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침부터 행복해지는 습관 -9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어찌할 수 없을 때
조지 베일런트 교수의 <행복의 조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렸다."
좋은 말이지만 실제로 대응을 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고통에 대한 대응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기 쉽다. 이는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보다 더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내게 부정적 대응의 대표선수를 뽑으라면 '어쩔 수 없다'로 하겠다. 내 마음은 고통에 괴로워하지만 나의 생각은 아무런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아픔을 감안하고도 어찌하지 않는 경향은 긍정적으로 대응함에도 불구하고 일이나 상황의 결과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감으로 인해 아픈 것을 피하고 싶은 까닭이다. '포기하면 편하다'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또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오지 않을 바에야 미리 힘을 빼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많이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 말은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 사전에서 없앴다. 어떻게 없앴을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든 분해하고 싶었다. 과연 그게 어쩔 수만은 없는 일인지, 만일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지에 대해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드디어 어쩔 수 없다를 파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를 '그럴 수도 있다'와 '그럴 수는 없다'로 나눈 것이다.
첫 번째, 그럴 수도 있다를 설명해 보겠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없는 일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일이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내 마음에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채정호 교수는 본인의 책 <진정한 행복의 7가지 조건>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수용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는 "진정한 수용은 고통을 받아들이되 딱 그만큼만 괴로워하는 것"이라 말한다. 수용을 하기 위해서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영어 'suffering'의 어원인 라틴어 'ferre'의 뜻은 '실어 나르다'이다. 고통을 내 마음으로 실어 나르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는 동안 불행에 따른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만일 그리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 번도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행복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불행에 빠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채교수는 "우리는 살면서 고통이라는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으로 인한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 바로 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수용이다."라고 말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고통에 따른 저항으로 괴로움이 커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괴로운 이유가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20여 년 전의 증오를 장장 20년이나 품고 살 때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자체가 괴로웠다. 하지만 올해 초 그 증오를 내려놓고 그 시절의 나를 수용하면서 괴로웠던 시간이 삶의 교훈이 되고 영양분이 되는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행복세라 칭하고 딱 그만큼만 고통스럽기를 선택했더니 그 이상의 괴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이유를 잘 찾아 되새김질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많다. 하던 회사가 망하고 약국이 망하고 투자로 큰돈을 날렸다는 것은 분명 큰 고통이다. 하지만 내 가족이 아프고 내가 아픈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항상 내가 낸 세금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천사의 보호막이라 생각한다. 행복만 가득하고 불행이 없을 때는 세상을 도울 일을 찾아 내 힘을 나눔으로써 행복세를 '기부'의 형태로 바꾼다. 그러면 맘이 편하기 때문이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하니 수용은 고통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쓰는 것이다. 수용의 태도, 이를 최인철 교수의 책 <굿라이프>에서는 '심리주의자적 기법'이라 말한다.
두 번째는 그럴 수는 없을 때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도 힘들면서 동시에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이 분명히 있다. 내게는 안식년 이전의 상황이 그랬고 약국을 내 손으로 정리하기 전이 그러했으며 아버지와의 불화로 괴로웠던 시간들이 정말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언제든 내 앞을 가로막을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수는 없을 때' 쓰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내 인생의 수많은 위기에서 나를 건져주고 행복실천가이자 행복실천법 강사가 되게 만들어준 <행복실천습관>이 그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안식년을 진행하기 위해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놨다. 잘 되던 약국을 내놨고 힘들지만 열심히 하던 회사를 정리했다. 즐겨하던 강의도 정리했고 약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도 정리했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생각했지만 결과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정말 '그럴 수는 없는' 삶이었다. 만일 이때 어쩔 수 없다고 끌고 갔다면 분명 큰 화를 입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다행히 '이럴 수는 없다'라는 결정을 했고 그 덕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뒤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방향을 찾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음은 코로나로 인해 힘들었던 약국을 정리한 일이다. 사실 약국의 상태는 매우 나빴지만 투자로 인해 수입은 더 나았기에 시간이 지날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 11시간 가까이 약국에 있으면서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날에 느꼈던 독방에 갇힌 수감생활 같은 약국을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돈이 물론 중요하지만 약사라는 직업을 통해 삶을 누리는 소중함을 외면할 수 없었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게 쓰고 싶어 약국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행복한 출근 즐거운 퇴근>을 하고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노력하는 것이다>를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지금의 약국이다.
마지막은 나 스스로도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진심을 다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거리가 있거나 때로는 불화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일을 '어쩔 수 없다'며 방치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안 계실 무렵이면 자식은 아쉬움과 슬픔에 후회하지만 이미 늦다. 이때는 진짜 어찌할 수가 하나도 없이 슬퍼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40대 중반까지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을 때가 많았다. 가족(특히 아버지와)과 잘 지내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저는 아버지를 포기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며 펑펑 울었던 때가 불과 3년 전이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한 번 이상은 안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는 아들과 아들의 포옹이 쑥스러워 옆으로 돌아서면서도 웃는 아빠 사이다. 나는 매일 "아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들 왔지요~"이라고 두 팔 벌려 아버지를 안는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부모와 자식의 불화로 평생을 보내는 일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기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한 것이고 그다음은 아버지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덕이다. 아무리 혼이 나고 아무리 속상해도 아버지가 계신 것과 안 계신 것의 차이보다 클 수 없기에 그냥 나 혼자라도 좋아하기로 했다.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셔도 무슨 말씀을 하셔도 내 눈앞에 계신 것만으로 충분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나니 어느 순간 아버지의 큰소리도 훈계도 모두 "아빠가 우리 아들을 정말 사랑하지."라는 말로 통역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셨기 때문에 따스한 말씀 한마디를 들어본 경험이 없어 자식에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의 자식사랑보다 더 큰 마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아버지라는 호칭에 더 나이가 드시는 것도 같고 사이가 멀어지는 기분이 싫어 호칭도 다시 아빠로 바꿔버렸다. 지금은 아빠와 세상 제일의 친구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지만 아들이 궁금한 아빠의 마음이 보이고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거울을 보면 내게서도 볼 수 있다. 나 역시 내 아들이 궁금하고 내 아들과의 시간이 너무나 좋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제는 나를 더 옥죄는 고통이 된다. 그렇기에 지금 이대로 있어서 안될 경우에는 반드시 해결해서 고통에서 벗어나야 할 때를 '그럴 수는 없다.'로 정하고 그럴 수는 없을 때가 되면 용기를 내서 반드시 벗어났다. 불행에서 벗어나거나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 행동하는 것을 최인철 교수는 '환경주의자적 기법'이라 말한다.
이렇게 어쩔 수 없다를 그럴 수도 있거나와 그럴 수는 없거나로 나눴더니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나는 강사다. 강의를 하러 가면 으레 인사를 드리고 "잘은 못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겸손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내게 잘못하는 일을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인사는 그럴 수는 없는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만큼 열심히 즐겨보겠습니다."라고 표현을 바꿨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만 하고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이나 못하는 일을 억지로 참으며 한다는 말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하는데 잘 못하는 일이나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과 비교해서 수입이 좋거나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이라 생각해서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든 평생 하려는 것은 인생을 고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사는 인생은 매일매일이 지옥이다. 나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는 그때처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자, 이렇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파해했으니 같이 함께 아침부터 행복해지는 습관을 실천해 볼 생각이 드는가? 다음 챕터는 하루하루의 행복을 쌓아 평생이 행복해지고 인생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거나 위기에서 금방 건져낼 천사의 날개와 같은 오원식의 30년 연구와 실험의 결과를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