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정할만한 맛집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 확실한 것은 미슐랭이라는 브랜드가 음식에 저명한 일종의 언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타이어를 만들어 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소리다. 맛집을 선정하고 별점을 주는 미슐랭. 암행어사처럼 스윽 와서 음식을 먹어보고 별점을 메기고 해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심사를 한다. 미슐랭에 등재된 식당은 꾸준한 검증을 받으며 수준이 떨어진다 싶으면 가차 없이 자격을 박탈당한다. 여러 비판점이 존재하지만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노하우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식당을 판단하고 꽤나 까다로운 기준을 통해 맛집을 선정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은 물론 외식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지구 반대편 타이어 기업이 발간하는 가이드북이 한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미슐랭이 가지는 그 무게감이라는 것을.
그들은 1~3개의 별과 빕구르망이라는 단계로 가이드북에 등재될 식당을 선정한다. 별이 많을수록 음식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빕구르망은 가성비 있는 식당이라는 것을 공인해주는 수단이다. 미슐랭에 등재되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창출하고 식당은 자랑스럽게 증표를 걸어놓는다.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맛집이라는 증거가 되므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 괜히 내가 가려는 식당이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된 맛집이라고 하면 달라 보인다. 내가 이만큼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는 생각이 들고 무언가 다를 것 같다. 별이 달린 식당은 뭔가 큰맘 먹고 가야 할 것 같고, 특별한 날에 가고 싶어 진다. 사치스러울 것 같고, 혹여 생각보다 별로라고 생각되면 내 입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권위란 그런 것이다. 나를 먼저 의심하게 되는 것. 미슐랭은 권위가 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소설에서 영화 평론가로 나오는 등장인물은 이런 말은 남겼다. 천만 영화가 천만인 이유는 이전에 삼백만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뜯어보면 고개 끄덕여진다. 관객수가 많은 영화는 명작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그만큼 오락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관람했으니 나도 봐야 할 것 같고 관객수 그 자체로도 마케팅이 된다. 관객이 관객을 부르는 현상이 벌어진다. 미슐랭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미슐랭에 등재되었으니 꼭 먹어봐야 할 것 같고, 맛이 있을 것 같다. 안심이 되고 설령 입에 맞지 않더라고 내 탓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곳은 미슐랭 맛집이니까. 손님이 손님을 부르게 된다. 그 집을 가는 이유가 미슐랭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미슐랭 맛집이 맛집인 이유, 그것은 미슐랭에 선정되었기 때문.
나는 고백하자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없다. 내가 가기에는 너무 비싸고, 고급지고, 그 분위기를 느낄 자신이 없다. 대신 빕구르망에는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빕구르망 식당에는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정말 그들 말처럼 합리적인 가격에 합리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빕구르망 식당에 가면서 가끔 생각한다. 이게 진짜 미슐랭에서 선정한 맛집이 맞나? 합리적인 가격은 맞는데 합리적인 음식인지는 잘 모를 때도 있다. 합리적인 가격이어서 맛도 동시에 합리화가 되어버린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입에 맞지 않고, 그냥저냥 먹을만한 음식점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밖에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 있는 손님들과 바글바글한 테이블을 보면 갸우뚱했던 고개도 어쩔 수 없이 끄덕여진다. 결국 나는 미슐랭이라는 권위에 눌려버린 것이다. 사실 내 입맛에는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는데. 사람의 입맛은 모두 다르니까.
