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세와 행복돋보기
사람들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더 불행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노화는 다가오는 고통이요 젊은 날에 대한 미련이자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슬픔이다. 안티에이징(Anti-aging) 관련 사업은 흥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속도라도 늦추고 싶어 슬로에이징(Slow-aging)을 외친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삶을 피하려는 노력은 십분 이해한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늙을 것이다. 그럴지언정 만일 당신이 지금 3~40대이고 당신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아 괴롭다 해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보다 행복해질 날들이 남아있으니까. 2010년 미국에서 약 30만 명이 참여한 전 연령대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에 관한 연구를 시행했다. 삶의 만족도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가장 높았고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사이가 가장 낮았다. 바닥을 찍은 삶의 만족도는 6~70대에 반등했으며 80대가 되면 다시 10대 후반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일본의 건강관리업체인 닥터트러스트 10~70대 남녀 32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스트레스 지수 추이 또한 30~40대에서 가장 높았으며 나이가 들수록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행복지수는 스트레스와 상관관계가 강했으며 3~40대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삶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경쟁, 승진 압박, 자녀 양육, 노부모 부양, 노후 준비 등 짊어질 책임이 너무 많다. 40대의 불행이야 이해가 되는데 왜 노화가 진행되는 50대를 넘어 60대, 그리고 70대로 갈수록 행복지수는 반등하는 것일까? 40대 후반에 깨달은 바로는 이 무렵이면 좋고 나쁨을 떠나 '이미 정해진 내 패'가 생겨 불확실성이 해소되며, 50대에는 내 패를 즐길 줄 알게 되는 까닭이다. 60대가 넘어가면 내 패에 맞는 삶을 완성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더 이상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더불어 주변의 축하와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일만 남으니 적정한 수준의 건강만 유지한다면 더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말고를 떠나 전교 1등부터 거꾸로 1등까지 함께 시험이 끝난 뒤의 후련함을 느끼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7~80대가 되면 경험만큼 지혜는 더욱 깊어지며 의미 없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눈이 생긴다. 한평생을 살아보면 눈앞의 세상보다 내 마음속의 세상을 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김혜남 교수가 번역한 시이자 동명의 에세이집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를 통해 어떤 마음인지 엿볼 수 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나딘 스테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그리고 좀 더 우둔해지리라.
가급적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더 자주 여행을 하고
더 자주 석양을 구경하리라
산에도 가고 강에서 수영도 즐기리라.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콩 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게 되겠지만
상상 속의 고통은 가급적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시간을,
하루하루를 좀 더 의미 있고 분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리라.
아, 나는 이미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런 순간들을 좀 더 많이 가지리라.
그리고 실제적인 순간들 외의
다른 무의미한 시간들을 갖지 않으려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대신에
오직 이 순간만을 즐기면서 살아가리라.
지금까지 난 체온계와 보온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한결 간소한 차림으로 여행길에 나서리라.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지내리라.
무도회장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나딘 스테어는 이 시를 쓸 당시 미국 켄터키 주 산골에 살던 85세의 할머니였다.
백 년 넘게 사시면서 인생철학을 가르쳐 주시는 김형석 교수는 책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에 새길 말이다. 아버지께서도 김형석 교수의 말씀을 제일 좋아하신다.
코넬 대학의 칼 팔레머 교수의 책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은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질문과 인터뷰 등을 통해 철저히 검증한 인류 유산 프로젝트의 결과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알고 있는데 모르는 사실'을 많이 접한다. 알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인지 언젠가 해야 할 일인지 선뜻 용기가 안 나고 구분이 안 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내 마음에 솔직하기를 통해 어른들의 지혜를 두 가지는 실천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행복세다. 국민이 자신의 재산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재산세를 내는 일이다. 재산세를 내지 않는 재산은 평생 숨겨야 할 돈이며 재산세를 내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는 어떠한 재산으로라도 몰수를 당하게 된다. 불행 또한 그렇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누리는 수많은 행복의 사이사이에는 불행이 존재한다. 우리가 그 불행을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 해도 불행은 행복 사이에 숨어있다 반드시 나타난다. 결국 인생은 불행을 수용하고 내가 내야 할 대가를 지불할 때 내 행복을 고스란히 인정해 주는 것이다. 만일 내가 행복을 누리지도 못했는데 너무나 큰 불행이 다가왔다 해도 크게 놀랄 일 만은 아니다. 그 불행은 과오납된 세금처럼 다시 행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행복을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초능력을 준다는 말이 더 맞다. 내가 그러하니까. 내 주변에는 나를 포함해 큰 불행을 경험한 사람이 많다. 불행으로 인해 무너진 사람도 있지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나 불행을 겪고 난 후 딴 사람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바로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행복해지는 것이다. 암 수술을 받은 내 친구도, 내 가족도 이런 말을 '똑같이' 했다. "세상이 달라 보여. 이제는 행복을 잘 누리면서 살아갈 거야.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제일 소중하니까."
