음식을 소화하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갔다. 먹는 것이 곧 재능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인은 조상 대대로 많이 먹어왔다. 조선에 방문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인은 무지막지하게 먹어치우는 사람들이었다. 산더미 같이 쌓인 머슴밥을 매 끼마다 먹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선을 넘을 정도로 과하게 먹고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먹음직스럽게, 맛깔나게 먹는 것은 미덕 중 하나다. 심지어는 상견례와 같은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서조차 복스럽게 잘 먹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쏟아낸다. 그와 반대로 밥상 앞에서 밥을 깨작거리는 것은 우리네 밥상머리 교육에서 가장 먼저 지적받는 것 중 하나였다. 그만큼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에서 먹는 양은 굉장히 중요했다. 한국 방송가에 먹방 열풍이 불었던 때,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많이, 맛있게, 잘 먹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당연했다. 누가 TV에 비친 연예인이 맛없게 먹길 바랄까. 애초에 먹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욕을 자극하고 대리 만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런 먹방에서 소식(小食)이라니, 그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가 되었답니다


근 오 년 간 한국의 미디어 시장에서는 각종 먹방 콘텐츠가 화수분처럼 쏟아졌고 정말로 없는 것이 없었다. 별별 음식을 별별 방식으로 먹었다. 그러다 먹방은 잘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누군가 깨부수었다. 대식가의 반대말인 '소식좌'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소식좌는 말 그대로 정말 적게 먹는 사람들을 말했다. 일반인 기준, 1인분 정도 되는 음식량을 한 끼에 먹지 못하고 금세 지치는 사람들이었다. 대식가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대식가들의 세상에서 꼭꼭 숨어 살았는지 곳곳에서 자신이 소식좌라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방송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인스타에서도 소식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먹지 못하는 것. 그것 자체로 콘텐츠가 되었다. 그들을 대식가와 붙여놓으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대식가와 소식좌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재미와 흥미를 뽑아내는 콘텐츠들이었다. 너무 잘 먹는 것에 신기해하던 사람들은 아주 적은 양을 먹고 배불러하는 모습도 신기하게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다름의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음식을 깨작거리면서 소량만 먹는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와야 했다. 이제 그것과는 대비되게 자신이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남들과 달리 적게 먹는 것을 당당히 밝힐 수 있다. 사실 당연했다. 많이 먹는 사람도 있고 적당히 먹는 사람도 있는데 적게 먹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음지에 숨어 있던 소식좌들이 양지로 나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런 소식좌들을 겨냥한 것만 같은 1인분, 혹은 반인분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모두 혼술, 혼밥이 대세가 된 가운데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다는 미명 하에 출시되었다. 그리고 소식에 대한 인기가 상승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환대를 받은 것이다. 소식좌들이 콘텐츠화 되어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그런 1인분, 반인분 제품이 나왔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히 이전부터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출시된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 빛을 이제서 확실히 보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소식좌들을 위한 제품이 되어버렸네


많이 먹는 한국인들 덕분에 한국에서 출시되는 식품들은 대용량이었다. 1인 가구보다는 핵가족, 그리고 그것보다도 대가족이 더 많던 시절에는 식품의 양은 굉장히 중요했다. 소득도 높지 않던 때라 싼 값에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어야 했다. 애초에 대용량으로 출시된 제품은 물론이고 기존의 양을 증량한 제품들이 잘 나갔다. 대용량과 증량이 필승 마케팅인 시절이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대용량과 증량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을 다 먹을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적정량이 담긴 제품을 찾았다. 소포장된 제품은 대용량 제품에 비해 같은 양 대비 오히려 비싸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올라간 덕분에 소비자들은 무작정 양으로만 제품을 판단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평가 요소들이 있었고 적당한 양은 그 평가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가격이 올라가고 오히려 양은 줄었음에도 사람들이 소포장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다. 과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당한 것을 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들을 호구라 부르지 않고 소비습관이 다르다고 부른다. 소식좌가 양지로 나온 것처럼 말이다.


맥주를 원 없이 쌓아놓고 마시는 것. 내 작은 소망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내 소망과는 반대되는 제품이 몇 해 전 출시되었다. 바로 한입 캔 맥주.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355ml 캔맥주는 너무 배가 불러서 다 못 마시겠다고. 항상 맛있게 마시고 두세 입 정도가 남는다고. 더군다나 캔맥주는 한번 개봉하면 다 마셔야 하니 그것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엄마와 같은 소비자들을 위해서, 적당히 가볍게 즐기고 싶은 소비자들을 위해서 용량을 대폭 줄인 250ml의 맥주가 출시되었다. 물론 소식좌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에 출시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소식좌가 유행하면서 덩달아 재조명되기 시작한 제품이다. 첫 입이 그 무엇보다 맛있는 맥주. 딱 첫 입의 감동만 주기 위해 만들어진 한입 캔 맥주. 용량이 적은 소비자들을 위한 한입 캔 맥주.


