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듣기만 해도 울적해지는 노래가 있다. 인디밴드로 시작해 독특한 음색과 개성 있는 노래로 유명세를 얻은 밴드의 노래다. 내가 스무 살 적에 그 밴드의 노래가 참 많이도 들려왔다. 그전부터 유명세를 얻다가 딱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절정을 맞이했다. 노래가 워낙 좋아야 말이지. 덕분에 나도 플레이리스트에 그 노래를 넣어두었다. 등굣길에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렸고, 학교 앞 감성 술집에서도 들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도 들었고, 가끔은 노래방에서 불렀다. 밴드 보컬의 모교가 우리 학교였던 터라 종종 공연을 왔지만 나는 번번이 기회가 안돼 보지 못했다. 결국 라이브를 들어본 적은 없다. 오직 스피커와 이어폰을 통해서만 들었다.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는 왜 기억이 있고 감각이 있을까. 왜 노래 한 곡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을까. 사람에게 이런 대단한 능력이 있음을 원망하게 된 노래는 연인의 풋풋함과 애틋함, 그리고 애절함을 담아낸 한 밴드의 노래다. 어디선가 익숙한 기타 전주가 들리면 나는 원치 않는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삶의 본격적인 시작인 것 같은 설렘과 어른이 되어 울타리 밖으로 벗어났다는 묘한 해방감. 그 모든 것이 풋풋하고 고난과 고생마저도 행복으로 뒤덮여 버리던 시절. 그때는 이랬지. 내가 이렇게 행복했었지. 수업이 끝나고 먹을 술 한잔에 그리도 설레어했지. 시험이 끝나고 거닐을 호숫가에 그리도 두근거렸지. 그렇게 시절로의 유영이 끝나면 돌아갈 수 없음에 탄식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현재에 충실해야 하며 지금 내게 주어진 행복에 만족해야 하지만 어쩐지 반항이 하고 싶어 진다. 내게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결핍보다는 충만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투정에 가까운 반항이.
나는, 너는 그렇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기억은 추억으로 미화되고 돌아갈 수 없음에 더욱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청개구리 같아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고, 할 수 없는 것에 정신을 쏟는다. 그럴수록 노래는 나에게 더욱 진한 향기를 풍긴다. 울적해진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아무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청승맞게 노래만 들으면 옛 생각에 푹 빠져버린다고. 하지만 이것은 조건 반사가 아니라, 무조건 반사다. 그리고 그 무조건 반사는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속삭여준다. 나조차도 잊고 지내던 것을 어찌나 이렇게 친절한지 마음속 깊이 또 한 번 각인시켜준다. 청승 떨 수도 있지. 추억할 수도 있지. 기억할 수도 있지. 나는 지금이 싫은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이 노래를 들었다. 밥을 먹다가 익숙한 기타 전주가 좀 구슬프게 들렸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속삭여주는 것 같다. 나는 잊지 않고 또 왔다고. 다시 나를 떠올려 달라고. 나는 그 속삭임에 늘 응해준다. 질리지도 않고 그때를 떠올린다. 사실 아직은 좀 아리다. 그때의 행복과 그때의 추억이 나를 울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추억하고 미소 지을 스무 살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
아마 나는 오래가지 않아 이 노래를 또다시 듣게 될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잊힐 듯하면 들리는 이 밴드의 노래처럼 잊힐 듯하면 슬며시 떠오르는 내 스무 살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