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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24. 2022

북촌에서 익선동으로 가는 길

한국인이 늘 그리워하는 한옥, 그곳에 자리 잡은 상권에 대하여

  우리는 늘 한옥을 갈망해왔다


  서울은, 한양은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의 수도였다. 제1의 도시였고 막강한 인구를 자랑했다. 그 인구를 지탱할만한 집들이 도성에 깔려있었고 층수는 단층이었을지라도 엄연한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은 어떠한가. 한국전쟁 이후 그 어떤 나라보다 전란에서 빠르게 벗어났지만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포탄에, 총탄에 부서지고 불타 사라진 집들이 수 없이 많았다. 나라가 성장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서울은 확장되었다. 한강 이남으로 뻗어나갔고 층층이 건물들이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도 아쉬워하는 도시 미관을 미처 챙길 새가 없었다.


  한국인들이 유럽을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덕분이겠지만 그중 건축물은 아주 중요한 이유가 된다. 별다른 곳을 가지 않아도 중세 때 지어진 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골목길을 보면 별다른 관광지가 필요 없다. 건물과 길 자체가 역사고 유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건물과 그 사이의 길이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면 당연히 한옥이다. 하지만 급속한 팽창을 이룬 이 땅에서 한옥은 희소한 건물이 되었다. 낮은 인구수용력, 힘든 관리와 불편함, 비싼 건축 비용 등의 이유로 한옥이 불타고 파괴되었던 자리에는 새로운 한옥 대신 양옥이 들어섰다. 심지어는 멀쩡한 한옥을 헐고 높은 층고의 건물을 세우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당연한 이유지만 감성적으로는 우리의 가슴 한켠을 쿡쿡 찔렀다.


  그래서 잔존해 있는 한옥은 귀중한 유산이 되었다. 보존가치가 있었고 시간을 내서 보러 갈 만한 관광지가 되었다. 전주 한옥마을, 안동 하회마을, 낙안 읍성 등 한옥 여러 채가 보존되어 있는 마을은 지역의 명소가 되었고 핵심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한옥 마을들이 서울 시민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딱딱한 마천루 사이에서 따스함과 정겨움의 부재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늘 한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최초의 전통 거리, 인사동


  어렸을 때,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관광하면 떠오르는 곳은 단연 명동과 인사동이었다. 명동은 서울의 화려한 쇼핑문화와 번화가를 보여주었고 인사동은 한국의 전통을 보여주기에 제격이었다. 지금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명소는 북촌과 익선동, 서촌 정도를 꼽지만 옛날에는 인사동이 유일했다. 거리에 들어찬 골동품 가게, 표구사와 전통 공방들, 그 뒤에 위치한 촘촘한 한옥에 자리 잡은 한식당과 전통 찻집은 이 도시에서 가장 한국적인 곳이었다. 주말이 되면 인사동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서울에 여행 온 한국인, 나들이 온 시민들까지 인사동의 정겨움을 만끽하러 많은 이들이 인사동에 발을 들였다.


  현재 인사동은 그 시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여러 요인들이 있었는데 전통을 표방했던 곳이 현대적으로 변모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구시대의 건축물 대신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아마 모든 인기 있는 거리가 겪는 일이었겠지만 유독 인사동에게는 이것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인사동이 인사동다웠던 이유가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리의 특색을 잃었다. 인사동에 거대한 상권이 형성되면서 생뚱맞은 길거리 음식과, 상점들이 입성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읽지 못했다. 시대가 변하고 소비패턴이 변화했지만 인사동은 여전히 한국적인 기념품과 공방들에 의존했다. 상권이 중심을 잡아가지 못하자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힘을 갖춘 가게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방문객이 유입되지 못했고 방문객의 연령층은 계속해서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인사동은 서울 시내에 흔한 번화가가 되어버렸다.   




  진짜에 가까운 한옥 마을들


  전통거리를 표방했던 인사동이었으나 사실 그 전통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간 것은 그곳을 구성하는 한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매장들이었다. 상가 건물 뒤편에 한옥들이 있었으나 인사동은 그것들이 메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너무 관광지스러웠고 조금은 조악했다. 결국 잡스러운 분위기에 버무려졌고 한옥 마을로의 기능은 점차 퇴색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짜' 한옥마을이 보고 싶었다. 상가 건물보다는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진짜 집의 기능을 하는 한옥을. 그렇게 발견된 엘도라도가 낙원상가 측면에 붙어있는 익선동, 경복궁 북쪽의 북촌이었다.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옥은 방문객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들이 발길을 옮기자 금세 상권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인사동의 안타까운 말로를 보았던 걸까. 인사동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겼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더 많은 초점이 맞춰졌던 인사동과는 달리 북촌과 익선은 한국인들을 주고객층으로 삼았다. 실제로 두 한옥마을을 가보면 외국인들도 더러 있지만 절대다수가 한국인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익선과 북촌이 떠오르던 시기,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옥의 분위기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심플하고 모던한 인테리어를 갖췄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국적의 음식들이 팔렸다. 의미 없는 한국적인 기념품 판매점보다는 플리마켓이 열렸다. 그 시기 익선과 북촌은 서울 전 지역이 앓고 있었던 '감성'이라는 열병에 걸린 것이다.





