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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Nov 11. 2023

일단 팁 좀 주세요

기어이 한국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팁에 대하여 

  먼 나라 이웃나라


  언제였더라. 꽤 어렸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유튜브가 없었으니까 아마 TV였던가, 아니면 누가 말해줬던가. 서구권을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팁 문화를 알고 가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미국을 갈 때는 더더욱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종업원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지불하는 일종의 보너스란다. 뭐 그럴 수 있었다. 어차피 난 미국에 갈 일이 없었으니까. 


  요새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미국, 특히 뉴욕의 맛집과 카페를 돌면서 그곳의 외식 문화를 보여주는 곳인데 항상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가격을 공개한다. 악명 높은 미국물가는 원체 유명했기에 그냥 조금 놀라는 정도지만 팁은 가끔 볼 때마다 놀라운 지경이다. 심지어 셀프서비스인 곳에서도 팁을 낸다. 키오스크에서도, 직원이 없는 곳에서도 팁을 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팁이 가진 원래의 의미와 많이 멀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도 괜찮았다. 뭐, 여행을 가도 1~2주면 끝날테니 미국을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한국에서도 팁 박스를 놓는 가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정말 기어코 팁마저도 수입이 되었구나 싶었다. 역시나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지만 애초에 이 문화가 정착될 일이 있을까?



  피 같은 팁


  일종의 보너스이자 봉사료다. 손님이 서버나 웨이터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손님이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것이며 감사이자 보너스가 아닌 사실상 종업원의 봉급이 걸려있기 때문에 거의 의무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팁의 유래는 중세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관습으로 남았다.


  북미권에서는 종업원들이 최저시급으로는 생활이 불가하기 때문에 팁이 반강제적이다. 최저시급이 이토록 낮은 이유도 팁이 있기에 그 팁으로 부족한 봉급을 메우라는 의미다. 사실 어지간히 불편한 관습이기에 북미권에서도 이를 제도적으로 뜯어고치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나 관습으로 남아버린 만큼 범국민적인 동의를 얻기란 힘들었다.   


  팁이 일상인 북미권에서도 의문점이 제기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화와 언택트가 일상이 되면서 손님과 종업원의 접점이 줄어들고 급기야 무인 매장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이런 매장에도 팁을 내야 하는가에 대한 말을 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팁이 가진 본연의 의미에서 너무나도 퇴색되어 버린, 사실상 세금처럼 걷어가는 이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였다. 



  찾을 수 없는 이유 


  하물며 팁이 생활화된 북미권에서도 개선의 움직임이 있었건만 이 팁 문화는 왜 한국에까지 수입되었을까? 미국인들이 팁을 주는 것은 습관 때문도 있지만 이 팁이 없다면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종업원을 위함도 있으리라. 하지만 한국은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최저시급을 보장하고 있다. 팁을 받지 않아도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북미권에서는 사장이 팁을 횡령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는 경우도 있으며, 워낙 관습화가 된 탓에 그것에 대해 예민하고 엄격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팁이 아르바이트생에게 갈리 만무하다. 제도적으로도, 관습적으로도 팁 문화와는 동떨어진 한국에서 종업원에게 보너스의 개념으로 팁이 갈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애초에 팁이라는 문화가 왜 생긴 것이며,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온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줄기의 빛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여전히 허덕이는 외식 경기 속에서 오너가 손님에게 바라는 일종의 보너스처럼 보일법 하다. 게다가 지금 한국의 외식 시장은 서구권에서 건너온 문화라면 대부분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니까. 팁 문화도 소위 말하는 '힙'으로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감성의 영역마저도 한참 넘었다.



  감성과 낭만으로도 안 돼요


  최근 외식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감성과 낭만이다. 과한 소비와 지출이더라도 감성으로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감성과 낭만을 한참 넘었다. 우리끼리 하하 호호 웃으며 즐기던 연극에 갑자기 생뚱맞은 현실을 끌고 왔다. 감성 넘다 못해 이성을 끌어왔다. 이성적으로 보면 팁 문화는 어불성설이다. 


  공깃밥 가격마저도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대다. 상승해 버린 물가와 여전히 멈춤인 소득으로 인해 가격에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 한창 잘 나가던 감성 마케팅도 도를 넘는 것 아니냐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에 팁은 수용될 수 없다. 낯설고 이국적인 것은 분위기만 느끼면 된다. 팁은 감성과 낭만이 아니다. 


  가끔 식당 카운터에 기부함들이 놓여있는 경우가 있다. 남는 잔돈을 처리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현금사용이 줄어들면서 요즘에는 보기가 힘들어졌다. 한창 때는 이 기부박스도 눈총을 받았다. 저 기부함이 사장의 뒷주머니로 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돈과 숫자에 관해서는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더 군다다 이유 없이, 상술처럼 내 돈을 빼앗아가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 이런 마당에 점원을 위한 팁? 믿을 리가, 그리고 지불할리가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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