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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브리지 Aug 20. 2023

모비 딕의 포경선 피쿼드호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

[10년 후 더 빛나는 책]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지금처럼 여름 막바지에는 한동안 가보지 못한 바다를 더 늦기 전에 향하고 싶다. 동해와 남해도 좋지만, 남태평양의 고래가 뛰어노는 것을 본다면 더 환상적일 것이다.                                                    

혹등고래의 점프 (Breaching)

아이와 함께 읽은 모비 딕

며칠 전 아이가 문고판 80페이지 모비 딕을 읽기 시작하여, 나로서는 모비 딕(혹은 백경)의 줄거리를 대충 알 뿐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기에, 아이와 같이 읽을 요량으로 모비 딕을 완역한 책(이종인 옮김, 현대지성)을 주문하였더니 700페이지 벽돌책이 책상 위에 놓여졌다. 아이와 함께 읽다 보니, 중간에 멈출 위기가 있었지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을 수 있었다. 끝나지 않는 여운이라, 2011년에 나온 윌리엄 허트와 에단호크가 출연하는 모비 딕 드라마를 다시 튼다. 


허먼 멜빌은 또 하나의 고흐

모비 딕의 저자 허먼 멜빌은 스무 살 무렵의 젊은 시절에 상선을 몇 차례 탔고 포경선을 타 본 경험을 토대로 하여 32살인 1851년에 모비 딕을 출판했다. 그러나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과학책 같고, 책의 초반부에 ‘만취한 기독교인보다는 정신이 없는 식인종이 낫다.’와 같은 반기독교적인 문구들이 있다 보니, 출판 후 그가 죽기 전까지의 40년간 모비 딕은 미국 내에서 철저히 매장되었다. 20세기 초에 와서 작품이 재조명되어 미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게 되었으니 소설계의 고흐를 보는 듯하다.  


공동의 비전을 잊어버리고 개인적인 복수에 불타는 선장

소설이면 줄거리와 인물도를 빼먹으면 안 될 듯하다. 줄거리는 다들 아는 것처럼, 평범한 가장이었던 선장(에이해브)이 일터를 가서 공동의 돈을 버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개인적인 복수에 불타는 심정으로 흰고래 모디 딕을 찾아 항해하는 과정이다. 


전기가 아직 발명되기 전이어서 고래의 향유 기름은 당시에 큰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포경선 피쿼드호에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과 이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을 포함하여 30명이 승선하였다. 오직 스타벅만이 괴물 고래에 대한 복수로 가득한 선장에게 사업에만 집중하자며 유일하게 대항한다. 2년여의 항해 끝에 모비 딕을 만나고 스타벅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필요한 향유 기름을 채웠으니 출발지인 낸터켓 섬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모비 딕의 인물도

모비 딕은 책의 대부분인 20분의 19에 해당하는 지루하고 세세한 백과사전을 참고 내어서야, 마지막 20분의 1에서 소설의 진가가 펼쳐진다. 포경선 모선에서 고래를 잡기 위해 분리된 작은 보트 4대가 고래 사냥을 하러 나간다. 스타벅은 마지막까지 모선에 남게 되었다. 모비 딕과 선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그 긴장감과 공포감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극대화된다.  


에이해브 선장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인 스타벅

모비 딕은 도전하고자 하는 꿈을 상징하기도 하고 당시의 정치, 종교, 철학적 관점에서는 거대한 악과 불평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포경선 피쿼드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을 대표하여 승선을 시켰다. 목표 의식에 무조건으로 돌격하는 에이해브 선장,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실력 있는 스타벅, 그리고 한 걸음 떨어져 기록하는 이슈메일. 이 모든 인물 특성이 상황에 따라서 사회와 조직을 전진시키기도 하고 퇴보하게도 한다.


결국 스타벅은 동조하는 세력을 얻지 못하여 에이해브 선장의 이기적인 복수를 잠재우지 못하였다. 모선이 되는 피쿼드호는 그렇게 침몰하고 말았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모습은 모비 딕에 나오는 피쿼드호와 다름없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스타벅을 충분히 키우고 있는가? 그들은 맹목적이고 노련하고 똑똑한 척하는 에이해브에 제대로 대항하고 있는가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적을 깨고 외치는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모비 딕은 단지 소설로 보지는 말자. 인물과 사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각각에 투영되어 있는 인생관에 공감하게 된다. 


“한 배는 순풍을 받으며 즐겁게 나아가고, 다른 배는 고집스럽게 역풍을 상대하며 나아갔다.”는 표현에서 다른 배는 우리들 자신의 투영이다.   


오랜 시간의 정적을 깨고,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는 외침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던져준다. 모선에서 떨어져 나와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할 순간이다. 


by 웨이브리지, 글모음 https://brunch.co.kr/@way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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