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두 명을 뒷좌석에 태우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시간이여유가 있을 것 같아 가는 길에 커피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내가 자주 가는 예쁜 카페가 있다. 손님들도 역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연신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댄다. 국적을 막론하고 20대 젊은 아가씨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소품과 부담스러울 정도의 푹신한 소파가 인상적인 카페다. 보통은 호텔에서 택시나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가면 되지만 두 명중한 명은 입사 후 한국에 처음 출장을 왔기 때문에 담당자인 나는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호의를 베풀고 싶었다. 비록 출장으로 처음 와본 한국이지만 귀국할 때 현지 담당자가 공항까지 직접 운전하여 배웅하면 그동안의 경험상 좋은 인상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런 그들의 맞은편에 거의 눕다시피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는 나는 힘이 빠진 상태로 눈을 반쯤 감고 있다. 비록 이들과 여기에 같이 있지만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 공항까지 배웅하기로 약속했던 것이 후회된다. 무엇보다도 조금 전 지하철에서 바로 내 옆에서 쓰러졌던 그 젊은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자꾸만 그 여자의 쓰러진 모습이 나와 겹쳐 보인다. 이런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 앞의 두 사람의 대화에 합류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다. 즉,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얼굴이나 눈을 보고 상대와말하거나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 그리고 지금껏 아무런 문제 없이 당연하게 그렇게 해왔던 것이 지금은 하기 어렵다. 상대의 눈을 응시할 수 없었으며 말을 하면서도 바닥을 보거나 엉뚱한 곳을 보며 대화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흡사 엄마에게 혼나고 있는 어린아이가 엄마가 무서워 다른 곳을 응시하며 주절주절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모습이라고 해야 맞다. 눈을 보고 대화를 하려고 하면 금세 머리가 무거워져 그대로 목이 꺾여 상대에게 꾸벅 인사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매우 불쾌한 기분이다. 어제 조금 과음하여 아직까지 남아있는 숙취일 수 있으나 뭔가 달랐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꽉 막혀 있을 도로를 상상하니 한숨부터난다. 더욱이 갔다가 같은 길을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갑갑해진다. 이제라도 이 둘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난 곧장 집으로 가고 싶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을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택시를 타고 가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최대한 피곤한 기색으로 조심스레 말을 돌려서 얘기해 본다.
“보통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오늘은 OO 씨가 한국이 처음이라 제가 직접 배웅하네요. 어제 과음해서 미안합니다. (콜록콜록)”
라고 하며 마른기침도 과장하여 곁들였다. 그러나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네, 그래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란 “컨디션도 좋지 않아 보이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우리 둘이 충분히 갈 수 있어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기야 내 지금의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 택시를 타고 갔으면 하고 바랄 수는 없었다. 물론 그들은 택시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전혀 관계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커피숍을 나와 한 시간 남짓 달려 공항에 도착하여 둘의 배웅을 마쳤다. 공항까지 가는 중간에 커피숍에서와 같이 머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중간중간 두 차례 있었지만 음주 이후 느낄 수 있는 흔한 숙취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빨리 집으로 돌아가 푹 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한 시간 정도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 공항에서 집으로 출발 후 약 40분가량 경과했을 무렵 나는 고속도로의 터널을 몇 번째 지나고 있다. 집까지는 약 15킬로미터 정도 남았다. 터널의 중간 정도 달리고 있던 그 순간 별안간 ‘그놈’이 왔다. 뭔가 예고도 전혀 없이 지난 3개월간 한 번 도 오지 않았던, 그리고 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그놈이 온 것이다. 이미 예고를 했었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속 약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 더구나 터널에서 마주친 그놈은 지금까지 와는 그 강도가 전혀 다르다.
몸이 내 맘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숨이 쉬어지지 않기 시작하자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온다. 심장 박동은 마치 최고 속도에 가까워지는증기기관차의 묵직한 바퀴소리와 같이점점 빨라지고 커진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여 갓길에 차를 대고 싶지만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핸들도 잡고는 있지만 잡은 느낌이 없다. 오른쪽으로 가고 싶지만 직진만 할 뿐이다. 마치 의식이 빠져나간 나 자신의 껍데기만이 운전석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온 힘으로 핸들을 확 꺾어 오른쪽의 차를 부딪혀 내 차가 뒤집히면서 차가 멈추는 상상을 해본다. 무서움은 점점 극을 향해간다.오전에 지하철에서 쓰러졌던 여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던 그 여자와 비슷한 증상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진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한 증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하다.
공황장애라고 진단을 받기 전에 이미 이런 비슷한 경험은 해봤다. 익숙할 법도 하지만 지난 3개월간 관리를 잘 해왔으며 지금은 거의 잊고 지내고 있었던 공황장애의 증상을 다시 마주한 것이다.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어서 벗어나고 싶지만 적어도 20분 정도는 계속해서 지속된다는 것은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익히 잘 알고 있다.
터널 안이지만 창문을 모두 열고 미친놈처럼 큰 소리로 허공에 대고 살려달라 외친다. 누가 보면 잠을 깨려고 혼자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겨우 터널 내의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켜고 잠시 쉬었다가 가야겠다. 모든 차들이 빨리 달리는 터널 내부에 정차하고 의자를 뒤로 눕혔다. 하지만 터널 내부라 그런지 달리는 자동차의 소리가 너무 커 오히려 더 마음이 불편하다. 더구나 언제라도 뒤에서 내 차를 추돌할 것 같아 불안하다. 추돌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 비상등을 켠 채로 조금씩 앞으로 이동해 본다. 터널만이라도 나가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해서다. 약 10미터가량 앞으로 이동했으나 이내 운전에 집중이 안되고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 10초가량 호흡을 다지고 다시 앞으로 이동했으나 이내 10미터 정도 지나자 지금 상황에서는 운전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그렇게 조금씩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터널을 겨우 빠져나왔다.
터널에서 나온 후 다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나는 갓길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 대고 소리도 질러보고 제자리 뛰기도 하며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해 본다. 속으로는 ‘난 건강하다’라고 몇 번이고 계속 되뇌어 본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와 가장 빠른 IC를 통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기로 했다. 집과 가까운 IC는 아직 10여 킬로 미터를 더 가야 하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약 1킬로 정도만 가면 군포 IC가 있었다. 터널 밖이라 그런지 터널 내부보다는 한 번에 조금 더 갈 수 있게 됐다. 맨 오른쪽의 주행 차도가 아닌 갓길로 비상등을 켠 채로 200여 미터를 가다가 정차했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200여 미터를 가다 서기를 반복하여 겨우 고속도로 밖으로 빠져나와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대로변의 큰길에 정차하여 좌석을 뒤로 눕히고 누웠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던 것 같다.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지난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이를 받아들이기어려웠으나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껏 공황장애에서 해방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다. 비록 몇 개월간이지만 공황장애 진단 이후에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높아져가고 있던 지금 다시 이런 증상을, 더구나 그 강도는 더 세게 돌아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다시 원점으로 왔다는 허무감에 한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니 원점보다 더 아래로 왔을지 모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눈을 감고 당분간 눈을 뜨고 싶지 않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은 죽고 싶다. 그래야 이 증상이 지나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