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사이버펑크, 세운에 대하여
요즘 사이버펑크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게임으로 핵전쟁 이후, 기업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솟아오른 마천루, 눈부신 네온사인, 그늘진 슬럼가 등등 SF영화에 나올 법한 양극화된 도시 속에서 게임은 진행된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서울에서도 사이버펑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래로는 종종 다녔지만 위로 간 것은 역시 오랜만이었다. 청계천과 수직으로 만나는 세운과 대림을 이어주는 공중보행로다. 날이 좋은 가을날, 사람들은 상가에 자리 잡은 식당과 카페에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나름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몇 번 둘러보았을 때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여기가 사이버펑크인가?
당연히 그 세대는 아니지만 세운 상가부터 주욱 늘어선 낡은 주상복합과 공중 보행로가 오랜 시간 강북의 골칫거리였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역사적인 장소에서 수직으로 이어진 낡고 어두운 거리. 실제로 슬럼이었고, 여전히 슬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과 여전히 용도가 의문스럽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세운과 공중보행로는 마냥 그렇지만 않았다. 분명 존재의 소임쯤은 다하고 있었다.
세운의 감성은 내가 공중에 떠 있음을 자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세운의 공중보행로 주변은 기본적으로 층고가 낮은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이 단층 주택이며 높낮이도 비슷해서 더욱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덕분에 탁 트인 시야와 함께 도시를 발아래 두고 있다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공중보행로의 상권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묘한 점은 종묘 쪽에서 오지 않는 이상, 세운의 공중보행로를 오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아래 그늘을 목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가도로 아래는 여전히 으슥하고 음산하다. 그 음산함을 계단을 이용해 조금씩 발아래로 밀어내고 마침내 하늘과 더 가까워지면 빛과 고도와 도시를 얻어냈으며 정복했다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사이버펑크 같은 SF 배경에서 햇빛과 고도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자각된다. 돈을 가진 자들은 더욱 높은 곳에 무언가를 얹고 필연적으로 음지가 만들어진다. 그 음지에는 어김없이 슬럼이 형성된다. 물론 서울과 세운이 사이버펑크의 온상이라는 것은 다소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보행로 아래 음지를 보며 계단을 오르고 마침내 탁 트인 풍경과 볕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고작 계단을 오르는 것만으로 내 신분과 세계가 바뀐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고 트인 시야 뒤편에는 작은 크기의 식당과 카페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과거 전파상들이 자리하고 있던 상가 단지에는 먹을 것을 사고파는 식당과 카페가 생겼다. 빛바랜 건물에 들어찬 개성 있는 외식 업장들은 세운의 분위기와 대치되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모든 상가들에 카페와 식당이 빼곡했다면 자칫 그 매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잘 정돈된 시장을 보는 느낌이었으리라.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예술가들의 공간과 세월이 묻은 '샤따'가 그곳을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해 준다. 목적성을 가지고 형성된 상권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간 같은 느낌을 준다. 설령 그곳이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한 세운의 업장들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드넓게 펼쳐진 강북을 앞마당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유리창 앞에 또 다른 유리창이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보행로, 그리고 그 너머에는 지붕들이 보인다. 업장들끼리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등을 지고 있다. 서로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며 각자가 가진 앞마당을 도화지 삼아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덕분에 어떤 업장에 앉아도 개방감이라는 도시에서의 호사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공중보행로의 특이점은 방향에도 있다. 동서로 길게 뻗은 을지로, 청계천, 종로와는 달리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덕분에 이들과 정확히 수직으로 만난다. 더군다나 이 강북 일대는 을지로와 청계천과 종로를 중심으로 꾸려진 거리인 덕택에 시야 역시 이 거리들 중심으로 뚫려있다. 다시 말해 세운을 걷다가 수직으로 접하는 부분에서는 미쳐 보지 못했던 강북의 새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또한 을지로와 청계천과 종로는 늘 와글와글, 왁자지껄, 시끌시끌이다. 경적소리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여기저기 널브러진 생업의 흔적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존재감을 뽐낸다. 하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고요한 공중보행로와 그곳에서 바라본 세 거리의 생동감은 그곳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영화를 보는 관람객처럼 손에는 팝콘과 콜라 대신 술과 안주, 또는 단 것과 커피를 들고 을지로와 청계천과 종로라는 장면을 바라본다.
또한 수직으로 맞닿아 있는 세 거리의 풍경이 확연히 다르다. 종로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평행하는 세 거리지만 가지고 있는 풍경은 모두 다르다. 노포들이 알알이 박혀있고 세월이 구석구석 묻은 을지로, 하천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청계천, 사적지들을 품은 종로. 세운에서는 이 세 거리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세운이 사이버펑크의 일부라면 세운은 상층부다. 길게 뻗은 정돈된 도로, 담뿍 받는 햇살, 깔끔한 매장들. 하지만 양지 밑에는 음지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고 재정돈 되었더라도 음지는 음지다. 늦은 밤, 공중보행로 밑은 여전히 음산하다. 서늘하고 불안하다. 맛집과 가게들이 있지만 달빛마저 가린 그늘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을지로와 청계천과 종로를 바라볼 때는 좋지만 그곳에서 세운을 바라볼 때는 묘하다. 을지로에서 바라본 세운의 공중보행로는 어딘가 도시 미관을 답답하게 만들고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평행하는 세 거리를 수직으로 관통하면서 일관적이지만 지루한 면모를 내뿜는다. 왜 그 세월 동안 철거와 존속을 오고 갔는지 알 것만도 같다.
낡고 정든 구도심을 공중에서 바라보며 입에 무언갈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로망이지만 그 로망을 위해 음지가 숨어 있다. 산책하기에, 시간을 보내기에, 식사하기에 참 좋은 곳이지만 반대급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양지와 음지가 너무 명확하게 나뉘어 모호하게 편을 들 수 없게 만드는 곳, 세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