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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Jun 18. 2023

온 세상이 불닭볶음면 천지

제품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불닭볶음면에 대하여 

  불닭과의 첫 만남


  나는 아직도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한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닌데, 적어도 불닭을 먹으면 꽤 많이 매워한다. 불닭볶음면과의 첫 만남은 학창 시절 때이다. 진짜 매운 라면이 있는데 한 번 먹어보자는 친구들의 말에 혹해서, 야자시간 전에 사서 처음 먹어봤다. 진짜 죽을 뻔했다. 물을 미친 듯이 먹었다. 불닭볶음면과의 첫 만남은 강렬하다 못해 강력했다. 


  정말 가끔, 아주 가끔 먹었다. 일반 불닭볶음면보다 훨씬 매운 핵불닭과 불닭볶음탕면이 출시되었을 때, 친구들과 호기롭게 도전한 적도 있었다. 결과는 물론 속 쓰림 엔딩이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에게 불닭볶음면은 사실상 도전에 가까웠고 음식보다는 콘텐츠였다. 불닭은 그렇게 이름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 사라질 줄 알았다. 


  불닭볶음면 출시 초기에는 사실상 도전에 가까운 소비가 이뤄졌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나는 이 제품은 이벤트성으로 출시된 것이라 여겼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누군가의 챌린지용으로만 남고 시장에서 자취를 감출 줄 알았다. 이렇게 불닭볶음면 공화국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매워도 너무 맵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이 매운맛을 좋아한다지만 모두가 불닭볶음면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닭볶음면은 평균적으로 봐도 아주 매운 음식에 속한다. 더군다나 출시 초기에는 이런 매운맛 볶음면이 시장에 없었기 때문에 더 신선하면서도, 훨씬 맵게 다가왔다. 아직 우리의 혀가 불닭볶음면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이벤트용으로 많이 소비되었다. 각종 매체들에서 도전 종목으로 사용되었다. 그걸 본 학생들도 호기심에 도전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제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과 놀이처럼 여겨졌다. 지금도 해외에서는 불닭볶음면은 인기 있는 챌린지 종목이다.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이러한 목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연히 한 두 번 먹고 사라질 줄 알았다. 우리가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에 적응하기도 전에 제품의 관심도가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너무 자극적이므로 쉽게 질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우리의 도전의식을 살살 자극하면서 자꾸만 소비를 부추긴 덕분에 서서히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점차 도전이라기보다는 제품의 맛 때문에 소비가 촉진되었다. 단발성이 아닌 중장기적인 흥행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경쟁자 없는 시장 


  당시 볶음면 시장은 이제 막 커져가고 있던 시기였다. 탄탄한 입지를 다진 국물 없는 라면들이 있었지만 볶음면 시장 전체가 커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라면 = 국물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하지만 컵라면을 필두로 하여 개성 있는 볶음라면들이 출시되고 있었다. 어린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었는데 생각보다 이게 잘 먹혔다. 그렇게 시장이 막 커져가던 무렵, 불닭볶음면은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에는 불닭볶음면 수준의 자극적인 볶음 컵라면이 많지 않았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매운 라면은 신라면과 진라면과 같은 전통강호, 틈새라면과 같은 신흥강자들이 넘쳤지만 볶음면 시장에서는 전무했다.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볶음라면 시장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압도적으로 자극적이고 매콤한 맛이 무기였다. 


  볶음라면과 국물라면은 같은 라면임에도 사실상 다른 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인들은 독특하게도 볶음라면과 국물라면을 거의 다른 음식으로 인식한다. 최애 국물라면이 있어도 볶음라면은 별개 취급을 하여 따로 구매한다. 불닭이 국물 라면으로 먼저 출시되었다면 역사가 깊은 라면들에게 맥을 못 췄을 것이다. 하지만 볶음라면 시장으로 우회하면서 그들과의 정면승부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불닭볶음면을 처음 먹었던 내 감상평은 '익숙하면서도 처음 먹어보는 듯한 맛'이었다. 얼큰하고 한국적인 매운맛과는 사뭇 달랐다. 불닭볶음면만의 정체성이 확고했다. 무턱대고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쟁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름을 온몸을 다해 피력하고 있었다. 



  불닭이라는 브랜드      


   현시점에서 불닭은 어떠한가. 라면과 식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던 삼양의 구세주가 되었다. 불닭볶음면은 이제 라면에 그치지 않는다. 정말 무수히 많은 불닭 관련 파생상품들을 출시했다. 과하게 불닭을 우려먹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결국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제 불닭은 단순한 볶음라면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 봐야 한다. 


  이제 불닭은 하나의 소스로 자리 잡았다. 불닭소스를 이용한 레시피도 많이 개발되었다. 이 소스 하나로 근 10년 간의 식품 시장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불닭볶음면의 성공을 기점으로 볶음면과 매운 식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더 독특한 볶음면, 더 극단적인 매운맛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불닭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입을 달궈가며 열심히 불닭볶음면을 먹던 학생들은 이제 장성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불닭을 먹는다. 엄청난 충성심을 보이면서 어떤 파생상품이 나오건 간에 일단 한 번은 먹어본다. 불닭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아래에서. 


  최근 몇 년 간 식품시장에서 이 정도로 성공한 브랜드, 이 정도로 충성심이 가득한 브랜드가 있었던가? 소비자의 입맛마저도 바꿔버리고 시장의 지형도를 바꿀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 불닭. 아직까지는 이 견고한 철옹성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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