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punyee Jan 07. 2021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쓰러지다 (공황장애와 결혼#1)

도쿄 중심의 한 역에서 쓰러진 후 삶이 달라졌다.

월요일부터 거래처와 골프가 있는 날이다. 많은 영업사원이 그렇듯 평일 거래처와의 골프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평일에 골프를 치러 간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울 중심가 소공동에 있는 사무실에 얼굴도장을 찍고 출발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초봄을 느낄 수 있는 야외가 더 좋은 것은 당연하다.


여러 차례 함께 했던 경험이 있는 멤버들과 치는 골프라 부담 없이 즐겁게 마쳤으며 저녁식사를 할 때 즈음에 끝나 넷은 모두의 중간 지점인 수원으로 향해 장어를 안주로 술 한 잔 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가 곁들여져 술자리는 밤 11시가 넘도록 계속됐으며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즈음이 됐다. 서둘러 내일 일본 출장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잠을 청했지만 아침 8시 4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새벽 5시 즈음에는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푹 자지는 못했다. 과음까지 해서 그런지 잠들기까지도 꽤 뒤척였다.




내 나이 38세. 외국계 종합 화학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영업을 담당한 지 11년 차로 많은 30대 후반의 미혼남 직장인들이 그렇듯 여러 가정사를 제외하고 나 스스로 혼자만 놓고 보면 회사 일이나 경제적으로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중이다. 매일의 주된 생각은 ‘이번 주말에는 뭘 할까?’, ‘A사에서 새 모델의 차가 출시되는데 사고 싶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여자가 없네’ 등 지극히 평범한 생각들이다.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고 해도 해외출장이니 좀 자 둬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도쿄 출장의 첫째 날이다. 하루에 세 곳의 거래처와 미팅이 있어 아침부터 꽤 부지런히 움직였다. 8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11시 반에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와 있던 일본 거래처의 차를 타고 나를 포함한 한국 고객사 한 명, 총 세 명이서 분주히 움직였다. 내가 담당하던 품목이 다양했지만 주로 화장품, 철강, 공업용 제품에 첨가되는 정밀화학 제품이 메인이었다. 오늘은 모두 화장품과 관련된 거래처와 미팅을 했다. 미팅 3건 모두가 도쿄에서 있었지만 거래처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보니 점심은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로 대신하고 대신 저녁을 거하게 먹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장어를 먹을 때 마늘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말할 때마다 마늘 냄새가 나는 느낌도 든다. 최대한 말을 아껴본다.




드디어 2015년 3월 24일(화) 오후 5시 반, 마지막 미팅이 끝나고 일본 거래처의 담당자와 도쿄 요요기 역 개찰구 앞에서 다음에 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한다. 이 담당자는 저녁 별도의 저녁 약속이 있어 헤어지고 저녁은 숙소 근처에서 나와 한국 고객사 사장님 이렇게 둘이 하기로 했다. 너무 힘들어 일본 담당자를 얼른 보내고 한국 고객사 사장님께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복귀하자고 말하려는 참이다. 생각보다 몸이 힘들다는 생각이 중간중간에 든다.


역 앞에서 일본 거래처 담당자와 인사를 하는데 담당자가 ‘리상 다이죠우부데스까? 가오이로가 요꾸나이데스네(괜찮습니까? 안색이 좋지 않네요)’라고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난 길바닥에 주저앉았고 그 날 이후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내가 쓰러졌으니 119를 부르거나 가까운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는 모양이다. 의식이 희미한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쓰러지기 전부터 왠지 내가 말하는 게 어눌했어.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했는데 기본적인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중간중간 식은땀은 계속 났었고 어서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이런 건가? 일시적인 것이겠지. 아… 차라리 잘됐다. 다 귀찮은데 병원에 누워서 내일 일정은 잊고 푹 잤으면 좋겠네.’


