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동네 문래에 대하여
사실 잘 모르는 동네였다. 이름조차 생소했다. 지도를 보건대 그냥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동네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원체 내가 종로나 을지로 같은 강북 지역에서 많이 놀았던 것도 있지만 문래라는 동네 자체가 인지도가 대단히 높은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문래에 처음 간 것은 아마도 스물한 살 무렵이었지 싶다.
문래에는 뭐가 있나 싶어 검색을 했었다. 나는 꽤나 놀랐다. 생소한 동네명과는 다르게 음식점과 카페가 많았기 때문이다. 문래창작촌에 대한 소개와 함께 소박한 가게들이 줄지어 검색결과로 등장했다. 주로 일식과 양식이 많았지만 군데군데 끼어 있는 노포들도 눈에 더러 띄었다. 참 희한한 동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방문한 문래는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참 희한했다. 거대한 쇼핑몰과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영등포구에서 유독 낮고 아담한 건물들이 많았다. 문래창작촌과 그 앞에 형성된 번화가는 여타 서울의 다른 동네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문래는 참 희한한 동네였다.
정작 문래창작촌 안쪽에는 식당과 카페가 그리 많지는 않다. 대부분 창작촌 앞쪽에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문래창작촌은 문래동 상권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래동은 본래 공업단지였다고 한다. 문래동 일대에는 아직도 소규모의 공업사들은 남아 있으나 대형 공업사들은 대부분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공업사들이 떠나고 남은 공장에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아 지금의 창작촌을 형성했다.
이유는 값이 저렴해서였다. 예술가들은 가난하기 마련이다. 그런 빈곤한 이들에게 영등포를 비롯한 서울 서부에서 이만큼 알맞은 곳이 없다. 그리고 예술가들처럼 주머니 사정이 곤란한 청년 창업가들에게도 꼭 들어맞는 지역이었다. 사무실과 회사들로 인해 높은 빌딩이 솟아오른 영등포에서 소규모로 창업하기에 참 적당한 곳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낡고 거친 공업단지는 그렇게 애물단지에서 보물로 변모했고 예술가들의 영향이었던 것인지 자리 잡은 매장들은 모두 오묘한 기운을 풍기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애초에 서울에서 핫하다는 거리는 대부분 저렴한 임대료에서 출발했다. 망원동, 을지로, 성수동, 신당동 등등 지금은 치솟아버린 임대료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지만 이들은 모두 구도심, 혹은 공업단지였던 탓에 각광받지 못하는 지역이었다. 그렇게 돈에 치여 저렴한 곳에 젊고 야망 있는 창업가들이 모였고 그들이 가진 에너지는 개성과 스타일로 발현되어 방문객들을 매료시켰다.
어린 시절 성수동에 외가가 있던 터라 성수동에 자주 갔었다. 서울숲 공사가 이제 막 마무리 되어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고 여전히 자동차 공업사들이 바쁘게 돌아가던 그때의 성수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런데 내가 문래동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생각은 꼭 성수동의 옛 모습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굉음들, 어둠을 품고 있는 공업사의 깊숙한 곳들. 서울 반대편에서 성수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지금은 오히려 성수동에서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성수동과 건대 사이에 여전히 공업사들이 있지만 이전의 활력을 내지는 못한다. 기름냄새와 굉음은 사람들의 북적거림으로 인해 많이 사그라들었다. 낡고 허름했던 성수동의 분위기는 이제 풍화되어 세련됨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성수동의 감성은 공업단지보다는 그 너머에 있었던 오랜 가정집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문래는 다르다. 여전히 쇳소리가 날 것만 같은 공장부지들이 문래동의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문래는 공업 단지 중심부에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훨씬 더 날것의 진한 향기를 풍긴다. 공장 자체를 활용한 인테리어도 여럿 보인다. 밤에 가면 조명조차 희박한 그곳에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다. 그리고 거친 외관과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으슥한 분위기는 자칫 음산함을 조성할 수 있으나 그곳에 몰려는 많은 인파와 실내에서 내뿜는 따스한 조명이 묘하게 대치되어 매력을 뽐낸다. 거칠지만 따스한 곳. 반전매력이 넘치는 문래는 이래서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문래가 이러한 분위기를 뽑아내는 데에는 건물들의 층수도 한몫을 한다. 문래창작촌 인근의 건물들은 층수가 매우 낮다. 문래역에서 나와 창작촌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어느 순간 굉장히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있는 이곳이 고층빌딩들과 아파트들이 늘어선 영등포구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된다.
아마 이곳이 공업단지였던 터라 모두 높은 층수의 건물이 없었으며 한동안 유동인구도 적고 여전히 남아있는 공업사들로 인해 굳이 높은 층수의 건물을 올릴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식당과 카페들이 그러한 공업사 건물에 입주하면서 지금의 문래가 탄생했다. 극단적인 곳은 골목 전체가 단층 건물로 이뤄진 곳도 있다. 좁은 골목, 단층 건물, 그리고 북적이는 인파가 모여 마치 내가 미니어처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낮은 건물들로 인해 멀리 진짜 영등포의 모습을 품고 있는 마천루들이 내뿜는 빛이 멀리서 보인다. 건물들에 막혀 먼 곳을 내다보기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이 정도로 먼 곳을, 그것도 길바닥에서 보는 경험은 생각보다 특별하다. 저 건물들이 문래라는 곳을 포근하게 감싸주면서도 더욱 소박하고 아담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점은 종로 쪽의 서촌, 북촌과 비슷하지만 묘하게 전통적인 냄새를 풍기는 그곳과는 다르게 현대적이면서도 약간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에게 영등포는 참 도회적인 장소였다. 각종 회사들과 높은 빌딩이 몰린 차가운 도심 같이 느껴졌다. 문래 주변에는 유독 북적이고 열정적인 동네가 많은 것 같다. 망원 정도를 제외하면 지방 출신인 내게 지극히 도시스러운 장소들이었다. 도시에서 도심스러지 않는 장소를 찾는 것. 그러는 와중에 도심의 향기를 잔잔하게 느끼고 싶은 것. 너무나 이기적이고 모순적이지만 문래라는 장소가 너무나도 알맞다.
개성 넘치는 요즘 가게들과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는 노포들이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고 그런 숨은 가게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넘치는 곳. 가게들을 찾으며 발견한 또 다른 가게를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문래라고 생각한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여러 것들이 공존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상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문래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적합한 문구는 없다. 일반적인 도심과는 다름에도 도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매력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요즘 문래 가는 맛에 들렸다. 그런 뜻에서 문래로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