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허세인가?

by 버들s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모른 척해야 하나?'

'물건을 들어준다고 말해볼까? 오지랖인가?




아이야!

엄마가 지하철을 타고 출, 퇴근을 하잖아

엄마가 앉아 있는데 엄마 앞에 짐을 많이 들고 서있는 사람이 있으면 엄마는 갈등을 해.

"짐을 들어줄까요?"라고 물어봐야 할지,

그냥 모른 척 앉아 있어야 할지

너는 분명 오버라고. 오지랖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오지랖이란 걸 알고 있는데 말이야, 엄마는 늘 그 판단이 어려워.

어디까지가 오지랖인지, 어디까지가 배려인지...


이런 경우도 있어.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엄마 앞에 서계실 때.

예전에 어떤 어르신이 자리를 양보받아서 속상했다고 친구한테 하소연하던 얘기를 들은 이후로는 선뜻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하지 않아


자리를 양보해야겠다는 생각, 앉아 있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아무 말 않고 내리는 것처럼 일어나서 다른 칸이나 멀리 있는 자리로 가곤 해.


앉으실 어른의 마음을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오늘도 엄마 앞에 네 또래의 청년이 손에 여러 개의 쇼핑백을 들고 서있는 거야.

'물건을 들어준다고 물어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에게 찾아온 마음을 들여다본다.


글쓰기의 효과인 듯, 아니면 부작용인 듯

엄마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돌이켜보게 돼.


엄마는 왜 짐 들고 서있는 사람이 불편할까?

짐 들어 드릴까요? 고 말도 못 하며 신경 쓰고만 있을까?'



예전, 엄마가 청소년 시절.

버스 타고 등, 하교를 하던 시기니까 중학교 다닐 때 때부터인듯하다


버스를 타면 어른이 보이면 무조건 자리를 양보하고,

앞에 짐을 들고 있는 사람, 특히 학생들이 가방 들고 서 있으면 무조건 앉아 있는 사람이 그 짐과 가방을 들어주었어


어떤 때는 "들어줄까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앉아 있는 엄마 무릎에 그냥 짐이나 가방을 올려놓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앉아 있는 사람이 짐을 들어주는 게 그냥 일상이었지.


그때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눈총을 주었어.

그래서 어른께 자리를 양보하면서도 착한척하는 것 같아 엄마 마음이 불편해져 그냥 버스에서 내린 적도 있단다


그렇게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아있기도 불편, 양보하기도 불편한 마음이라 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고 마음 편하게 그냥 서서 가기도 했어


어떤 날은 엄마의 가방과 짐이 많아 받을 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짐을 받아서 엄마 무릎 위 짐 위에 높게 올리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많은 짐으로 오히려 앉아 있는 게 힘들 때도 있었지.

그렇다고 일어나 자리에 짐만 올려두지도 못했어.

짐 들고 있던 사람의 마음이 불편할까 봐..


돌이켜 보면 엄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살았어.

서있는 어른이 힘들까 봐, 물건을 들고 있는 사람이 무거울까 봐가 아니고

남들이 엄마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할까 봐 그게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나쁜 아이가 아닌 척 자리도 바로바로 양보하고, 엄마도 무겁고 힘들지만 괜찮다며 짐을 다 들어주려 했던 거야.

그때는 그 마음은 분명 배려도 아니고, 오지랖도 아닌 허세였던 것 같아.


'허세.'...

왜냐하면 자리를 양보받은 어르신이 고맙다는 말을 안 하시거나,

물건을 들어주었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안 하면 그게 또 서운하기도 했거든.


왜 사람들이 고마운 걸 모르지?

고맙다고 인사도 안 해?라고

괜히 뒤에서 혼자 마음 상하곤 했어.


상대방이 먼저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짐을 들어달라는 것도 아닌데

엄마 마음 불편해서

엄마가 양보해 주고 짐 들어주고는

상대방이 고맙다는 소리를 안 했다고 마음 상한 건 아닌데 말이지.


그때 엄마는 인정도 받고 싶었나 봐.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착한 아이로 인정받았다고 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서 몸이 아프고 힘든 날도 자리를 양보하고 물건을 들어주었던 거지.


버스 탄 사람들에게 '나 물건 들어주는 착한 학생이에요.'라고 보이고 싶었던 거야.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게 다 허세였어


'허세'

실속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

남들 눈을 많이 의식했던 것이지.

엄마는 엄마가 닥친 상황보다 주변의 눈을 더 많이 의식하고 살았어.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 친구들을 잘 도와주었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으며 웃어넘겼지.


고등학교 때였어

어떤 친구가 엄마에게 "네가 성인군자야, 왜 화를 안내?" 라며 화를 낸 적도 있단다.

화내면 그 친구랑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어서 '난 너와 달라, 다른 사람이야. 이런 일로 화내지 않아' 라며 마음이 상했지만 겉으로 표 내지 않았어.

아닌 척, 괜찮은 척 허세를 부린 거지.


사회에 나와서도 일이 생기면 엄마가 나서서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고

동료나 지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또는 미리 어려울거라 짐작하여 엄마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하고 행동했어.

오지랖이 넘쳤지.


근데 그 오지랖이라는 것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엄마가 부려왔던 허세의 다른 말이네

오지랖을 가장한 허세였던 거야.


'도덕적 허세'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는 과장된 모습.


오지랖 뒤에 단단히 숨어있는 '허세'란 녀석을 엄마가 사유해서 발견했어.


허세에서 비롯된 배려, 오지랖, 참견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들.

엄마의 과거모습을 돌아보며 깨닫게 된 '허세'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작가의 가장 속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가 있다고

엄마가 들려주고 싶지 않던 부끄러운 엄마의 과거와 마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엄마의 오지랖 그리고 허세.....

'오지랖'을 어찌 부려야 '배려'가 될 수 있을지 정리해 보련다.

오지랖 속에 숨어있던 '허세'도 열심히 사유해 보련다.

부끄럽지만 도전!!!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 엄마도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이 근심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경우에 맞게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도와라.(주 1)



주 1)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현대지성


사진. ko_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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