다행히 요요기 역 근처에는 큰 대학병원이 있었다. 쓰러졌지만 정신은 있었다. 두 명의 부축을 받아 택시를 타고 5분 내외의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한국 고객사는 연신 내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심장이 너무 뛴다. 금방이라도 가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만약 뛰쳐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 박동이라면 갑자기 멈춰 심장마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숨을 쉬기 위해 억지 호흡을 계속하니 오히려 더 숨이 막힌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다. 식은땀은 멈추지 않고 온 몸을 적신다. ‘혹시 뇌졸중이 이런 증상일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어라 내가 왜 이러지? 뭔지는 몰라도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대학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하자 갑자기 안도감이 든다. ‘이 큰 대학병원 더구나 의료 수준이 꽤 높은 일본의 대학병원에서 적어도 급사하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일단 택시를 타고 올 때보다는 훨씬 나아짐을 느낀다. 혈압을 쟀는데 180 이상이 나온 모양이다. 간호사가 너무 높다고 얘기하니 의사는 참고사항일 뿐 이런 경우에는 갑작스레 혈압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린다. 다행이다.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훨씬 안정됐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의사가 내 보호자들에게 CT를 찍으라는 얘기를 하며 보험이 있는지 유무를 묻는다. 이 와중에도 여기도 보험이 없으면 의료비가 꽤 비싼가 라는 생각이 든다.  CT를 찍는 기계에 들어가기 전에 절대 눈을 뜨지 말라고 한다. 2~3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날은 이상하게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눈을 계속 뜨고 싶어 지는 것이다. 얼마나 간신히 참았는지 모른다. 혹시 내 병이 내 신체 부위를 내 맘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병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의지로 고작 몇 분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은 공포, 몸을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움직여져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도로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몸에 다시 땀이 차오른다.


지옥 같았던 몇 분이 지나고 침대에서 보호자들이 옆에 있는 상태로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 이제야 조금 나아졌다는 기분이 든다. 절대로 갑자기 죽지는 않을 것 같은 큰 대학병원의 응급실 안이라는 안도감과 내가 갑자기 이상해져도 옆에 두 사람이 최소한 의사에게는 알리겠지 라는 안도감이 가장 크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담당의가 다가와 보호자들에게 결과를 설명한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질 만한 별다른 증상이 없으니 퇴원해도 좋고 한국에 돌아가면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내용이다.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한편 나로 인해 일정이 틀어져 버린 두 보호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퇴원을 위해 수납을 하러 간다. 약 4만 엔 남짓의 병원비가 내역서와 함께 청구됐다. 다행히 현금이 있어 현금으로 결제하고 내역서와 영수증을 챙겼다. 회사 출장으로 갔으니 웬만하면 여행자 보험이 적용될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보험이 될까 라는 괜한 걱정도 해본다.


세 명이서 병원을 나서니 저녁 7시 반 정도였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지금까지 저녁도 먹지 않았으니 모두들 배고플 것이다. 하지만 난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 솔직히 이 시간에 도쿄의 퇴근시간 지옥철을 타고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숙소인 호텔까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밥을 먹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으러 지하 1층에 있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본식 음식이 단품으로 나오는 식당이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시켰다. 그런데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아까 쓰러질 때 느꼈던 답답함이 느껴지면서 다시 쓰러질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온다. 일행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의자에 눕기로 했다. 이 얼마나 웃기지만 슬픈 상황인가? 식당에서 일행 둘이 내 앞에 앉아 있고 나는 그 맞은편에서 누워있는 모습이다. 다행히 각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있어 옆 테이블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음식이 하나 둘 나왔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식당이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답답함이 다시 극에 달했다. 참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하에 있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음식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일행들도 그런 나를 두고 식사에 전념하기는 어려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며 다시 한번 졸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이 상황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 중 한 명의 지인이 현직 의사라 한국에 전화하여 내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나를 바꿔줬다. 내 증상을 자세하게 듣던 의사는 아마도 내가 머리를 어딘가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고 난 후 겪는 일종의 뇌진탕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어제오늘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힌 게 아닌가 생각해 봤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나로 인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조금 나았지만 울렁이는 속과 메스꺼움 그리고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은 저녁 9시 정도여서 지하철은 운행을 하는 상황이지만 도저히 지하철을 타고 호텔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세 명이 모두 같은 방향이라 택시를 타기로 했다. 약 2만 엔가량의 택시비가 신경이 쓰기인 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쓰러지지 않게 호텔로 데려다줄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다면 100만 원이라도 지불할 마음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약간 괜찮은 것 같다가도 이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반복됐다. 옆에 앉아있던 일행이 계속 손을 주물러 주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약 50분가량 택시를 탔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어서 호텔에 도착하여 푹 자고 내일이 되면 이 상황이 끝나 있기를 제발 바란다.  


다음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