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그리고 우리들의 천국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by wayne

이청준은 소록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섬에 관찰자이자 지배자로서 등장한 조백헌을 조명한다. 이청준은 분명한 것을 말한다. 유토피아에 관해서다. 그럼에도 불분명한 것은 유토피아 그 자체이다.

그것은 존재함에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라면 그저 허상인가? 우리가 정의내릴 수 있는가? 정의내릴 수 없다면 유토피아는 다시, 어디에 있는가.

( 이미지 출처: YES24)


잠시 수리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또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자. 모든 학문이 그렇듯, 수학도 진리를 추구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관해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진리가 원형 그 자체여서, 이데아가 바로 수적 대상이라고 하는 플라톤 주의자들이 있고, 이에 반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금은 회의적인 사조도 있다. 러셀은 이발사의 역설을 통해 논리 체계 안에서의 자기언급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괴델은 당대 모든 수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한다. 우리가 진리라고 가정하고 공리로 삼아왔던 것들도 그것이 진리인지는 그 체계 안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가, 상대성을 갖는다.

그것은 더 이상 진리라 불리울 수 없다.

다시, 이청준이 고민하고 여전히 ‘당신들의’ 것으로 남겨두었던 그 천국도 결국 그 진리와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백헌 원장은 그들과 다른 세계에 존재했다. 그는 소록도의 누구와도 운명을 같이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의 ‘천국’은 절대 소록도 주민들의 ‘천국’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추구하던 유토피아는 그에게 있어 진리였겠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던 소록도 주민들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소록도 주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황 장로는 말한다. 우리는 ‘자유’로만 행해왔노라고. 절대로 믿음과 사랑은 존재할 수 없었노라고. 자유라는 것은 막연한 기대다. 평생 억압당하고 주정수와 사토의 그늘, 그 배반의 그늘 아래서 살아왔던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것은 체념으로 가장한 막연한 기대였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의 끝이 어떻게 남아있든 웃어넘길 수 있는 또 다른 체념의 형태이다. 또 사랑이란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의 끝이 어떻게 남든 웃어넘기고, 이에 그것을 최선으로 여기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체념의 끝이다. 결국 다 같다. 전부 체념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더 긴 체념, 그것에 무뎌지기 위한 더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백헌은 그렇지 않았다. 조백헌은 그들의 막연한 기대를 전부 실현하거나, 실현 할 수 없었고 없는 일들에 대해 누군가의 ‘탓’을 하게 만든다. 정당화하려 한다.

그들의 ‘자유’가 실현되었을 때는 아마 조백헌과 소록도 주민들이 잠시 궤도를 같이 했을 것이다. 또 탓할 대상인 ‘육지 사람’들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그들은 바다 밑으로 온 몸을 던져넣으며 둑을 쌓고 외발로 축구를 하며 환호했었다.

허나 이런 방법이 얼마나 오래 갈까. 잠시의 만족은 더 큰 허무를 가져다주고, 누구도 허무에서 살아남을 만큼 무뎌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주민들은 이에 절규하고 분노했다.


책은 조백헌의 광인같은 모습을 비추며 마무리 한다. 아마 그는 자신의 세계를 깨어내고자 했을 것이다. 오히려 소록도 주민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체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그는 이제야 포기하기 시작한다.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놓지 못해 제 삶을 다 가져다 부을 요량으로 머뭇거린다. 비효율적이며 소모적이다. 그러나 그는 또 말한다. 어쩌면 여기선 모두가 이렇게 미쳐야 살아갈 수 있나보다고. 어쩌면 그의 모습은 그가 말하던 천국에 가까워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이 뿐이라는 사실에, 어쩌면 내가 지금 말하는 그들의 천국은 다시 내가 바라고 바랐었고 결국 다다르게 된 지점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결국 나 또한 나의 틀에서, 나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 또한 절대 조백헌과 소록도 주민들의 세상에 다다를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까.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살며 얼마나 다른 이의 세상에 공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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