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치앙마이에서 바로 제주로 가야 했다. 치앙마이 - 제주 직항은 없었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항공권이 치앙마이 - 홍콩, 홍콩 - 제주였다. 그리하여 제주로 가기 전, 삼일 정도의 홍콩 여행이 생겨났다. 어린 날, 엄마와 단 둘이 갔던 홍콩을 기억하며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홍콩이 가진 매력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왕왕 접했 다. 누군가 표현하길 영원한 물속 도시 같은 느낌을 이제는 풍기지 않는다고 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소와 건물들은 여전히 매력을 뿜어냈지만 확연히 달라졌다. 빼곡히 박혀있는 건물 사이에 듬성듬성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세기말의 감성은 흐릿해졌다.
첫 날밤 홍콩은 전날 밤 존재하던 공간인 치앙마이와 재즈바에 비하면 매력이라곤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빼곡하고 끔찍한 대도시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과 덥다 못해 끈적해진 공기가 몸을 휘감는 도시.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와 닭장보다 못한 숙소. 각 도시의 장단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내 눈에 비친 홍콩은 단점 투성이었다. 짧은 여행동안 나는 이 도시의 장점을 찾을 수 있을까? 첫날 홍콩은 치앙마이 여행자에겐 가혹한 도시였다.
잊고 있던 홍콩의 매력을 찾은 것은 두 번째 날부터였다. 소실되어 가는 홍콩의 감성을 미약하게 품고 있는 트램을 타고 홍콩섬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궁금했던 음식들을 찾아먹고 커피를 마셨다. 쨍쨍한 날씨에 마천루 그늘이 드리운 비좁은 골목은 꽤 아름다웠다. 그날은 삼만보를 넘게 걸으며 무더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정신 나간 강행군이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작았던 시절 보아온 먹먹한 홍콩을 엿본 기분이었다.
다음날 찾은 마카오에선 올해 최고의 폭염쇼를 경험했다. 마카오의 변변찮은 교통수단 + 환전 안 함 + 카지노 셔틀버스가 만들어낸 환장의 결과였다. 그래도 또 마카오 왔으면 여기만의 음식 먹어봐야지라는 마음이 생겨 관광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식당을 계획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홍콩 화폐가 통용되는 마카오지만 교통수단에서만큼은 마카오 화폐를 써야 한다는 점, 관광객들은 주로 카지노 무료 셔틀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환전을 잘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결과를 달게 치러야 했다.
꽤 높은 언덕을 넘었다. 현지인들이 사는 공간을 따라 걸을 수 있어 좋았지만 습기와 더위가 정말 절정에 다다랐다. 그렇게 도착한 밥집이 매우 만족스러웠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더 끔찍할뻔했다. 다 먹고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는 그 사이 내린 세찬 소나기로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습기에 고생했다. 마치 물방울이 공기에 스치듯 대단한 습기였다. 치앙마이와 홍콩에서 살갗을 태우지 않으려 평소에 바르지도 않던 선크림을 열심히 쓴 내 노력을 한 줌 허상으로 만들었다. 나는 거의 인종이 바뀌고 있었다.
폭염쇼를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카지노였다. 카지노의 도시에 왔으니 슬롯머신은 한 번 돌려보리라 다짐을 하고 마카오 땅을 밟았던 나였기에 삼만 원 정도를 ATM에서 출금했다. 처음 들어가 본 카지노는 정말 눈이 부시게 찬란했고 형형색색의 슬롯머신들은 나를 유혹했다. 카드와 칩이 오고 가는 테이블은 무서워서 슬쩍 쳐다본 것이 전부였다. 나 같은 초심자에겐 슬롯머신이 딱이었다.
한 오천 원 정도로 맛만 볼까 하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환전한 삼만 원은 천 원 남짓한 교환권으로 변해있었다. 게임하는 방법을 익히는데 만원 정도를 썼다. 만원이 두 배가 되는데 다시 만원을 썼고. 나는 홀린 듯 16배 배팅을 걸어 단번에 고꾸라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료 음료를 한 잔 쭉 들이켜고 카지노를 나왔다.
다음날 새벽 나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일주일 남짓한 치앙마이의 잔잔한 기억과 홍콩 마카오에서의 휘몰아치는 기억을 모두 캐리어에 욱여담고 제주로 향했다. 어쩌면 고생과 끔찍함이 더 많았던 홍콩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여행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단편소설 홍콩의 임팩트는 꽤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