한입 캔 맥주 말고도 더 독창적인 저용량, 소포장 제품이 있다. 바로 편의점 미니 도시락. 원조는 일본 로손 편의점으로 한 직원이 10년 가까이 출시를 제안했던 제품이다. 구성품은 밥과 소시지가 전부다.. 라면과 곁들여 먹기 좋은 도시락이라는 콘셉트로 나왔다. 라면과 일반 편의점 도시락을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는데 또, 라면과 도시락을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해 출시했다고 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비자들의 간지러웠던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준 것처럼 반응이 좋았다. 양이 적은, 정말 소식좌들은 이 도시락 하나로도 충분했고 라면만 먹기에는 아쉬웠던 소비자는 도시락을 하나 얹어서 사는 것으로 해결이 됐다. 미니 도시락의 성공을 눈여겨본 국내의 편의점 업체들은 이 콘셉트를 차용하여 비슷한 구성으로 미니 도시락을 출시했다. 사실 일본에서만큼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너무 일본의 콘셉트를 그대로 베껴온 것 아니냐는 비판부터 양은 적더라도 알찬 구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다소 부실해 보이는 듯한 아쉬움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편의점 3사가 앞다퉈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선천적 소식좌? 후천적 소식좌?


유튜브나 방송에 나오는 소식좌들. 그들은 정말 극단적으로 소식을 하는 편이다. 한 줌의 음식으로 배불러한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엄청난 양을 먹어치우는 대식가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모두 양 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가장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일상에서 한 두 명 마주치는 정도가 전부다. 대게 우리가 알고 있는 소식가들은 일반인 기준에서 약간 덜 먹는 수준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왕왕 있지만 말이다. 앞선 제품들이 정말로 소식좌, 혹은 소식가들만을 겨냥한 것일까.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음식에 흥미를 잘 느끼지 않는 사람들만을 공략하기에는 그 시장이 너무너무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을 겨냥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소포장, 저용량 제품들은 앞서 말한 '진짜' 소식좌들과 함께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가 소식좌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소식좌가 되고 싶었고, 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길고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음식을 멀리한 최초의 세대다. 건강과 미의 목적으로 비만에서부터 멀어지고자 했고 그 방법 중 하나로 식사량을 줄이는 것을 택했다. 식단 없는 운동은 단순한 노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식단은 중요해졌다. 건강하게 먹기 위해 노력했고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먹는 양을 줄이고자 했다. 자발적으로 소식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일반적인 1인분보다 더 적게 포장된 제품을 찾았다. 이렇게 자발적인 소식좌들과 기존에 원체 먹는 양이 적었던 소식좌들이 합쳐져 시장이 형성되었다. 기업들은 20~30대에서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다이어트와 자기 관리를 놓치지 않았다. 다이어트 식품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기존의 제품에서 양만 줄인 것들도 출시되었다. 제품 앞에 '미니'라는 수식어가 잘도 따라붙었다. 이런 소포장, 저용량 제품 시장은 어찌 보면 자발적인 소식좌들 덕분에 형성될 수 있었다. 꼭 매 끼니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적게 먹고 싶은 소비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많은 20~30대들은 잠재적인 소식좌들이다. 그런 잠재적인 소식좌들 덕분에 이 시장 역시 잠재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식좌를 위한 나라는 있다


정확히 말하자.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소식좌가 트렌드인 것이지 외식 시장에서는 트렌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국내 외식 시장에서의 트렌드는 대식이다. 음식을 파는 산업에서 음식을 적게 파는 것이 트렌드인 것은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소수의 진짜 소식좌들을 제외하면 인간은 대부분 식욕이라는 기본 욕구를 가지기 마련이다. 자발적인 소식좌들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식욕을 억제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소포장, 저용량 식품 시장은 한계점이 명확하고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타깃 고객도 많지 않고 그마저도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소비자가 제품의 로열티를 가지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미니 제품들이 출시되었다가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들도 아직은 미니 제품에 대해 확신을 품지 못하는 편이다. 맛과 가격, 구성적인 측면에서 의문 부호가 붙는 것은 사실이니까.


미니 제품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기업은 출현하기 힘들다. 이것을 주력 상품으로 밀고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장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식의 나라에서 소식 제품이 판매되기 작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비친 소식좌들은 그 나름대로 적게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낮췄다.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저렇게 적게 먹을 수 있지?"에서 "사람은 다 다르니 그럴 수 있지"로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바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수록 우리의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 취향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음식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온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 전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외식 시장 전체의 모양이 변할 수 있다. 소포장, 저용량 시장은 한계점은 존재하지만 아직 그 한계점에 도달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음지의 소식좌들이 고개를 들 때가 됐다. 우리도, 시장도 소식이는 취향을 존중해주기 시작했다. 소식좌를 위한 나라는 분명히 있다. 이제부터, 앞으로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