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비고는 왜 비비고일까 1

외식과 나의 이야기

by 식작가

한국인이어서 자연스럽게 한식이 땡겼을 뿐이었다.


아주 어린날, 싱가포르의 한 쇼핑센터 지하 식품관에서 엄마와 나는 한식을 찾아헤메고 있었다. 음식은 입에 맞았지만 한식파였던 우리에게 매 끼니 기름진 동남아시아 음식은 무리였다. 좀비처럼 식품관을 돌아다녔고 어린 내눈에 들어온 것이 'bibigo'라는 간판의 레스토랑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흰쌀밥과 나물, 고추장이 놓인 바(Bar)를 보고 우리는 확신했다. 여기는 한식집이라고.



그들은 진짜 비비기 위해 비비고였다.

비비고의 시작은 그 이름에 충실한 비빔밥 뷔페였다. 밥과 원하는 재료를 넣어서 먹는 현대적인 한식 레스토랑이었다. 나랑 엄마는 참 맛있게 먹었다. 해외에 가면 어떤 한식이라도 맛있기 마련. 밥이 얼마나 윤기있고 나물이 얼마나 싱그러우며 고추장이 얼마나 매콤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입에 비빔밥이 들어온 것이 중요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CJ 계열이며 한국에서 보지 못한 브랜드라는 사실이.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해외시장을 저격한 브랜드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기서 끝. 여행은 짧았고 귀국 후, 금세 잊었다. 싱가포르 한복판에서 CJ계열의 비빔밥집을 발견한 것은 신기했지만 굳이 찾아먹을 맛은 아니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비비고는 쟁쟁한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해외지점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레스토랑으로서 비비고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은 비비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비비고는 그렇게 한 대기업의 실패한 브랜드로 남지 않았다. 비빔밥 레스토랑이라는 정체성은 로고에서만 찾을 수 있었고 간편식 브랜드로 완벽히 탈바꿈하였다. 그중에서도 냉동만두는 신화를 써내려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우리집 냉동고에서 점점 비비고 만두가 보이더니 자취를 시작하고는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즈음부터 국, 탕, 찌개, 반찬, 김치 등 종합 식품 브랜드로 성장했고 이내 곧 HMR 브랜드의 왕좌에 앉았다.


CJ가 비비고라는 브랜드를 만들 당시 간절히 염원했을 해외시장에서의 성공도 이뤘다. 비빔밥이 아니라 냉동만두로의 성공이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말이다. 중국, 일본의 만두들을 제치고 업계 1위에 올랐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K' 열풍에 힘입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린 결과이기도 했다.




비비고가 냉동만두 신화의 영광스러운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어린 소비자들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안다. 우리 세대 냉동만두의 제왕은 해태의 '고향만두'였다. 봉지 중간을 살짝 뜯어 전자레인지 돌려 먹거나 각종 요리에 사용되었다. 속이 살짝 비었지만 괜찮았다. 가성비와 익숙함으로 밀어붙였다. 적당한 가격과 오랜 전통은 확실히 무시 못할 강력한 무기였다. 그들은 그런 성공에 도취했던걸까. 비비고가 프리미엄으로 차근차근 무장하기까지 해태는 손을 놓고 있었다.



'비비고는 왜 비비고일까 2'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