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미숙하고 덜 자랐을 때를 말한다.
그때는 사람의 눈치를 지독히도 봤었다. 어쩔 때는 사람의 범주 안에 나 자신이 포함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떠올려보면 더 심하게 봤다. 그것이 누구인가는 상관없었다. 나와 피가 섞인 가족이건, 성향과 취향이 섞인 친구건 상관없다. 내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이 싫었고 그 시선이 따가운 것이라면 그것은 더욱 싫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힙겹게 이뤄내야 하는 것인지를 어째서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몽글몽글한 기운이 뻗쳐 나와 타인과 나 자신마저도 감화시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따라 할 수도, 따라 해서도 안 되는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기보다는 미움을 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길 위를 걷고 싶었다. 누군가와 깊고 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공중에 그어진 선이 아니라, 누군가와 적대하지 않기 위해 땅바닥에 그려진 선을 넘지 않으려도 부단히 노력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모두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꽤 피로하게 살았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자꾸만 내가 나부꼈다. 꼿꼿하고, 올곧은 사람이 되면 부러질 것 같아서 아집있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 펄럭이는 천이 되고 싶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 휩쓸리고 신경이 쓰여서 펄럭였다. 어지럽고, 힘겨웠다. 산들바람에도 몸이 움직였고 때때로 힘센 바람이 불어서 하마 타면 저 높은 하늘로 날아갈 뻔했다. 평생을 막대기로, 평생을 천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삶과 인생 앞에 평생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오만하고 치기 어린 생각이었음을 어렴풋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더불어 모두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까탈스럽고 불만이 많다. 예민하기도 하고 틱틱거리기도 한다. 상황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태반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래서 싫고, 어떤 사람은 이래서 좋다. 이 사람이 좋은 이유가 저 사람이 싫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너무 줏대 없고 어리석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여럿을 보며, 여럿을 좋아하고, 여럿을 싫어하면서 나는 누군가도 나를 필연적으로 싫어했겠구나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별 이유 없이 싫어하듯 누군가도 나를 별 이유 없이 싫어했겠구나.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냈다. 문득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싶다가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마음을 덜 쓰고 싶어졌다. 저 사람이 무엇을 해도 싫을 때가 있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미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나다. 타인에게 튕겨져 나간 나는 이제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공장에서 수만 개가 찍혀 팔린 공산품 인형처럼 남들에게 나도 그런 인형이기도 할 듯싶다. 타인의 상상 속에서는, 머릿속에서는 나는 인형이고 원하는 대로 손짓발짓을 하겠지. 그걸 내가 어떻게 할까.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면, 그것만큼 마음 아픈 일도 없기에 그렇지 않기로 빌고,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린다. 아니길, 아니겠지. 그래서 나는 간혹 찌질해지기도, 내 마음을 썩이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다. 하지만 말했든 나는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은 그것보다 더 많기에 덜어놓기로 했다. 나는 누군가의 혐오겠지. 치사하고, 도망치는 것 같을 수 있다.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 돌아서 달음박질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도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대처법
1. 신고한다, 2. 도망간다.
신고할 수단이 없으면 도망가는 것이 최우선이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한다고 어디에 신고할까. 그냥 내 마음속에 신고하고 도망가자. 도망가서 영영 보지 말자. 그러니 너도 날 혐오할 수 있겠지. 그건 네 권리고, 나는 도망가는 것이 내 권리겠지. 나는 치사하지만, 가끔 숨이 막히도록 도망가는 것이지만 상처 나지 않을 수 있다. 숨은 좀 차겠지, 하지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면 내 호흡은 금세 돌아오겠지.
그러니 나는 언제, 어딘가에서 아무개의 혐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