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의 황제, 국밥

국밥 밈에 숨겨진 가성비에 대하여

by 식작가

든든한 국밥 한 그릇


나는 국밥을 좋아한다.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거나, 숙취를 달래기 위해 국밥만 한 것이 없다. 진한 국물과 듬뿍 들어간 고기, 아삭한 깍두기를 먹으면 내가 한국에 살고 있음을 비로소 체감한다. 국밥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한식의 대표주자는 진정 비빔밥과 불고기가 맞지만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어쩌면 국밥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원래 국밥을 사 먹을 때 딱히 가격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국밥은 저렴한 음식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사 먹었던 적은 없다. 대체로 만원 아래에 포진한 가격대 덕분에 특별히 비싸지 않은 이상 주저 없이 사 먹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국밥은 가격 대비 성능, 그러니까 가성비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국밥의 가성비는 일종의 밈처럼 스며들었다. 어떤 음식을 들이밀어도 이 가격이면 국밥 몇 개를 먹을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쳤다. 이런 논리의 국밥 밈은 각종 미디어에서 희화적으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우습기만 하여 사용된 것은 아니다. 현실과 맞닿아 있기에 퍼질 수 있었다. 국밥 밈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격VS성능


가성비는 비단 음식에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경제와 IT분야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산업 전반에서 널리 쓰인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지불한 가격에 걸맞은, 혹은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비싼 것은 대체로 성능이 좋다. 비싼 것을 사면 좋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우리는 가격과 성능을 일대일로 저울질한다. 최대한 성능 쪽으로 기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가성비가 무작정 값싼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국밥보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더 각광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지불한 값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 설령 비싼 음식을 먹더라도 같은 가격대의 음식들보다 더 맛있거나, 더 양이 많거나, 더 다양해야 한다.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면 안 된다. 소비자가 소비를 하고도 되려 이득을 얻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밥은 뜯어보면 가성비 넘치는 음식이 맞는 것 같다. 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뜨끈한 국물과, 고깃덩이, 푹 익은 김치들과 풋고추, 양파까지. 식당에 따라서는 다양한 밑반찬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국밥은 어딜 가나 먹을만하다. 양도 푸짐하니 확실히 이 가격에 이런 음식 흔치 않다.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가 국밥 한 그릇을 먹을 때 이리도 조목조목 생각하며 먹었던가.



가성비가 유행한 이유


살기가 참 팍팍해졌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만원은 우습게 내야 한다. 근사한 외식 한 번에 출혈이 생각보다 크다. 외식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않은 시대 속에서 성능을 따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만찮은 값을 지불하고 먹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하면 곤란하다. 아무렇지 않게 돌아설 수가 없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게 된다.


소비자들은 지쳤다. 사진 한 장을 위해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값을 지불하는 것에 이골이 났다. 물론 좋은 날, 기분을 내기 위해 분위기 있는 매장을 종종 가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매일같이 보여주기 위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 몸도, 마음도, 지갑도.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관상용 음식에 지친 우리는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가성비를 찾아 헤매었다.


그래서 국밥은 가성비의 마스코트로 떠올랐다. 대게 서양에서 비롯된 음식과 디저트가 인스타와 외식업계를 점령하고 우리의 지갑을 털어갔다. 찐 한식이자 알차고 푸짐한 구성, 인증샷과는 다소 거리가 먼 국밥의 인기는 반항 심리처럼 작용한 듯싶다. 국밥 밈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주류 외식업계에 지친 우리의 심리상태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성비던가, 사치던가


가성비에서 파생된 말도 있다. 바로 가심비. 성능보다는 우리의 심리적 만족감에 초점을 맞췄다. 어쩌면 가성비와는 반대에 뜻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소비트렌드로써 사치, 프리미엄 등이 떠오르던 시기에 함께 각광을 받았다. 더 이상 아끼지 않고, 나의 만족감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 그렇게 가성비의 시대는 저무는 듯했다. 국밥도 힘을 잃는 것 같았다.


가심비가 총애를 받았다고 해서 가성비가 외면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점점 소비시장은 양극화되었다. 가성비와 가심비로. 가성비를 추구하며 모아둔 재화로 가심비를 추구한다. 국밥을 먹으며 아낀 돈으로 오마카세를 사 먹는다. 혹은 한쪽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기도 한다. 무지출 챌린지와 욜로가 단적인 예시다.


장기적인 저축으로 한방 소비를 하는 시대는 지난 모양이다. 평일 동안 가성비를 추구하다가 주말에는 가심비를 추구할 수 있다. 먼 미래를 위해 가까운 현재를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가성비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다. 시장은 사치와 절약 혹은 가성비와 가심비로 양분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양쪽을 넘나들기 위해 가성비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한 곳에만 머무른다. 어찌 되었든 국밥은 죽지 않는다. 목적이 무엇이되었든 싱싱한 가성비로 우리를 달래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라탕 맛없다고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