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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이제 식당에서 만나요

외식업에 무사히 안착한 로봇에 대하여

by 식작가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해보자


초등학교에 다닐 시절, 매년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했다. 늘 수상을 하는 것은 그림에 재능이 있고, 꿈이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나를 포함한 반 친구들은 열심히도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과학상상화의 소재는 늘 엇비슷했다. 우주도시 아니면 해저도시였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두 개를 주제로 그렸다. 그리고 두 도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로봇이었다. 분명 그 시절에도 로봇은 많았다. 공장에서는 로봇 팔을 이용해 물건을 찍어냈고 사람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들도 더러 있었다. 기술은 이미 발전해 있었고 우리 생각보다 더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몸소 체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가 SF영화에서, 그리고 상상에서 보아온 로봇은 뭔가 더 근사하고, 대단하고, 완벽할 것 같았으니까. 확실히 친숙한 개념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로봇은 과학상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 시대의 표상이었다. 고작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 지났건만 이렇게 로봇이 일상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지금 나에게 로봇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영화 속 거대한 몸을 가진 로봇보다는 식당에서 종종 보이는 서빙 로봇이나 바리스타 로봇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보고 있으면 신기한 것은 매한가지다.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그마한 몸집의 로봇이 부단히 노력해서 음식을 가져온다. 많은 테이블 중에서 내가 앉은 테이블로 음식을 쏟지 않고 곧잘 가져온다. 음식을 픽업하고 화면을 터치하면 다시 부랴부랴 주방으로 돌아간다. 로봇 바리스타도 마찬가지다. 주문을 하고 결제를 마치면 네모 유리 박스 안에 있는 로봇 팔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커피를 추출하고 재료를 섞어서 다양한 음료를 만들어 준다.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하지만 이것을 어린 시절의 내가 봤더라면 아마 뒤집어졌겠지. 이제는 신기하지만 놀라운 정도는 아니다. 로봇이 서빙을 하고, 커피를 만드는 것이 적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우리 삶에서 로봇은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냈고 우리가 먹는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봇 = 트랜스포머?


로봇의 정의는 학문별로, 인물별로 다양하지만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사람을 대신하여 스스로 일하는 기계 정도로 요약된다.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는 로봇을 떠올리면 두 팔과 다리를 가지고 엉성하게 걸어 다니는 휴머노이드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결국 우리의 일을 도와주는 모든 것을 로봇이다. 사실 두 다리를 가지고 사람처럼 이족 보행을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대단한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아직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의 로봇은 아니다. 보통 우리가 접하는 로봇은 원통에 바퀴가 달린 유형이거나, 몸은 없고 긴 팔만 뻗어 나와서 일을 하는 유형, 몸통에 큰 터치스크린을 달고서 한 곳에 정착한 유형이 대다수이다. 외식업에서 사용되는 로봇들은 대부분 앞서 말한 세 가지의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 아직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하고, 요리를 만드는 수준에 국한되어 있다. 주문받고, 서빙하고, 만들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로봇이 외식 노동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로봇이 보조적인 임무만 하고, 세심한 공정은 여전히 사람이 한다고 하기에는 로봇이 너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키오스크는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로봇이다. 혹자는 키오스크가 어떻게 로봇이냐고 할 수 있지만 주문을 대신 받는 캐셔 로봇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받고, 결제를 도맡아 한다. 주문이 들어온 음식을 주방에 알려주는 역할까지 하니 캐셔의 역할을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키오스크 덕분에 많은 캐셔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터치스크린과 움직이지 않는 몸통, 밋밋한 외관 덕분에 우리가 생각하는 로봇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엄연한 로봇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보는 것은 서빙 로봇이다. 보급률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볼 수 있는 녀석이다. 보통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큼지막한 몸체를 가지고 바퀴를 이용해 움직이며 몸에 터치스크린을 달고 다닌다. 키오스크에 비해 훨씬 더 우리에게 친숙한 로봇에 가까운 외형을 지녔다. 아직 미리 입력된 간단한 수준의 서빙 밖에 하지 못하고 로봇에 담긴 음식을 손님이 직접 꺼내야 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자동화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단 시간 내에 신생 음식점들에서 많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도 로봇 팔을 이용한 자동 조리 시스템도 있다. 치킨을 튀기는 로봇 팔이나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로봇들도 이제 공상 과학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점 단위에서의 로봇만 설명했지만 식품 제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미 로봇은 대세를 이뤘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들까지 대량 자동 생산을 위해서는 사람의 손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과거 공장이 사람의 손으로만 물건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로봇과 기계를 관리하는 인력을 제외하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 되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같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보다 깨끗하게 관리된 로봇이 만드는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외식업에서 로봇이 쓰인 것은 최근이지만 제조업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미 많은 일자리들이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식품 제조업은 우리가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뿐이지 진작에 우리는 로봇이 만든 즉석밥에 냉동 만두를 먹고 있던 것이다. 이렇듯 로봇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숙명이 되었다. 인간의 노동력이 더욱 고귀해지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동을 요구함에 따라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서빙 로봇과, 로봇 요리사는 더 이상 미래 예측 서적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차가운 로봇을 가까이 한 이유


