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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pr 03. 2023

마라탕 맛없다고 하지 마라

혀뿐만 아니라 시장을 얼얼하게 달군 마라탕에 대하여 

  마라에 대한 첫 기억


  내가 대학에 막 들어갔을 무렵, 마라탕이 한국 외식 시장에서 그 존재감을 막 드러내고 있을 때였다. 나는 동기의 손에 이끌려 인생 첫 마라탕을 경험했다. 매운걸 잘 못 먹는 나였기에 매운맛 1단계도 아닌 0단계를 주문한 탓에 빨간색 마라 국물이 아닌 희멀건 백탕이 나온 웃픈 경험을 했다. 다소 싱겁게 끝난 마라와의 첫 만남이었지만 그 후로 나는 마라탕을 꽤 즐겨 먹었다. 


  단순히 고춧가루 푼 매운 국물이 아니다. 마라의 핵심 재료인 제피 덕분에 그냥 맵지 않고 얼얼하게 맵다. 마라가 듬뿍 들어간 마라탕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대번에 이해할 수 있다. 혀와 입술 주변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얼얼하다. 고추의 뜨겁게 매운맛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유행이라기 보단 일상에 가깝다. 너무 광적인 인기를 끌고 마라 타이틀을 단 각종 파생 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출시되어 한철 피고 지는 유행일 줄 알았으나 이제 그 단계를 지나 소비자 삶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느낌이다. 몇 년 전 외식업계를 덮친 마라 폭풍은 한창때에 비해 그 위세가 줄었으나 이제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마라맛 빗방울을 흩뿌리고 있다.



  한국인의 맵부심, 저격 성공 


  매운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마라의 얼얼함은 참신했다. 나도 제대로 된 마라탕을 처음 먹어봤을 때 그 얼얼함에 이끌렸다. 마라 맛이 강하게 나는 마라탕을 먹으면 입과 혀 전체가 얼얼해서 정신이 없다. 퉁퉁 부어오른듯한 입술과 혀는 마치 제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뒤돌아서면 자꾸만 생각나는 매운맛, 얼얼한 맛. 아무래도 제대로 공략당한 것 같다.


  마라탕 매장에서는 보통 맵기를 숫자 단계로 나타낸다. 그 숫자가 묘하게 승부욕을 자극한다. 매운 것 깨나 먹는다고 자부하는 한국인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맵기 단계를 하나씩 올려서 도전 과제를 깨는듯한 쾌감. 비록 그런 쾌감은 일시적일 수 있겠으나 사람들을 자연스레 마라로 이끌었으니 적당한 서비스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라의 매운맛은 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탕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마라샹궈나 마라롱샤 등의 다양한 마라 음식들도 두각을 나타냈고 마라소스는 여러 음식과 융합되어 새로운 식문화를 탄생시켰다. '마라'는 하나의 음식이라기보단 이제 소스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레시피에서 심심찮게 마라를 볼 수 있다. 마라의 매운맛은 한국인 입맛 저격에 성공한 것 같다. 

      

  

  마라탕이 한국에 적응한 방법


  이국의 음식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음식 본연의 모습을 우직하게 밀고 가기보다는 유연함을 보이는 것이 좋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 현지에서 마라탕은 국물까지 먹는 음식이 아니다. 너무나도 강한 마라맛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린 국물을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따라서 마라탕은 국물까지 마실 수 있게끔 개조가 됐다. 마라를 줄여 더 담백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알싸하고 얼얼해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마라탕 국물은 떠먹으면 진하고 깊고 시원하게 현지화되었다. 물론 마라 특유의 맛과 향은 여전하지만 먹을만한 수준이 된 것이다. 덕분에 국물을 바닥까지 긁어먹을 수 있고 여차하면 밥까지 곁들여 먹는다. 거의 국밥처럼 변했다.


   현지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뷔페처럼 자신이 먹고 싶은 재료를 직접 고른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개인의 취향이 과거에 비해 존중받으면서 이른바 커스터마이징의 시대가 도래했다. 소비자들은 나만의 마라탕 레시피를 축적했고 그 과정 자체를 즐겼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맛있게, 특별하게 먹을 수 있는지 공유했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마케팅 채널이 되어준 셈이다.   



  우리 마라탕의 향방


  곳곳에 자리 잡은 마라탕 가게들이 꽤 오랫동안 살아남으면서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과 서비스 방식, 유행의 속도를 보건대 불꽃같은 삶을 누렸던 외식 업계의 유행들이 떠오르지만 그들과는 자못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마라탕의 가장 큰 아킬레스인 위생 이슈. 나도 마라탕 가게에서 배추를 집다가 손톱만 한 파리 시체를 보고야 말았고 한동안 강제로 마라탕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위생 불량 업소로 마라탕 가게들이 지정되어 자꾸만 입방아에 오르면서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다. 외식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위생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은 성립할 수 없고 성립해서도 안 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신기할 정도다. 위생에 그토록 날을 세우는 우리가 그 적나라한 모습을 모두 알고도 마라탕을 아직도 먹는 것을 보면 대단한 힘을 지닌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창 끝에서 펼치는 곡예일지도 모르겠다. 대체제가 유입되거나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에 질린다면 빠르게 스스로가 발목을 잡아 그 위상을 잃을지도 모른다. 


  마라탕은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하고 성공적인 현지화를 통해 외식업계, 나아가 식품 업계를 주름잡았다. 탕뿐 아니라 '마라'라는 소스 자체를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시장에 안착했으나, 그것은 고작 안전하게 착지한 것일 뿐 완벽히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국경 밖에서 유입된 낯선 음식의 개선점이 바뀌는 것을 계속 기다릴 만큼 우린 참을성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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