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더 빛나는 책]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봄직한 보통 사람이거나 조금은 나아 보이는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건과 새로운 발견을 계기로, 평범한 삶에서 급격하게 불행으로 추락할 때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스토리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어렵게 재기하거나 회복해 가는 과정을 함께 응원한다. 반면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거나 부자된 사람이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이야기에 대하여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통쾌하게 느낀다고 한다. 영화 및 소설 속의 이야기는 이런 플롯을 따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공감을 얻고자 하는, 드라마와 영화, 소설과 신문 기사, 제품 마케팅, 인물의 홍보(정치, 인재 중용)는 스토리텔링에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지불하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회사에서 그리고 일상 대화에서조차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놀랍게도 이미 2300년 전에 스토리텔링을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아리스토렐레스는 ‘시학’으로 정리하였다. 시학은 본래는 비극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이지만, 오늘날의 드라마와 소설의 스토리텔링 방법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에도 권력가들의 말투와 행동의 특징을 흉내 내는 희극이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은 공감이 길게 가지 못하는 단편적인 즐거움이라고 표현하였다.
드라마를 만들 때 핵심 구성 요소는 이야기의 플롯과 주인공의 성격인데, 플롯이 가장 중요하다고 시학은 말한다. 플롯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에서, 우리를 매혹하는 급전과 반전의 에피소드를 수 차례 포함하고 있다. 주인공이 급격하게 추락할 때 사람들은 행여 내가 당하는 마냥 공포와 연민이라는 감정의 격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 공포를 느끼는 것이고, 부당하게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부모가 뒤바뀐 것을 청소년기에 알았을 때, 가족의 아픔과 죽음,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 억울한 누명과 같은 발견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노래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게 되는 전형적인 순간이다. 부잣집에 살고 있던 소년이, 부모가 다른 사람이고 다른 곳에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 소년은 부모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집 안에 갇혀 고된 일과 차별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소녀에게, 도둑이 떨어뜨린 티아라가 어린 시절의 자기 것임을 발견하였을 때,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혼동에 빠지게 된다.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 그는 지금 감정의 카타르시스에 흠뻑 빠져 있다. 비극에서 얻는 쾌감은, 우리가 당하는 위험 부담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드라마를 통하여 가상적으로 얻는 경험의 쾌감이다.
우리네 드라마는 작은 발견에서 시작한다.
연극과 영화, 소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종사자가 아닌 바에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접할 길이 거의 없지만,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극적인 삶을 산 주인공들의 뉴스를 보며, 어떻게든 이벤트를 만들어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시학에서 말한 연민이라는 프레임에 늘 둘러 쌓여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죽음을 맞는다.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으로는 아무런 감명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한 비극의 운명을 지닌 거창한 주인공을 지향하지는 말자.
대신 우리의 삶 속에 작은 드라마를 만들어 보자. 삶 속에 드라마는 작은 발견과 작은 반전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이런 면이 있었어? 이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여기에 예쁜 카페가 있었네.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을까? 일에서도 잘못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잘못된 점을 발견하여 이를 개선하여 본다. 늘 보던 사람에게 대화를 걸고,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우리가 늘 하고 있는 일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에서 드라마는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