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부활의 가능성에 대하여
지금 강북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는 어디일까? 성수동? 연남동? 이태원? 강북에 밝고 아름다운 동네가 참 많이 생겨 이제는 어디라 콕 집어 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15년 전쯤 이 질문을 받았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단 한 곳을 골랐을 것이다. 한강 이북 제1의 번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서울 제1의 번화가...였던 곳. 그곳 명동.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방문했던 명동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서울에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가게가 이렇게 많구나.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몸으로 깨달았던 곳. 명동 성당부터 롯데백화점, 골목 사이사이에서 보이는 남산, 건물에 빼곡히 박혀있는 상점과 식당은 왜 이곳이 이토록 유명한지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광화문과 종로에서 멀지 않고, 남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동네. 명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종종 등장할 만큼 중요하고 또 유서가 깊은 동네다. 하지만 2~3년 전 명동을 가본 적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여기가 그렇게 번화했던 곳이라고? 수 십 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고? 앞선 설명이 무색하게 명동은 완벽한 사형선고를 받은 상권이었다.
나는 강북이 몸에 맞는지라 한강 아래로는 잘 내려가지 못했다. 그래서 2~3년 전에도 명동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에도 정말 오랜만에 방문했던 것인데 전과 비교하면 휑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몰락했다고는 들었어도 이 지경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평일임을 감안해도 내가 알던 명동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명동을 또다시 찾았다.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린 것일까. 명동스러운 맛집들이 가고 싶어서 찾은 명동은 다시 날 놀라게 했다. 푹푹 찌는 한여름이었지만 전에 찾은 명동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문객이 있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사람이 스칠 정도로 많았다.
텅텅 비어 있었던 중심가의 건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채워져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길거리 상인들은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부터 분주해 보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물론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여전히 비어 있는 상점들은 몇 해 전 아픈 기억의 흉터로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꽤 훌륭한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명동이 왜 스려졌는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명동은 그 시절 한국 관광의 메카가 되었다. 거리마다 빼곡한 로드샵과 한국스러움을 갖춘 식당들은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위치도 좋았다. 서울역은 물론 광화문, 경복궁 등의 관광지와도 가까웠다. 남산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소비를 위한 거리였기에 유행에 따라 관광객의 발길도 옮겨갔다. 주변의 다른 상권과 거리들로. 같은 구성으로 언제까지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위기에 직면한 명동에 코로나가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상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거짓말 같이 명동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외수용 거리가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당연히 외국인 관광객이 주소비층이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매력적인 거리가 전혀 아니었다. 음식 값은 비쌌고,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점가는 시시했고 길거리 음식은 위생 문제와 함께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이 지적당했다. 주변에 있는 종로의 거리와 아래에 있는 용산의 동네보다 나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임대료는 자본이 있는 프랜차이즈들마저 가게를 접게 했다. 명동은 그렇게 망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명동의 사정은 훨씬 나아졌다. 그 이유는 단연코 팬데믹 완화다. 해외여행이 수월해진 지금 시점에서 명동은 다시 힘을 되찾았다. 이번에 명동 거리를 거닐면서 한국어보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더 많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있는 한, 여전히 명동은 명동이었다.
하지만 다시 명동이 몰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주변의 다른 거리와 동네에게 관광객을 빼앗기고 명동만의 장점을 잃는다면? 대로변은 활기를 찾았지만 골목 구석구석은 여전히 죽은 상권이었다. 사실 명동의 매력은 활발한 중심가와 좁은 골목 틈새에 자리한 맛집과 숨은 상점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아늑함에 있었다. 명동의 완벽한 부활은 아직이다.
음식의 가격은 여전히 제법 비쌌고, 사람도 많았다. 음식점의 서비스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며 아쉬운 구석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번에 찾은 명동은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참 많이 보였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지 못했던 장점들이 꽤 있었다.
명동은 경쟁에서 밀리면서 감성 가득한 동네와 거리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를테면 성수동과 경리단길들에게. 근처의 인사동과 청계천, 동대문 부근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결국 서울 하늘 아래에 사람이 북적거리고, 온갖 상점과 길거리 음식점이 난무하는 거리는 없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간 명동은 여전했다. 길거리 음식점은 중심가를 따라 끝없이 나열되어 있었고 각종 상점들은 휘황찬란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고 그래서 좋았다. 무질서했지만 그 무질서함이 특징이자 장점이 되었다.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 10년도 더 된 서울의 풍경이 명동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또한 명동이 힘을 잃었을 때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던 노포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한식당,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카페와 식당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분위기를 낸다. 달리 말하면 정신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십자수처럼 거리에 촘촘히 들어간 이러한 식당들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패턴을 완성시키며 명동스러움으로 재편되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이국적이다. 그리고 제대로 이국적이다. 관광객들을 위한 한식당뿐만 아니라 각국의 음식점들이 모여있는데 아시안푸드가 가장 눈에 띈다. 가격은 조금 비쌀지라도 생각보다 괜찮게 맛을 재현했고 인테리어와 분위기도 제법 괜찮았다. 게다가 직원들도 모두 외국인이니 가끔은 한인타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명동은 관광지하면 으레 떠오르던 곳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트렌드가 바뀌고 명동뿐만 아니라 관광지스러운 거리들은 모두 사양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런 관광지스러움도 이제는 괜찮아졌다. 최근에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감성', 어쩌면 명동의 감성은 촌스러운 관광지 같은 느낌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관광업이 주춤하면 명동은 다시 휘청이겠지만 이 모습을 지키려면 내재되어 있는 장점을 발현해야 한다. 아직 명동은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붙잡고 구경하던 명동의 작은 골목 구석구석이 다 깨어나길 바란다. 진정한 명동의 감성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