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모임에서 내 글쓰기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는 내 생각을 적어 내는 것을 글쓰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글쓰기가 아니었다.
글쓰기란 내 생각을 사유한 글이 다음 글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내가 기록한 문장이 이어지는 문장과 결을 같이 하면서,
문장들이 만들어 낸 문단이 다른 문단과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가야 되는 것이다.
글 끼리 대화를 나누고, 결을 같이하고, 말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글과 문장끼리 서로 대화가 없는 죽어있는 글을 써왔다. 죽어있기에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글과 문장이 나누는 의미를 잘 담아 살아 숨 쉬는 글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글들의 대화를 담아내는 사람으로 존재할 뿐이다.
글이 살아 움직여야 독자에게 닿을 수 있게 되고, 읽는 사람마다 본인들의 느낌으로 공감하고 해석하면서 재 탄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글쓰기인 것이다.
이렇게 또 한걸음 나아간다.
대장장이가 한 개의 범종을 만들 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온갖 잡스러운 쇠붙이를 모아서 그는 불로 그것을 녹인다.
무디고 녹슨 쇳조각들이 형체를 잃고 용해되지 않으면 대장장이는 결코 그것에 망치질을 못 할 것이다.
걸러서는 두드리고 두드리고는 다시 녹인다.
이렇게 해서 정련된 쇳조각은 하나의 종으로 바뀌고 비로소 맑은 목청으로 울 수가 있다.
이미 그것은 망치로 두드리던 둔탁한 쇳소리가 아니다(주 1)
나는 글쓰기 초보다. 내가 겪었던 잡스러운 일들을 모아서 녹여내고 걸러낼 것이다
걸러서는 써보고 지우고 또 써볼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잡스럽지 않은 맑은 정신을 책으로 담아 보련다.
주 1) 이어령의 말, 이어령, 세계사, 2025
사진. ko_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