엄청난 세금을 내고 나면 내가 지키고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매우 선명해진다. 잘 몰랐다는 이유로 재산세를 엄청나게 내고 나면 잘못 낸 세금을 최대한 환급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갖은 노력을 한다. 마찬가지로 행복세를 과오납한 사람도 세금을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급받을 행복에 적극적이다. 이것이 다음에서 말할 행복돋보기다.
평소에 때때로 작은 불행이 오는 이유는 평소에 작게 자주 행복세를 납부하라는 뜻이다. 작은 세금을 흔쾌히 내다보면 어느새 내 주변에는 행복이 가득하게 된다. 반대로 불행을 피하고 행복만 쓰려고 하면 어느새 내 주변엔 미납된 행복세, 불행으로 가득 차게 된다. 가산금까지 붙어서. 나는 행복세를 잘 낸다. 부모님께서 모범납세자 표창을 받으신 것처럼 나도 운명으로부터 행복세 납세자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는 행복돋보기다. 김혜남 교수는 대표적인 행복세 납부자이자 행복돋보기 사용자다. 대한민국에서 이 분보다 최선을 다해 고통을 참고 노력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속상하게도 마흔다섯의 나이에 찾아온 파킨슨 병은 김혜남 교수의 노력을 깡그리 짓밟는 억울한 누명과도 같았다. 하지만 김혜남 교수는 이 행복세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밌게 살아라." 김혜남 교수는 파킨슨병으로 육체의 고통에 갇혔지만 '물방울'속의 세상에서 영혼의 자유를 얻었다. 마이크로 월드에서 찾은 커다란 행복을 보는 시선, 이것이 행복돋보기다. 죽을 만큼 몸이 아프거나 평생 겪을 불행을 한 번에 겪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위로의 선물이 아닐까? 평생 겪을 큰 고통을 겪은 아픔만큼 평생을 산 어른의 지혜로운 마음의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노인의 육체적인 눈은 침침하나 마음의 눈은 오히려 선명하다. 게다가 크게 보이는 의미 없는 문제들은 작게 볼 수 있고 작게 보이는 삶의 진정한 행복들은 맘껏 확대해서 보는 능력까지 갖췄다. 해맑은 어린아이의 미소, 봄의 이름 모를 노란 들꽃, 시원한 물 한 모금의 기쁨(30대의 말기 위암환자의 소원은 '죽기 전에 물 한 컵을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일 없는 평온한 하루까지. 이 모든 일들이 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 잘 알기에 언제든 감동을 선사할 행복돋보기를 쓴다. 우리 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매일이 생일이고 파티고 천국에 사시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보고 싶은 아빠 엄마를 볼 수 있으며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 말할 수도 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껴안으며 "아빠 충전 중이야"라고 말한다. 천사님은 결혼 전보다 더 보고 싶다고 쫓아다닌 덕에 내가 뭍으로 당일치기 강의를 다녀올 때 보다 1박 2일로 다녀올 때 더 기뻐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삶은 행복이라는 보물 찾기로 가득 찬 소풍이고 내 마음에는 보물 찾기에 최적화된 행복돋보기가 들려 있다.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까레리나의 시작은 이렇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이 말은 인간의 본능이 추상적으로 행복하고 구체적으로 불행함을 말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마음의 눈을 갖게 된 사람은 "추상적으로 불행하고 구체적으로 행복하게 된다." 이것이 행복세요 행복돋보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