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도착하니 때마침 회사 임원들과 다른 부서의 팀장들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거하게 한잔 했는지 시끌시끌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일행과 마주치자 상황을 모르니 반갑게 그리고 짓궂게 우리를 맞이한다. 일행 중 한 명이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해도 다들 취해서 경청을 하지 않았고 내 안색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지 젊은데 체력이 약하다는 둥,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냐는 둥 얘기를 해대고 있다. 평소 같으면 불쾌할 일도 아닌데 지금은 엄청 불쾌하다. 아니 짜증난다. 하기야 평소 그렇게 멀쩡하던 내가 타국에 와서 대학병원 응급실을 다녀왔을 줄이야 아무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서 방에 들어가 눕고 싶었지만 상황설명은 해야 하기에 일행이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방에 들어갔고 씻을 겨를도 없이 바로 눕는다. 하지만 일본 비즈니스호텔 특성상 비교적 작은 방에 조용하게 누워 있으니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심장이 뛸 때마다 내 몸도 같이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어서 빨리 잠을 청하려고 해도 심장 뛰는 소리에 다시 잠이 깬다. 그러다가 잠이 거의 들 것 같으면 다시 심장이 뛰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에 깜짝 놀라며 눈이 갑자기 떠진다. 이런 현상이 1분에 한 번씩 지속됐다.
여느 호텔의 창문이 그러하듯 개방이 되지 않는 호텔 창문이 많지만 이 방의 창문은 아예 조금의 틈도 개방을 용납하지 않는 창문이다. 수십 번은 자봤던 방이라 잘 알고 있지만 오늘따라 저 창문을 활짝 열고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아예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진짜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이것이 심근경색의 전조인가 라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하면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는데 결과를 읽으면서도 진짜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으로 다시 두려움은 더해간다. 검색은 포기하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됐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다 되어 간다. 분명 밤새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점심에 먹은 샌드위치 하나뿐인데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고 어서 의식을 잃고 눈을 떴을 때는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면서도 방금 전과 같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증상은 반복됐다.
시간은 이미 새벽 1시를 넘었다. 혼자서는 절대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다. 이 호텔에는 다른 부서의 친한 선배가 나보다 먼저 와서 숙박 중이다. 아까 로비에서도 봤으니 지금 분명 호텔에 있을 것이다. 내가 잠들 때까지만 같이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전화를 하니 이미 자는지 받지를 않는다. 끊으려고 하는데 전화를 받았다. 잠에서 깨서 받은 목소리가 아닌 비교적 멀쩡한 목소리다. 본사 직원들과 술자리가 늦어져 밤 12시가 다 돼서 들어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사정을 설명하자 몇 분 뒤에 내 방으로 와줬다. 솔직히 늦은 밤 이 작은 방에 남자 둘이 같이 있어 달라고 한 자체가 그다지 유쾌한 제안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지금 의식이 있다는 자체가 무섭다.
다행히 선배가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심장 박동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고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옆에 누가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다행히 퀸사이즈 침대에 같이 누워 자기로 했다. 눕자마자 선배는 잠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조금 전과 같은 증상이 시작됐다. 아까 보다는 그 주기가 좀 길어졌지만 동일한 증상이다. 잠이 거의 들려고 하다가 갑자기 숨이 막혀 벌떡 일어나 깨는 행동이 다시 수 차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새벽 4시가 넘었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는 7시 반 정도에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 순간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떤 느낌보다도 더욱더 질식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숨을 쉬려고 노력할수록 심장의 박동이 귓가에 들려온다. 분명 이대로 조금 더 가다가는 심장이 멈추고 그러면서 혈관에 피가 돌지 않고 그러다가 결국엔..이라는 생각이 들며 더욱 패닉으로 빠진다. 이미 머릿속에는 내가 쓰러진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나는 죽어 있다. 내가 연락이 되지 않으니 호텔 직원이든 회사 사람이든 내 방에 들어와 내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오늘 죽었는데..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두려움이 두려움을 계속해서 낳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자고 있는 선배를 흔들어 깨웠다. “구급차, 구급차!, 숨이 쉬어지질 않아요”라고 이 새벽에 큰 소리로 선배를 깨웠다. 잠결에 깼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선배는 프런트에 전화하여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외친다.
선배가 구급차 요청을 끝내는 모습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고 굳이 잠을 자려고 노력하지 않자 심장 박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선배에게 갑자기 이제 괜찮아졌다고 하니 약간은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이때는 몰랐다. 이런 안일한 생각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나저나 프런트에서 이미 구급차를 불렀을 텐데 큰일이다. 지금 괜찮아졌으니 취소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 괜찮아졌다고 병원을 가지 않으면 또 같은 증상이 생기면 어쩌지..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프런트에서 연락이 왔다.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구급대원이 우리 방으로 들것을 가지고 올라가야 하는 상황인지를 묻는다.
걸어서 로비로 내려갔다. 정문에는 구급차가 있었고 운전사를 제외한 구급대원 2명이 나와 선배를 맞이했다. 나를 구해줄 사람들이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그 어떤 때 보다도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껏 모든 나의 증상들이 다 가짜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구급대원들 그리고 선배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나 이제 괜찮아요’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생전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고 지역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옆에는 선배가 졸린 눈을 하고 보호자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