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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Mar 30. 2024

산 위의 상권, 낙산

  낙산이 가져다준 충격


  나에게 낙산은 공원이었다. 낙산이라는 지명보다는 낙산공원이라는 장소가 더 익숙했다. 혜화동에서 시작하여 사실상 등산 수준의 오르막길이 나오는 낙산공원은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인들에게 익숙한 장소였다. 시간을 때우기 좋았고, 시 밤 휘이기 좋은 곳이었다. 때로는 데이트의 명소였으며 무수한 약속의 갈피가 되었다. 하지만 혜화동에서 시작하는 낙산공원이 아닌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낙산은 나에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높은 성곽을 따라 동대문에서 시작되는 낙산은 가끔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급해지는 경사, 그 옆에 촘촘하게 들어선 주택들, 깎아지른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들. 서서히 높아지는 고도에 한 번 시선을 빼앗기고 마침내 성곽을 넘어 낙산의 내부로 진입하면 낮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늘과 한층 가까워지고 세월을 품고 있는 건물들이 주는 묘한 감정은 낙산이라는 공간을 재정립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주택 아닌 주택들에 들어찬 카페와 식당들은 노포, 그리고 옛 서울을 찾는 이라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람이 시원한 봄과 가을에 동대문을 타고 올라가는 낙산은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희게 빛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높은 고도가 주는 벅차오름


  서울은, 그리고 한국은 가히 산의 도시이자 나라라고 부를 법하다. 어떤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산을 볼 수 있는 나라라지만 산에 올라갔을 때 높은 고도가 주는 벅차오름은 흔한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빌딩숲과 도심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가 내 발아래에 그것을 두었다는 쾌감은 정말 엄청나다. 하늘을 정복했다는 감정은 그만큼 특별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서울야트막한 동산부터 악산까지 이곳저곳 솟아있다. 그러나 그런 산 위에 상권이 형성된 것은 드물다. 기본적으로 산세가 험해 건물이 들어서기 어렵거나, 산동네였던 탓에 주택들만 빼곡하게 들어찼다. 애초에 접근이 힘들어 먹고, 마시고, 놀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남산 자락에 위치했음에도 상권이 형성되어 그 분위기가 자아내는 독특함으로 방문객들을 끌어들인 곳이 바로 해방촌이다. 그리고 낙산도 마찬가지다.


  낙산은 해방촌처럼 완벽하게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낙산공원이 산책 코스로 유명세를 떨치고 성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였으며 그 성곽과 노을, 그리고 야경은 너무 잘 어울렸던 탓에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았다. 덕분에 얼마 안 되는 능선에 카페와 식당들이 소규모로 자리 잡았다. 야경과 경치를 앞에 두고 술과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소리에 방문객들은 조금씩 늘었고 낙산의 상권도 꼭대기에서부터 그 범위를 넓혀갔다.   



  낙산공원의 봄바람


  높은 고도가 주는 벅차오름은 사실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은 아니다. 솟아오른 건물의 상층부에서도 높은 고도를 얻을 수 있다. 얼마 전, 루프탑이 유행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낙산은 루프탑과 명확히 다르다. 낙산의 꼭대기가 주는 감성은 고도와 함께 그 뒤의 널따란 낙산공원, 그러니까 숲과 풀에서 온다.


  봄이나 가을, 사실 봄이 더 적당하다. 맑은 날 그리고 늦은 오후로 가는 시간대에 낙산의 식당, 혹은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완벽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앞쪽에는 동대문을 필두로 한 강북이, 그리고 뒤에는 풀냄새를 잔뜩 머금은 낙산이 있다. 도시 경관이 주는 장대함과 숲이 주는 청량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형성된 상권은 정말 드물다. 낙산의 특별함은 이 지점에서 온다.


  도시의 미학과 자연의 푸르름이 공존하는 부조화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도심과 숲, 그 경계선 어딘가에 앉아있는 것만 같다. 낙산이 단순히 높은 곳에 위치한 상권이었다면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매력에 사람들은 이끌렸고 사람들의 엉덩이를 무겁게 했다. 앉을 곳이 필요했고, 앉다 보니 먹을 것이 필요했다. 낙산의 상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낙산 성곽 너머로


  앞서 말했듯 동대문에서 성곽을 끼고 숨을 헐떡이며 낙산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성곽을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나온다. 그전까지는 왼쪽에 솟아오른 성곽과 오른쪽에는 제법 층고가 있는 빌라들이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빛을 이정표 삼아 이 칠흑의 구멍을 통과하면 세상은 변한다. 흔해 빠진 표현이지만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그 너머는 모든 건물이 낮다. 성곽 너머에서는 어느 지점에 서 있어도 허공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다. 여전히 오르막과 계단이 건재하지만 눈을 덮고 있는 얇은 막을 걷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분명 두 땅을 딛고 서 있지만 언제든 휘청일 것만 같다. 항상 내 울타리이자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었던 높다란 건물이 모두 사라지고 내가 지붕의 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들만 남는다.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던 건물이 사라지고 도심에서, 산에서 고소공포를 느낄 수 있구나 하는 그 기분.


  그 기분을 느끼며 남은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낙산 성곽 너머의 건물들은 오르막과 계단을 따라 자연스럽게 단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거대한 콘서트장이나 스타디움 같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무대가 보인다. 그 무대는 곧 서울 시내다. 덕분에 어느 가게의 테라스에 앉아도 기막힌 경치가 보인다. 특정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성곽에 걸쳐있는 모두가 그 경치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낙산이 가진 크나큰 장점이다.  



  지금의 가치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정말 마법에 빠진 줄 알았다. 나에게 낙산이란 그저 숨을 조금 헐떡이며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낙산 성곽에서 바라본 능선들에 걸린 불빛으로 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저 높은 곳이 아니었다. 바람결에 묻어온 그 풀냄새를 맡으면, 누구라도 낙산 상권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공간이다.


  가기도 힘들고, 무언갈 세우기도 힘들다. 옛 달동네의 전형을 하고 있는 낙산을 둘러싼 동네들은 변할 것 같지 않다가도 변하고 있다. 어떤 거대하고 새로운 것들이 새롭게 보이면 깜짝깜짝 놀란다. 이곳도 변모하는구나 싶다. 나만 알고 싶은 곳,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곳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것은 모두가 매력을 느끼는 곳이라는 의미다.


  내가 멈추고 싶어 하는 지금도 누구가에게는 그렇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 치던 미래이자 그날이었으리라. 그렇기에 낙산의 변화는 밀물 같은 것이다. 얼마간 낙산을 가지 않았다. 아마 눈에 띄게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소용 없어지는 변화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더 변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낙산엘 가봐야겠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가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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