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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Nov 16. 2023

붕어빵은 죽지 않는다

영원한 겨울 간식, 붕어빵에 대하여 

  이 시대의 제철음식, 붕어빵  


  그 계절이 왔다. 얼어 죽을 것만 같은 계절. 살을 드러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모두가 움츠러드는 계절.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더워서 죽을 것만 같았던 나라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계절. 그리고 그 계절. 붕어빵의 계절.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 버스 정류장 앞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서 나눠먹는 엄마와 내 모습이 유난히 그려지는 계절이다. 눅눅, 바삭한 빵을 베어 물면 따끈하다 못해 뜨거운 팥소가 나온다. 살짝 누른 부분은 바삭하고 말캉한 부분과 만나 조화를 이룬다. 슈크림 붕어빵도 물론 있지만 뭉근하게 밀려오는 팥소의 단맛은 내가 한국인이 맞음을 비로소 상기시켜 준다. 


  정말 매년 먹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떻게든 붕어빵을 먹었다. 사실상 우리가 가장 쉽게 체감하는 제철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농업, 양식, 유통 기술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식재료를 접하게 된 현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철 음식이 아닐까. 찬바람 부는 겨울이 아니면 거리에서 구경조차 힘들다. 우리가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제철음식 붕어빵이 있기 때문이다. 



  디저트계의 고인물, 썩은물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외식 트렌드는 우리 주변의 풍경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특히나 최근의 디저트 업계를 생각해 보면 일 년에 한 번 꼴로 유행하는 디저트가 바뀐다. 대왕카스테라부터 마카롱, 작금의 탕후루까지 내로라하는 디저트들이 몇 년 사이에 꽃처럼 피고 저물었다. 하지만 붕어빵만큼은 세대를 막론하고 하나쯤 간직하는 겨울 속 보석 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선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어찌어찌 먹을 수 있겠지만 우리 뇌리에 붕어빵은 겨울철 길거리 간식으로 뇌리에 박혀있다. 그리고 그런 겨울에 자그마한 틀에 구워지는 붕어빵, 그것들이 담긴 기름이 살짝 묻은 종이봉투, 옹기종기 모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나눠먹는 사람들. 이것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 마케팅이 되었다. 어쩌면 번듯한 매장에서 파는 붕어빵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지 않을까.  


  붕어빵을 채우는 것은 참 다채롭지만 원조는 역시 팥이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디저트가 된 이유는 모두가 팥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슈크림이 세트로 따라다니면서 팥을 불호하는 이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지만 붕어빵의 근본은 역시 팥이다. 팥만이 가진 독특한 단맛과 풍미는 따라갈 재간이 없다. 팥을 베이스로 한 여러 한국식 디저트가 아직까지 힘을 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붕어빵 VS 잉어빵 


  사실 내가 바로 오늘 먹은 것도 붕어빵이 아니라 잉어빵이다. 나 역시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대충 붕어처럼 생기면 다 붕어빵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단다. 우선 잉어빵은 프랜차이즈다. 특허와 로열티를 가지고 있다. 정형화된 레시피와 재료가 존재한다. 특정 기업에서 담당한다. 이것부터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냥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충격적인 붕어빵과 잉어빵이 다르다는 것이다. 붕어빵은 훨씬 더 바삭바삭하고 빵이 얇다. 그리고 조금 더 정사각형에 가깝다. 내가 이 글의 썸네일로 쓴 사진이 바로 붕어빵이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잉어빵과 분명 차이가 있다. 잉어빵은 더 길쭉한 모양에 반죽 자체에 버터가 들어가 풍미가 좋고 촉촉하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것은 잉어빵이다. 나는 붕어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마 많은 이들이 붕어빵이 아닌 잉어빵을 먹어왔을 것이다. 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배신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배신감이 든다고 해서 잉어빵을 사 먹지 않을 것은 아니다. 원조 정통 붕어빵이 아니어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대충 생선 모양의 빵에 달콤한 속이 들어가면 다 붕어빵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따끈하고, 바삭+포슬한 빵, 달콤한 속.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붕어빵이건, 잉어빵이건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에겐 전부 다 붕어빵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붕어빵은 단순한 간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므로 무엇이 진짜인지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팥과 슈크림, 머리와 꼬리, 그리고 무언가  


  당연히 붕어빵의 원조는 팥이다. 내 어린 나날에도 슈크림 붕어빵은 있었지만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붕어빵 노점에 가면 슈크림은 물론 고구마 무스 같은 신박한 속재료 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추억을 자극하고 계절에 꼭 맞는 디저트라는 점 역시 꾸준한 인기에 한몫했지만 이 다양한 속재료 역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붕어빵 모양이기만 하면 된다. 안에 어울리는 재료만 들어가면 붕어빵으로 인정해 준다. 덕분에 우리의 선택지는 넓어졌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붕어빵은 변모했다. 또한 이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자 마케팅 포인트로 작용했다. 민초와 반민초, 부먹과 찍먹처럼 음식에 관한 장난스러운 논쟁이 한창 이어지던 시기에 팥붕과 슈붕으로 사람들은 격돌했다. 붕어빵을 먹을 때 머리부터 먹느냐, 혹은 꼬리부터 먹느냐는 논쟁도 덤으로 따라왔다. 끊이지 않고 이슈를 넣어준 셈이다. 덕분에 이런 논쟁에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10~20대에게 잊히지 않을 추억을 또 하나 선물해 준 셈이다.  


  팥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까지 포용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논쟁(?)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회자되었다. 덕분에 전 세대에서 소비되었다. 붕어빵은 단순히 우리와 우리 부모 세대에서 끊기지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의 추억으로 저장되고 있는 중이다. 추억의 형태는 달라도 모든 한국인들이 붕어빵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게 되었다. 유독 쓸쓸하고 공허한 겨울에 붕어빵을 먹는 이유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따스한 추억도 함께 먹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싱싱한 붕어빵, 영원히 제철 


  지칠 줄 모르고 오르는 식탁 물가에 우리의 붕어빵도 백기를 들었다. 천 원 한 장에 한 봉지 가득 담겨오는 붕어빵은 이제 찾기 힘들다. 천 원에 두 개, 심지어 천 원에 한 개도 보인다. 천 원에 5개인 곳을 발견하면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미니 붕어빵이 놓여 있다. 붕어빵 너마저도...라는 생각이 들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천 원 한 장으로 먹을  수 있는 디저트는 이제 찾기조차 힘들어졌으니까. 


  그 많던 붕어빵 노점상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럼에도 추운 겨울에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붕어빵 가게에 줄 서있다. 요즘에는 붕어빵 가게를 찾는 전용 어플도 등장했고, 붕세권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가격이 오르고, 가게가 줄어도 여전히 붕어빵을 찾는 이가 많다는 것에 대한 방증 아닐까.  


  내용물은 중요치 않다. 그 어떤 것이 들어가도 붕어빵은 붕어빵이다. 붕어빵 속에 꽉꽉 들어찬 마음을 먹는 것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매해 겨울에 붕어빵으로 매개된 우리의 추억을 파먹는다. 그리고 다시 다른 이의 추억이 되어 오랜 시간 전승될 것이다. 음식을 너무 감성적으로 대하는 것, 추억과 기억에 의존하여 음식을 설명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붕어빵은 그래도 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영원한 겨울 제철 음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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