  북촌과 익선의 애용자가 남기는 소회


  나는 북촌과 익선의 분위기에 감화되어 뺀질나게 이 동네를 드나들었다. 심지어 익선에서는 1년 정도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질리도록 한옥 사이사이 골목을 걸었다. 북촌은 조금 더 거주에 맞춰져 있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많고 거리 자체가 조용조용하다. 익선동보다 더 한옥마을스럽다. 익선에 비해 길도 널찍하고 가족단위 나들이 객이 많다. 연령층도 상대적으로 높다. 애초부터 한옥마을로 알음알음 전해져 오던 곳이며 거리의 역사도 오래되어 유서 깊은 노포들도 많다. 한옥 속에 들어있는 매장들보다 한옥 그 자체를 보러 가는 곳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쉬어가는 느낌의 쉼터 같은 매장들이 종종 보인다. 북촌의 콘셉트는 힐링에 맞춰져 있다. 윗편에 있는 호젓한 한옥에서 힐링을 하고 아래쪽에 있는 맛집에서 주린 배를 채운다.


  익선은 북촌과는 또 다르다. 익선은 이미 그 유명세를 가지고 있던 북촌과 달리 맨바닥에서 시작한 거리다. 그저 인사동과 낙원 상가 옆, 로컬들이 거주하는 찐 거주구역이었다. 그러다 다닥다닥 붙은 한옥들의 가치가 입증되면서 상권으로 변모한 것이다. 솔직히 북촌이 훨씬 한옥마을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한옥의 느낌을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터를 잡고 있던 맛집들이 적었던 덕분에 신생 맛집들이 부담 없이 입주했다. 그리고 그런 맛집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한옥 안에서 파스타와 팟타이를 팔았고 와인과 칵테일이 술잔에 채워졌다. 기와 아래에 모던한 인테리어를 가진, 전통과는 배치되는 매장들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익선은 북촌에 비해 훨씬 소란스러웠다. 길도 훨씬 좁고 유동인구도 어마어마해서 비유하자면 마치 시장 같다. 그리고 밤이 되어도 한옥의 불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익선의 중심가에 있는 레스토랑들은 분위기를 조성했고 살짝 외곽에 있는 갈매기살 골목과 낙원 상가에서 이어지는 포장마차 거리는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렇게 좁디좁은 골목길 하나로 뒤바뀌는 분위기도 익선의 묘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둘러싼 기왓장 올라간 지붕은 방점을 찍었다.




  서울 하늘 아래 최후의 한옥 마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극도로 높은 인구밀도를 보여주는 서울에서 한옥은 비효율적인 주거형태다. 층고를 올리지 않는 한옥의 특성상 인구 수용력이 적고 목재로 만들어서 화재에도 취약하다. 편리함에 절여져 있는 도시인들이 아무리 현대적으로 변모한 한옥에 거주한다 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다. 한옥이 어색한 한국인이라니, 아이러니 하지만 현실이니까. 그래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한옥의 매력에 빠져, 로망을 실현하고자 한옥을 짓는 것은 드문히 보일 수 있어도 지금의 익선과 북촌 같은 한옥마을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어도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성북의 앵두마을, 은평의 한옥마을 등의 한옥마을이 있지만 성북은 규모가 작고 은평은 상권이 형성되기 어려우며 주거를 위한 단지로 새롭게 조성된 곳이다. 우리가 바라는, 핫플레이스의 기능을 할 수 있는 한옥 마을은 지금의 익선과 북촌이 전부다. 하지만 이 두 곳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북촌의 주거단지 아래쪽에 위치한 상업지구는 인사동이 조금 겹쳐 보였다. 물론 여전히 특색 있고 단단한 팬층을 보유한 맛집들과 카페가 즐비하지만 불 꺼진 매장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리고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 대신 상업적인 향기가 조금 나기 시작했다. 익선은 너무 붐벼서 문제다. 안 그래도 좁은 골목에 온갖 맛집들이 구겨지면서 주말에 그곳에 잘못 들어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곳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신음하며 동네를 떠났고 상인들만 남았다. 익선동 내의 물가는 점점 비싸졌고 다소 엉성한 매장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이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 두 곳을 좋아한다. 1년이 넘게 일하면서 정도 들었고 한옥이 줄 서있는 낮은 골목길도 마음에 들었다. 음식점과 카페도 맛있는 곳이 많았고. 하지만 그 번화했던 인사동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람들이 좁디좁은 골목에서 보내는 시간을 피곤하게 느끼고 그곳을 구성하는 매장들에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면 거리를 죽어가겠지. 적어도 그곳들에서 여유롭게 차를 한 잔 할 수 있는 순간은 지나갔다. 한옥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바쁘고 복잡하다. 몇 년 동안은 건재하겠지만 그 이후를 장담할 수가 없다. 번화한 상권에 사람이 붐비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쩌면 한옥이 가지는 의미와 상징과는 참으로 배치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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