맛집은 맛있는 집의 준말로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우리가 하루에도 수차례 애용하는 단어다. 하지만 맛있는 집은 정말 맛만 있으면 될까. 이전에는 그랬다. 제대로 된 외식 시장이 형성되기 전, 식당이 성공하려면 맛만 있으면 됐다. 사람들이 지불하는 음식 값은 오롯이 그 음식을 먹는 대가였다. 사장님이 불친절해도, 위생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저 맛있으면 장땡이었다. 하지만 서구권의 프랜차이즈가 도입되고 잘 정돈된 서비스라는 것이 한국에 도입됐다. 그즈음해서 국민 소득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맛있는 음식을 기분 좋게 먹고 싶다는 욕구가 국민들에게 들불처럼 번졌다. 많은 식당들이 맛에만 안주하지 않고 서비스와 인테리어, 분위기와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 학교 앞에 있는 아주 오래되고 허름한 닭 한마리집을 간 적이 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이었고 기가 막한 맛이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거의 1시간이 걸렸고 식당 곳곳에는 관리가 부족한 흔적이 보였다. 식기류는 우리가 모두 물을 묻힌 휴지로 한 번 닦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그쪽을 지날 일이 있어 기웃거렸는데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마 내가 먹은 최고의 닭요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식당을 추천할만한 맛집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나는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받는 서비스와 인테리어, 분위기와 위생도 중요하다. 맛집의 조건 중 첫 번째는 맛있는 음식이 맞지만 맛있는 음식만으로는 맛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의 맛 하나만으로 평가받기에는 외식이 너무 복합적인 산업이 되어버렸다. 서비스, 인테리어, 마케팅, 입지 등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져 압도적인 맛으로 승부를 보는 곳도 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을 활용하여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곳들도 많아졌다. 음식 그 자체로만 식당을 평가하기에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음식의 수준이 떨어지는 곳은 맛집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음식만 맛있다고 그곳이 다음에도 또 방문하고 싶은 맛집이 되지는 않는다. 아마 우리가 미슐랭에 소개된 맛집을 갔을 때 실망한 적이 있다면 그 때문은 아닐까 싶다. 뭐, 아니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무리 대단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신뢰도를 바탕으로 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미슐랭은 레스토랑이 선정된 이유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가이드북에 레스토랑을 등재하고 별점을 매겨 통보하는 것으로 끝이다. 이 신비주의는 미슐랭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결국 주된 비판점이 되었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그 기준대로 평가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 미슐랭이 가지는 의미가 요식업계에서는 굉장하기 때문에 발표 만으로도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종사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래서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기준대로 평가하는지. 식당의 음식만을 보고 평가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등재가 되고, 별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거의 대부분이 파인다이닝 혹은 오마카세와 같은 고급 레스토랑이다. 미슐랭의 음식 평가 기준에 들어서 많은 별을 받으려면 그만큼 비싸고 고급진 과정의 조리가 필요하고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객단가가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추구해야만 한다. 필연적으로 음식의 맛을 높이려면 그 외의 것들에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미슐랭은 어쩌면 이것을 애진작에 간파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몇몇 돌연변이 같은 식당이 아니고서야 파인다이닝이라는 서구식 주류 외식업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미슐랭의 맛집은 대게 비슷만 외관을 한 식당들의 차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진짜 음식만 보는 것이 맞는지, 객관적인 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인지, 다양성을 인정하는지, 국적을 차별하지 않는지. 며느리도 모르는 미슐랭 선정 비법이니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미슐랭의 제1원칙인 신비주의를 벗을 수 없다면 차라리 기준을 추가했으면 좋겠다. 음식 이외에도 서비스, 인테리어, 입지, 스토리, 명성 등의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대놓고 우리는 파인 다이닝을 지향한다고 명시한다면 괴리감을 덜 할 것 같다. 그리고 가성비 있는 음식을 단순히 빕구르망으로, 수준 있는 음식을 더 플레이트로만 구분하지 말고 조금 더 세분화한다면 어떨까 싶다. 가격대 별로 음식을 평가해야지 그나마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을 것 같다. 지나치게 전통과 역사를 추켜세우며 우리는 깨끗하다고 능청을 떠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리 조금만 솔직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뒷거래를 조장한다느니, 정확한 검증이 없었느니, 지나치게 서구적인 시선으로만 본다느니. 이런저런 비판점들이 존재해왔고 굴곡이 있었던 미슐랭이지만 그 영향력은 인정해야 한다. 전 세계 외식업의 큰 물줄기를 바꿀만한 힘을 가졌고 실제로 그랬다. 파인다이닝 업계의 수준을 한 층 높이 끌어올렸고 일개의 식당이 전 세계인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며 소비자에게도 은근한 자부심을 부여한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신이 내려오지 않는 이상 최고가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맛있는 집이어서 맛집이라 생각했다는 장금이 식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객관성에 죽고 못 사는 시대이지 않는다. 불신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것을 원한다. 내 입맛이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입맛임을 인증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장금이 식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턱대고 맛있다고 끄덕여줄 주상전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