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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11. 2022

콜라보레이션,  밀가루와 맥주의 만남

외식과 나의 이야기

  그래서 곰표가 뭐야?

  인스타에 희한한 맥주캔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곰표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서 살짝은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인스타에 올라왔으니, 궁금함 때문이라도 사먹어보는 것이 도리. 그런데 이게 웬걸.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방문하는 CU편의점마다 '곰표 맥주 없음'을 써붙였다.

  나는 일주일이 걸린 끝에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되니 촌스러워보였던 디자인은 귀엽고 예뻐보였다. 너무 고생해서 얻어서 그런가. 복숭아향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특징적인 맥주였다.

  원체 가향맥주를 좋아하지 않아서 재구매 의사가 넘쳤던 것은 아니었지만 캔이 예뻐서 기억에 남았다. 덩달아 곰표라는 브랜드를 머릿속에 새겼다.

  

  곰표는 당연히 맥주 브랜드가 아니다. 곰표는 밀가루 브랜드이다. 설립된지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제분업계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밀가루를 살 때 브랜드를 유심히 보거나 따지지 않는다. 항상 구매해왔던 것을 구매해오고 원하는 중량에,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한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곰표에 대해서 잘 모를만 하다. 심지어 요리를 하는 사람도 곰표라는 브랜드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

  60년도 더 된 브랜드, 촌스러운 곰이 그려진 브랜드, 큼지막한 폰트가 눈에 띄는 브랜드. 이랬던 곰표는 왜 맥주 브루어리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되었을까.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


  곰표 맥주가 나오기 전, 페이스북에 곰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패딩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저 누군가의 합성이거나 곰표의 이벤트성 아이템이겠거니 했지만 실제로 판매가 되고 있는 패딩이었고 그 호기심에 자극당해 구매한 소비자도 여럿 있었다.

  곰표 콜라보는 한 패션브랜드가 무단으로 곰표의 로고를 도용하여 패딩을 만든 것이 그 시초였. 당연히 곰표는 기업차원에서 제재를 가했지만 그들은 새삼 궁금해졌다. 밀가루 브랜드이자, 60년도 더 된 촌스런 브랜드의 로고를 왜 패션 브랜드가 도용했을까.

  법적인 절차를 밟아 문제를 처리하고 사소한 헤프닝으로 끝냈을 수 있지만 곰표의 마케팅팀은 그것이 사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에 집중했다. 곰표 패딩을 본 소비자들은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곰표는 SNS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SNS 세대와 가장 동떨어진 브랜드였던 곰표는 점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곰표는 그렇게 정식으로 패딩을 출시했다. 그 후에도 적극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곰표 맥주는 꾸준하게 출시하던 몇몇의 콜라보 제품들 중 하나였다. 밀가루 브랜드였던만큼 맥주 브루어리와 손을 잡고 회사의 정체성을 살린 밀맥주를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부드러운 목넘김과 은은한 복숭아향, 그리고 무엇보다 큼직하게 박힌 곰표의 로고는 완벽하게 소비자를 저격했다.

  SNS를 타고 모두의 워너비 맥주가 되었고 그 실물을 보기가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심지어 테라, 카스 등 대기업 제품을 제치고 편의점 맥주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중소 브루어리와 제분기업이 이뤄낸 쾌거였다.

  그 후로 말표, 유동골뱅이 등이 곰표의 성공을 보고 연이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역시 원조의 아성을 넘기란 힘들었다.




  우리는 왜 콜라보레이션에 열광했을까


  가장 직관적인 이유는 SNS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기업들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이뤄졌다. 비슷한 산업군, 시너지 효과가 예측되는 산업군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제분기업과 브루어리의 만남은 생소해도 너무 생소했고, 그 생소함은 제품을 SNS에 올리고 싶게끔 만들었다. 곰이 들어간 브랜드도 한몫했다.

  복고풍 브랜드의 촌스러움은 어느새 귀여움과 독특함으로 바뀌었고 이것은 트렌드가 되어 시장을 주도했다. 뉴트로라는 시장의 바람을 잘 타고난 것도 하나의 비결이었다.


  레트로를 넘어선 뉴트로. 곰표의 마케팅팀은 이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 옛날의 것을 현재로 끄집어 오고 싶어 한다는 것. 그렇게 끄집어 온 것을 적당히 현대의 티가 나게 조금만 손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 그들은 이것을 충실히 이행했다.

  브랜드 로고를 적당히 손보고 알맞은 곳에 붙였다. 그런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소비자의 구매욕을 당겼다. 곰표 맥주는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볍게 콜라보 제품을 체험하기 좋다는 점에서 곰표의 콜라보들 중에서 유독 큰 성공을 거뒀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온

  콜라보 제품들, 결국 K-엔딩?


  곰표의 성공은 당연히 시장을 자극했다. 말표, 천마표, 백양 등 각종 동물 브랜드들이 콜라보를 진행했고 유동골뱅이와 쥬시후레시(롯데제과) 등 식품 브랜드들도 맥주 브루어리와 손을 잡았다.

  곰표 맥주는 CU에서 독점 판매를 했기 때문에 GS25나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결과는 좋았다. 앞선 제품들은 곰표 맥주만큼은 아니어도 굵직한 성과를 내며 소비자를 자극하는데 성공했고 매출도 이것을 증명했다. 소비자들은 곰표만으로는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콜라보 제품들은 좋은 대체품이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곰표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 곰표는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중 모범적인 사례로 남았다. 곰표의 대성공은 독특함도 있었지만 적절한 콜라보에도 그 이유가 있다.

  밀가루 브랜드였기에 밀과 같은 곡물과 연관된 콜라보를 했다. 나쵸, 팝콘, 맥주가 대표적이다. 두 브랜드의 만남이 신기하긴 했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말표 초콜릿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살짝 이질감을 느꼈다. 초콜릿이 마치 구두약 맛이 날 것 같았다. 유동골뱅이 맥주가 나왔을 때 나는 꼭 맥주에서 골뱅이 맛이 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론 이런 콜라보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과연 건강한 콜라보였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소비자의 호기심과 식욕을 적당히 자극한 것이 아니라 너무 호기심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것은 아닐까.




  곰표가 우리에게 남긴 것


  곰표는 제분기업의 브랜드 답지 않은 브랜드 인지도와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밀가루 브랜드는 곰표와 백설, 해표 등이 전부다. 대부분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브랜드로 굳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없는 브랜드이다.

  도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소매에서도 소비자들은 충성도가 높고 익숙한 브랜드를 구매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백설을 자주 구매한다. 이유는 따로 없다. 그냥 전부터 구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표의 브랜드 인지도는 비교불가하게 상승했다.

  곰표는 새로운 시장으로의 확대라는 가능성을 가져갔고 언제 요리를 시작할지 모르는 잠재 고객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어필했다. 자신들의 밀가루가 얼마나 맛있고 질 좋은지는 어필하지 못했을지라도 눈도장을 새겼다.

  사실 이미 그들의 밀가루는 60년이나 브랜드를 유지해 왔다는 것에서 맛과 질을 어필한 셈이다.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타브랜드에 비한 강한 인지도와 파워였을 것이다.


  콜라보레이션 열풍은 한김 식었다. 단순히 재미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았기에 단발성으로 끝날 이벤트였다. 결국 다시 자신이 마시던 맥주로 돌아갔다.

  곰표는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이다.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브랜드의 명운을 바꿀 수 있다는 것과 SNS 마케팅에는 브랜드와 시장의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또 어떤 신박한 콜라보레이션에 열광할 지 모른다. 곰표가 그 길을 닦아놓았으니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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