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에 관련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은 첫 수업 때, 간단한 개론을 설명하시곤 우리에게 창업을 하지 말라고 대뜸 말했다. 창업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창업을 지양하라니. 우리는 그저 교수님의 실없는 농담으로 생각했지만 수업을 진행할수록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몸소 체감하게 되었다. 창업을 반대하는 창업 수업 교수님. 교수님은 왜 우리의 창업을 두 팔 걷고 막았을까.
고등학생 때, 내 장래희망은 카페 사장님이었다. 커피를 좋아했고 바 안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동경했다.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에도 내 꿈은 변함없었다. 창업이 하고파서 외식경영을 선택했고 야심 찬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몇몇 수업을 들으며 얻게 된 얕은 지식, 교정을 오고 가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 직접 경험해본 업계까지 이것들은 나를 사장님이라는 꿈에서 멀어지게 했다. 높은 수준의 폐업률, 나보다 더 열정 있으며 재능 있는 사람들도 망설여하는 창업, 일하며 보게 된 고되고 늘 쫓기며 살아야 하는 사장의 자리. 나는 교수님의 수업을 다 듣지 않았음에도 왜 우리의 창업을 말렸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요식업도 엄연한 사업
요식업은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업종이다. 5,000만 원에서 1억으로 번듯한 가게를 내고 어엿한 사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십, 수백 가지의 음식을 먹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식당에서 음식값을 계산한다. 그래서 많은 예비사장님들은 요식업이라는 업종에 친숙함을 느낀다. 그 친숙함이 '요식업'이 아니라 '음식' 혹은 '요리'에서 오는 것인지 잘 모른 체 쉽게 예단한다. 하지만 요식업 뒤에 붙은 '업'은 이것이 엄연히 창업과 사업의 한 분과임을 상기시켜준다. 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수익성과 독창성,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IMF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면서 수많은 실직자가 생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실직자들이 한국의 외식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누군가가 일궈놓은 회사에서 일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사업을 일굴 차례였다.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했던 요식업이 가장 대중적인 창업이 되었다. 치킨집이 거리마다 깔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 열정도 관심도 없던 분야에 뛰어들었던 많은 사장님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준비가 부족했고, 경험이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경쟁자가 끔찍하게 많았다. 외식 시장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이 시기부터였고 요식업 창업의 낭만이 불어온 것도 이 시기였다.
요식업은 5년 이내 폐업률이 80%가 넘는 굉장히 파괴적인 업종이다. IMF가 지났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요식업 창업을 꿈꾼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자본 창업, 낮은 진입장벽은 아직도 매력적이다. 월급을 받는 것에 지친 직장인들이 사장님이 되는 원대한 낭만을 이루기에 이것만큼 알맞은 것이 없었으니까. 사업 아이템 선정, 상권분석, 입지, 메뉴 개발, 인테리어, 마케팅, 서비스 등등 고려해야 하는 무수히 많은 요인들을 보지 못했으니까. 요식업도 사업인데, 내 생돈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사장님과 창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낭만에 눈을 정신을 팔렸다.
창업이라는 산을 넘어 마주한 경영
커피가 좋아 바리스타가 하고 싶었고 카페를 창업하고 싶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르바이트 정도는 해봐야지. 내가 첫 카페일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생각이다. 바 안에서 고상하게 커피를 내리고, 라떼아트를 하며, 손님이랑 여유롭게 대화하는 바리스타. 그렇게 경험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결코 고상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고, 열과 증기에서 살아야 했다. 손님 응대와 음료 제조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했으며 커피 추출보다 설거지에 파묻히기도 했다. 내가 처음 마주한 바리스타는 바쁘고, 또 바쁘고, 기술적인 직업이었다. 물론 서비스직인 것은 당연했고.
나는 프랜차이즈보다는 개인 카페가 좋아서 주로 개인 카페에서 일했다. 점주님보다는 사장님을 더 많이 겪었다. 곁에서 본 '진짜' 카페 사장님들은 내가 앞서 말한 바리스타 업무와 더하여 경영의 임무를 수행했다. 바리스타는 음료를 잘못 만들고, 컵을 깨먹으면 수습하고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경영자는 사뭇 달랐다. 잘못 내린 판단과 결정은 매장의 명운을 결정지었다. 카페 경영자가 무심코 선택한 가격 인상, 마케팅, 고객 응대 방침, 레시피 변경, 파트타이머 채용은 치명적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
나는 경영에는 적성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기획, 마케팅, 회계, 영업, 인사 등 모든 업무를 혼자 처리해야 하는 요식업 사장님이라면 더더욱. 내가 일한 매장은 늘 바빴다. 손님이 많았다는 소리고, 성업했다는 소리다. 내가 만난 그런 카페의 경영자들은 경영에 있어서 무정하고 차가웠다. 주관이 뚜렷했고 추진력이 있었다. 돈이 새는 것을 가만 두지 않았고 가끔은 정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가끔, 나라면 그들처럼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은가하는 물음을 던지곤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NO'였다. 이것은 내가 창업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물론 성공한 사장님의 형태는 여럿이 있을 테지만 유독 내가 본 사장들은 버겁고 힘겨워 보였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여유보다는 조급함이 앞서는 것 같았다.
내 열정이 고작 이 정도였다는 것
이런저런 이유들로 창업이라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만약 내가 커피와 창업에 정말 열정이 있었다면 이런저런 이유들은 이유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결국 내가 가진 열정인 이 정도였던 셈이다. 대학 생활 내내 커피를 하며 보내는 사람도 보았고, 학교를 가지 않고 바로 커피를 배우는 사람도 봤으며 열정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재능이 반짝이는 사람도 보았다. 열정도 재능도 없던 나의 사업은 벌써부터 실패가 예견되어 있었다.
다시 교수님의 수업으로 돌아가서 교수님이 우리의 창업을 말린 이유도 이와 비슷했다. 학생들의 수준에서 가져오는 창업계획서는 고만고만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사고의 확장이 깊이 이어지지 못했다. 교수쯤 되는 전문가가 보기에는 뻔히 보이는 결과였기 때문에, 심지어 그런 뻔히 보이는 결과를 도출한 학생들도 보아왔기에 우리의 창업을 말렸던 것이다. 내 열정이, 우리의 열정이 그리고 결과물이 이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가끔 '할 것도 없는데 카페나 차려야지'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돈이 아주 많아서 취미로 한다면 솔직히 카페는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자본금을 긁어모아하는 생계형 창업이라면 뜯어말리고 싶다. 돈도, 시간도 버리기에 아주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열정과 노력으로 카페를, 그리고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다. 그들은 할 것이 없어서 창업하지 않았다. 하고 싶어서,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 창업을 하고 매장을 경영하고 있다. 사장님 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런 낭만과 고상함을 누리고 싶어 창업을 한다면 실패한다고 단언할 수밖에없다. 당신의 열정이 고작 그 정도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