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의 습관 - 겸손(Modesty , Rainbow)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어릴 때 너무나 많이 들었다. 겸손하라는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의 내 마음속에는 자리잡지 못했다. 인정욕구의 화신인 나는 어릴 때부터 칭찬이 그렇게 좋았다. 인사를 정말 잘하다 못해 별명이 '안녕하세요 꼬마', '고맙습니다 꼬마'였는데 그 이유가 사실 칭찬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항상 인사를 철저히 시킨다. 아빠의 경험으로 진심을 담은 인사는 화수분처럼 퍼낼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인사는 기분 좋은 마음을 선물한다. 그리고 칭찬이라는 기가 막힌 선물도 받게 된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인사를 참 잘했다. 그리고 칭찬을 받으려고 고개를 번쩍 들고 사람을 보곤 했다. 칭찬을 받고 나면 의기양양한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고 자랑하고 싶어 더 고개를 높게 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밉상이지만 그럴 수 있다. 어린아이 아닌가?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다르다. 아니, 어릴 때부터도 우리는 겸손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나는 겸손이 참 어려웠다. 겸손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게 그렇게 안 됐다. 한마디로 '뺄라진(잘난 척하며 으스대거나 뽐내는의 뜻을 가진 제주어) 아이'였다. 생각은 겸손하는 게 옳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게 싫었다. 내가 뭔가 대단한 줄 착각하고 살았으니까.
열일곱 살 때, 행복한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막연하게 시작하면서 '감사하기'와 '겸손하기'를 넣었다. 암만 싫다고 해도, 암만 다르게 생각해도 절대 틀린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습관의 경쟁에서 항상 붙박이 주전급은 아니지만 언제나 엔트리에는 껴 있는 기준이 '겸손하기'였다. 분명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겸손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어른들께서 겸손을 이야기할 때는 내가 칭찬을 받고 행복이 가득한 마음일 때였으니 무언가 꼭 연관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벼는 고개를 일부러 숙이는 것이 아니다. 쌀알이 영글어 무거워지니 자연스레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겸손이 그렇다. 행복을 가득 채우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행복의 미소가 나만의 것일까 죄송스러운 마음에 나만의 행복을 숨기고자 고개를 숙이고, 내가 행복할 때 누군가 불행의 그늘에서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한 번이라도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자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겸손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행동을 만든 결과다. 겸손은 내가 지켜야 할 습관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면 당연히 갖게 되는 태도다. 겸손한 태도는 행복한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획득하는 행복인증마크라 하겠다. 살다 보니 나란 사람은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실천습관을 잘 쓰는 것만으로도 이만큼 행복할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나는 남보다 부족하고, 남보다 별 볼일 없음에도 흡족할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말하면서 행운에 더 목멘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고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고 싶고 내 노력보다 더 큰 행운이 가득했으면 한다. 인간의 본능으로 당연한 일이다. 이게 나쁘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다만, 우리가 행운을 쫓기 위해 행복을 짓밟지 않았으면 한다.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세잎클로버 사이를 헤맨다. 세잎클로버를 볼 때마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니 손으로 헤집고 발로 짓밟으며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바쁘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우리가 네잎클로버를 찾을 때는 세잎클로버 사이에서 찾는다. 맞다. 행운은 행복하게 살 때 찾아온다. 불행한 사람들이 우연히 행복을 얻게 되었을 때 이들이 행복을 쉽게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행운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무지개를 볼 때의 감정은 어떠한가? 나는 무지개를 보면 '오늘 운이 너무 좋은데? 내가 이런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도 엄청 큰 무지개나 쌍무지개가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일곱 가지 습관을 통해 행복을 실천했을 때 얻는 감정과 일곱 색깔 무지개를 보고 나서 얻는 감정이 같다면 이는 지나친 과장일까? 나는 이들 그리고 무지개를 볼 수 있었으니 오늘 하루를 더 감사히 겸손한 마음으로 살게 된다. 무지개가 주는 행복은 별 볼 일 없는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행복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어릴 때 밥을 흘리거나 남기면 어느 집의 부모나 한결같은 레퍼토리를 썼다. "농부가 이 쌀 한 톨을 수확하기 위해 한 여름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알아? 이 한 알의 쌀이 밥이 되기 위해서는 농부의 1년이 필요한 거야." 어릴 때는 그깟 쌀 한 톨이 뭐가 대수인가 했는데 이제는 안다. 쌀 한 톨만큼 한 번의 작은 행복도 내 인생을 써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벼 한 알 한 알이 여물듯 삶에는 작은 행복들이 채워지고 행복이 가득 차면 우리는 벼와 같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농부의 피땀이 가득한 쌀 한 톨 한 톨은 내 인생 행복 한 톨 한 톨과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