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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브리지 Jan 21. 2023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10년 후 더 빛나는 책]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올해 들어와 두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권은 SF 소설이고 다른 한 권은 AI 기술서이다. 그러다 잠시 그 책들을 내려놓고, 필독서라고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데미안’을 집어 들게 되었다.

 

내 소명을 찾아보자.

새해 일출을 바라보며 “올해는 내 소명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희망과 부정이 섞인 질문에 대한 학교 친구의 응답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한 달 내내 데미안 앓이를 하였다. 책을 읽고 나서 동시대의 젊은이를 그린 영화를 보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SNS을 통해 살펴보았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찾기도 전에, 국가의 의무로서 참여한 전쟁의 참혹상과 그 안에서 휴머니티를 이야기하는 영화 2편,‘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년작)’와 ‘1917(2020년작)’은 지난 며칠 동안 계속하여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언제나 청년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10살의 소년 에밀 싱클레어(출판시 헤르만 헤세가 사용한 가명이다.)는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간다. 온갖 선(善)으로만 둘러싼 집을 떠나, 라틴어학교, 짐나지움(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의 작은 사회를 거치고 전쟁에 참여하면서 선(善)과 악(惡)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겪고, 그 과정 속에서 길 안내자를 만난다. 데미안과 에바부인 그리고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고, 혼자만의 집중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게 된다.

국가와 대중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택한 헤르만 헤세

개인 의지와 집단 의지

헤르만 헤세(1877~1962)가 글을 쓴 1919년은 이제 막 비극적인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이 끝난 직후이다. 유럽 양 진영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집단(국가)의 의지인 제국주의 전쟁에 누군가는 강제로 징집되고 또 어떤 이들은 전쟁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보고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찾아가지도 못하고, 폭력적인 기관총 앞에서 수백만의 젊은이들의 꿈은 사라졌다.


그리고 20년 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다시금 전쟁터로 향하던 젊은이들의 배낭에는 ‘데미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집단 의지로 전쟁에 참여하나 개인 의지는 국가와 동일하지 않기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전쟁 속에서도 또는 삶이 전쟁과 같더라도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가이드가 되었다.


너 안에 답이 있다.

데미안은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네 안에 답이 있다고 말을 건넨다. “이 봐,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우리보다 더 잘해 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자신의 뜻을 별이나 그 비슷한 곳까지 향하게 하려 한다면 그건 이룰 수 없는 일이겠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꼭 갖추어야만 하는 것.  그것만 찾는 거야.  


소명을 대하는 네 가지 분류

자신이 원하는 것에 몰두하는 소수와 덕업일치의 삶을 이뤄낸 극소수의 두 부류의 이상주의자처럼 용기와 행운을 갖기는 쉽지 않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통의 우리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평범한 두 부류 중 하나가 된다. 직업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갈구하는 ‘실용적 구도자’, 그리고 현실과 주변 환경으로 인하여 사는 것에 바빠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잃어버렸거나 찾는 것을 보류한 다수가 있다.  

언제나 청년기, 소명을 찾아간다.


실용적 구도자의 세 가지 질문

결국 우리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남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집중하는 것과 직업을 하는 중에서도 스스로 하고 싶은 소명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 '실용적 구도자'가 되는 것이다.  


데미안이 제안하는 고독 속에서 생각에 집중하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찾게 된다는 것은 다소 몽상적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못 찾는 이유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외형적인 물건이나 지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그것에 둘러 쌓여,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세계를 전혀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명을 못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직접 경험의 한계 때문이다. 개인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주변 환경의 영향은 제한적이어서, 자신의 직접 경험으로는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 발산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싱클레어의 성장은 자기만의 깊이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 그의 삶의 경로를 통해서 다양한 경험과 만남이 전제되었다.

 

소명을 찾기 위하여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1.   살아오면서 행복하였거나 보람을 느꼈을 순간들을 떠올려 보자.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2.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조건은 무엇인가?

3.   이상적인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현재나 미래의 나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인가?  


이 행동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명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래서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량으로 세상을 돌보고 위로하고, 세상을 한 단계 발전시키거나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을 찾았을까?

싱클레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을까?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소설을 쓴 후 40년이 지나서 데미안의 서문을 새로 작성하며 평생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더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by 웨이브리지, 글모음 https://brunch.co.kr/@way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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