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냄새를 맡다

by 식작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무엇을 하며 놀지가 인생 최대의 고민이던 나날에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계절의 냄새가 그중 하나다. 매년 이맘때에 엄마는 항상 봄냄새를 맡았다. 날씨가 사근하게 풀리기 시작할 때. 초봄을 알리는 경칩이 다가올 때. 이때 무심코 외출을 하면서 공기를 담뿍 들이마신 엄마는 항상 봄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제 봄이 온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 봄냄새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냄새는 강력한 것이었다. 냄새는 하나뿐인 것이었다. 어린 나에게 냄새란 그런 것이었다. 뚝배기 속 빠글빠글 끓는 된장찌개 냄새, 양복에서 나던 아빠의 우디한 향수 냄새, 소나무 줄기에서 나던 축축한 비냄새. 길거리에 떨어진 고약한 은행 냄새, 공중화장실의 찌든 냄새, 치과에서 나는 시큰한 냄새. 하나 같이 강력하다. 극단적이고 하나의 송곳 같은 향이 코를 찌른다.


봄냄새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었지. 봄은 냄새가 나는 대상이 아니니까. 봄은 봄이다. 앞에 향에 관련한 수식어가 붙을 수 없는 명사다. 엄마는 그런 봄냄새를 잘도 맡았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를 냄새를 해마다 맡았다.


이제는 나도 맡는다. 엄마가 맡았던 봄냄새가 이런 것이었을까. 지난주에는 나지 않던 봄냄새가 이제는 진동한다.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것도 모자란 지 내 앞에서 자꾸만 아른거린다. 내가 왔다고. 일 년을 돌아 내가 오고야 말았다고. 봄이 왔다. 봄냄새가 난다. 봄냄새를 맡을 줄 아는 나는, 이제 냄새로 계절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봄냄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봄이 지날 무렵에는 여름 냄새가 난다. 후덥지근하고 텁텁하면서 무거운 여름냄새가 있다. 여름이 끝나면 가을 냄새가 온다. 시원하고 청량하다. 바삭스락거리는 가을 냄새가 있다. 가을 냄새가 끝나면 무취에 가까운 겨울 냄새가 등장한다. 냄새가 나지 않음으로 겨울 냄새는 찾아온다. 온도도 냄새라면 냄새다. 나는 이제 계절의 냄새를 맡는다. 복잡 미묘하고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래서 못 다 적는 계절 냄새를.


이 향기를 코찔찔이 꼬맹이가 어찌 맡을 수 있었을까. 자극적인 것만 냄새라고 생각하던 내가 알기엔 너무 옅었다. 하지만 반대로 진하다. 키 작은 어린 나에게 옅었던 냄새가 이제는 진하다. 계절의 냄새는 내가 지나온 계절의 두께와 함께 한다. 살아가면서 넘긴 계절의 페이지가 두껍다면 계절의 냄새는 필경 후각을 지배할 것이다.


계절의 냄새란 사실 내가 계절에 남긴 책갈피다. 계절에 했던, 만났던, 느꼈던 무언가가 냄새로 남은 것이다. 페이지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무언가의 냄새가 나면 우린 계절이 왔다고 떠오르는 것이다. 무언가가 많아진다면 계절이라고 느낄 표지는 함께 늘어난다. 무언가의 냄새가 섞여서 아주 혼돈스러운 냄새가 나지만 우린 그것을 계절이라고 받아든다. 계절이 변하는 때는 항상 혼돈스럽다.


살면 살수록, 우린 더 많은 책갈피를 계절 사이사이에 끼워 넣을 것이고 펼쳐볼 페이지는 자꾸만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늘어난 책갈피, 계절의 두께는 냄새가 되어 돌아온다. 페이지를 차라락하고 넘기면 코 끝을 스치는 계절 냄새가 있다. 고약하지만 향기롭고, 옅은 것 같다가도 너무 진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의 냄새.


계절을 타는 것도 냄새의 영향이 아주아주 크다. 계절의 냄새가 나면 우리는 무수히 많았던 계절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일이 자꾸 떠오른다. 반대로 무수히 많은 일들이 냄새를 풍기니까 다시 계절의 냄새는 진해진다. 끔찍한 순환이기도 하다. 살면 살수록 계절의 냄새는 진해진다. 옅어질 수가 없다. 결국 그 일이 떠오르고 그 계절이 떠오르고, 이것을 반복하면서 마음속이 콱 막혔다가 스르르 풀리기도 한다. 싱숭생숭한 마음이 얼었다 녹으면서 우리는 계절을 탄다.


나는 이번주에 결국 봄냄새를 맡았고 달력에 찍힌 숫자가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올해 맡은 봄냄새는 너무 향긋했다. 향긋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던가. 유독 봄 밤내음이 슬퍼진 나날이다.


냄새는 한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 왔다. 어김없이 왔다.

봄이 왔다. 그 끔찍한 계절이 왔다. 심사가 뒤틀리고, 몸이 으스러지는 그 계절이 왔다.

봄냄새를 맡았다. 아무래도 봄을 타나보다. 또 책갈피가 끼워지겠지. 순환은 순환하고 다시 돌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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