자영업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무수히 많은 고민들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떠다니겠지만 사람에 대한 걱정은 공통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을 고용하고 알맞게 그들을 부린다. 나는 채용당하는 입장과 사람을 관리하는 입장에 둘 다 서 본 결과, 사람이 사람을 쓰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알맞은 급여를 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며, 각자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적당한 휴식과 에너지를 주어야 하고 제구실을 하기까지 일정 수준의 교육과 시간이 필요하다.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로 따듯한 미소를 건네고 섬세한 일처리에 사람만 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아주아주 번거롭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또 하나의 일거리다. 슬프게도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같은 사람이다. 게다가 요즘은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도 없어서 쓰지 못하는 지경이다. 인기 많은 몇몇 업종이나 단기 아르바이트에 구직자들이 몰리면서 일반음식점에서는 인력난이 심각해졌다. 오죽하면 시급을 아무리 올려도 도저히 구해지지 않는다. 채용하는 사람도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일하는 사람도 고된 주방일과 서비스를 겸하는 식당일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채용하는 사람도, 구직하는 사람도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로 눈을 돌릴까.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 바로 로봇이다. 월세방에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을 알 것이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는 유독 더 크게 느껴진다. 고정 지출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조성한다. 인건비도 마찬가지다.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이 고정비인데 인건비는 출혈이 유독 큰 고정비다. 이는 직원 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로봇은 초기 투자비용을 제외하면 사람에 비해 고정비가 압도적으로 적게 들어간다. 아마 많은 자영업자들이 로봇에 눈길을 주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마진율을 조금이나마 높여줄 수 있다. 이외에도 로봇의 장점은 다양하다. 사람이 하는 기본적이고도 치명적인 실수들을 줄여준다. 주문을 잘못 받거나, 음식을 엎지르거나, 계산이 맞지 않거나 감정에 따라 말실수를 할 일도 없다. 오류가 있다면 지극히 기계적이고 공학적인 방법으로 고치면 그만이다. 교육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고 개성이 없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마찰 역시 없다. 요식업에서 로봇을 쓰는 이유는 별 것이 없다. 앞서 기술한 이유들은 모두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 가능하다.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사람 대 사람보다 사람 대 로봇이 더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봇이 로봇인 이유? 그것은 기계이기 때문


외식업에 스며든 로봇의 다양성과 장점에 대해 말했지만 정작 나는 키오스크 말고는 현재 외식업에서 종종 쓰이곤 하는 로봇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로봇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단순히 자판기 수준이 아니라 커다란 로봇 팔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커피를 뽑고 시럽을 섞어서 번듯한 음료를 만든다. 마치 진짜 바리스타처럼.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휘리릭 움직이는 로봇 팔을 보는 재미가 전부였던 것 같다. 비쌌고, 맛은 그저 그랬고, 바리스타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했다. 투명 유리에 갇혀 24시간 영업한다는 점 덕분에 늦은 시간 공부를 할 때 잠을 쫓기 위해 종종 사 먹었지만 어엿한 사람 바리스타가 활동하는 낮에는 굳이 사 먹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생산 단가가 낮아지고 기술의 발전으로 맛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때도 로봇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를 사 먹을까? 사실 장담하지 못하겠다. 같은 체온을 가진 사피엔스가 내린 커피와는 달랐다. 눈을 마주치고 주문을 받지도 않았다. 주변에 고소한 원두 냄새가 진동하지도 않았다. 팔근육을 사용해 원두를 템핑 하지도 않았고 바스푼으로 시럽을 젓지도 않았다.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내게 음료를 내어주지도 않았고 매뉴얼일지 모르는 기계적인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그것은 로봇 바리스타가 로봇이었기 때문이다.


로봇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로봇 종업원도 마찬가지다. 원통의 로봇이 가져오는 음식의 맛은 변함없다. 사람이 만든 음식을 고작 서빙하는 것일 뿐이니까. 하지만 참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은 맛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복합적인 모든 것이 다르다. 나는 외식업에서 활약하는 로봇 덕분에 외식업이 알게 모르게 아주 복합적인 산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외식업은 단순히 음식을 사고파는 산업이 아니다.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경험이 혼재된 산업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비롯한 사람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자랐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나서부터 우리는 그 당연함이 때로는 특별함이 될 수 있음을 알았던 것 같다. 아직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물의 영장, 사람의 몫이었으나 그것이 로봇으로 옮겨가면서 생기는 괴리감을 미쳐 해소하지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로봇이 뛰어난 음식을 조리하고 빈틈없이 서빙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그 주체가 로봇임을 인식한 순간 우리도 모르는 새에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다. 그 선입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나 대체로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키오스크처럼 현시대의 인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품은 이야기가 살짝 다르다. 많은 젊은 세대는 키오스크를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이제는 주문하기 위해 종업원과 말을 한다는 것이 더 어색하고 부끄럽다. 키오스크는 이런 세대의 특징을 잘 꼬집은 로봇이었다. 요식업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소비자의 불편함도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키오스크 역시도 도입 초기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적응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느낀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외식업에서 사용되는 로봇은 소비자보다 사장님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인건비가 모자라고, 직원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많은 사장님들이 사람의 대안으로 택한 것이 로봇이었다. 소비자들은 물론 인간 종업원으로부터 불편을 느끼긴 하지만, 사실 사람이 로봇으로 무조건 대체되어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로봇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조리하고 서빙한 음식을 아무런 문제 없이 먹었으니까. 소비자와 사업자의 간극은 아직 메꿔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여전히 외식업에서의 로봇은 한계를 보인다. 초기 투자 비용이 비싸고 이는 음식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술의 한계로 음식의 질이 떨어지거나 복잡한 조리과정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오류 등의 위험이 산재해 있고 소비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로봇이기에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인구절벽 한국에 제격인 로봇, 그러나?


인구가 가파르게 소멸할 예정인 한국. 초등학교들은 벌써부터 옷깃을 여미며 아이들이 없는 나라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대로 간다면 일할 사람은 줄어든다. 누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며, 서빙을 할 것인가.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쏟아내도 아마 로봇이 대체할 확률이 지극히 높다. 사람이 없는데 당장에 먹고살아야지. AI와 4차 산업혁명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판국에 로봇 기술은 발전할 일만 남았다. 외식업에서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언젠가 고도의 AI와 결합하여 완전한 자동화를 이룰 수도 있고 이미 그것을 시도 중인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잘만 쓰는 키오스크. 여러 불만들이 있었지만 대형마트부터 동네 식당까지 포스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나타났다. 키오스크보다는 구식이긴 하지만 일본의 식당들이 많이 사용하는 주문 자판기 역시 비슷한 개념이다. 일찍이 인건비가 상승하고 사람이 부족했던 일본은 자판기를 도입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일본의 자판기와 한국의 키오스크는 비슷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리고 로봇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단순히 주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분야로의 확장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 범위가 외식업 전체일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에 익숙했던 세대는 디지털이 등장하자 어려움을 겪었다. 아날로그와 너무나 다른 덕분에 적응에 애를 먹었다. 갈수록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한국에서 로봇이 완전히 정착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것에 익숙하고 배움이 빠른 현세대와 달리 기성세대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의 삶과 밀접했던 외식 분야의 변화는 그들에게 더욱 뼈아플지 모른다. 아직까지 외식 로봇은 완전 자동화를 이루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우리가 스크린에 터치를 해야 하고 사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식당에 가면 서빙기계나 키오스크를 다루지 못하는 노인 분들을 종종 본다. 그분들이라고 어찌 답답하지 않을까. 사람의 따듯한 미소를 보고 친절하게 주문을 하던 것에 익숙한 분들이다. 차가운 기계와 자비 없는 시스템에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가끔은 나조차도 따라가기 버거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곧 한국 사회의 다수를 차지할 노인들의 적응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도 관건이 될 것 같다. 어쩌면 그 적응을 완만하게, 수월하게 이끌어 내서 사회 전반에 로봇을 스며들게 하는 기업이 로봇 외식업 시장에서 승기를 잡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상상화 속에서만 그리던 로봇은 더 이상 2D 그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상상화를 현실화할 차례가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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