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습관, 나에게 몰입하기 (Immersion)
혹시 당신은 1년 동안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 본 적이 있는가? 남들은 한참 인생에 박차를 가할 마흔한 살, 지금까지 가던 길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진 1년 간의 안식년 동안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생업도 내려놓고 작정한 고민이니 내게는 배수진이었다. 우선 남보다 빠른 성공이 내가 원한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느린 속도로 성공에서 멀어지는 삶에 만족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설령 내가 빠른 성공을 원했다손 치더라도 내 능력에는 버겁고 힘들었다. 넘어지는 것도 두려워 더 빨리 달리지도 못한 채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다음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답은 나와의 대화로만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긴 시간을. 하루종일 걸으며 생각도 해 보고, 책도 많이 뒤적거렸다. 천사님의 배려로 수차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며 가족과 떨어진 채로 몇 날 며칠을 완벽하게 혼자가 되기도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이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 거지?' 끝없이 생각하며 정답이 아닌 내 답을 찾아 헤맸다. 그러기로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가야 했다. 주머니 속에 구슬을 잔뜩 집어넣고 꺼낼 때마다 내가 원하는 구슬이 맞는지 확인하지만 내가 진정 원했던 구슬을 기억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그것이 있다는 기억이 있으니 확신이 설 때까지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간을 샅샅이 뒤지며 내가 행복했던 시간과 불행했던 시간을 한 톨 한 톨 되돌아봤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 지금의 좌우명 '두 손을 펴고 마음껏 살다.'이다. 나는 속도보다 방향, 성공보다 성장을 선택했다. 다행히 지금 나는 두 손을 펴고 마음껏 살고 있다.
인간은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알을 낳음으로써 책임을 다하고 떠나버리는 몇몇의 다른 종과 달리 출산과 양육을 통해 종족의 안정적 번식을 추구한다. 이러한 까닭에 옥시토신의 분비는 생존을 유리하게 하고자 행위에 따른 행복감을 제공한다. 무리 중에 있을 때 더욱 행복감을 느끼고 무리에서 떨어져 있을 때 옥시토신 수치가 낮아져 불행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노르아드레날린의 수치가 증가한다. 내가 홀로 있는 것을 싫어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도 이로써 설명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내가 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홀로 여행을 떠나기까지 했을까? 이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완벽한 몰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세로토닌의 측면에서 설명하면 납득이 된다. 세로토닌은 비교의 호르몬이다. 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기에 남보다 빠른 속도로 성공하는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는 남이 아닌 나의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려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나와의 비교를 통해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자 하는 열망(도파민)을 끄집어냈다.
안식년을 지내기 전까지 나는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식년을 통해 혼자가 된 이유도 문제에만 집중하려면 외로움을 감안해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문제에 오롯이 몰입할 때까지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시간은 나 자신에게 완벽하게 몰입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시간의 주인이 되면 외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사전에서 고독을 뜻하는 영단어를 찾으면 loneliness와 solitude가 함께 나온다. 그런데 영어로 꿔서 loneliness를 찾아보면 외로움이란 뜻이, solitude를 찾아보면 고독이란 뜻이 나온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사람에게 고독 = 외로움인 반면 서구권의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운 시간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반면, 서구권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의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혼자 있는 고통은 loneliness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은 solitude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책 <몰입 flow>에 나온 몰입의 조건 중 "넷째, 주의 집중의 유지가 중요하다. 플로우 상태에 들어가려면 외부의 방해 요소를 최소화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외부의 방해를 줄이면 몰입 경험을 쉽게 촉진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몰입에 자유롭게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자기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인 듯한 느낌이 드는 경험을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이라 표현하는데 이 경험은 외부 여건이 좋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을 때나 큰 시련을 겪는 중에서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위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안식년을 통해 얻은 경험을 설명하자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했을 때,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을 진지하게 물었을 때 나는 몰입에 빠졌다. 그렇게 얻게 된 최적경험을 통해 나는 앞으로의 나의 삶의 방향을 찾아내고 내 운명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는 행복실천습관 중 <다섯 번째 습관, 나에게 몰입하기(Imersion)>가 되었다. 나에게 몰입하기라는 습관을 실천하게 된 나는 더 이상 외로움에 빠지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고독을 즐길 시간이다. 그리고 즐기는 고독은 몰입에 있어 최적의 찬스다. 몰입이 왜 좋냐고? "좋은 삶의 특징은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이다."라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몰입을 할 때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이 된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는 스스로에게 기대는 힘을 자기력(自期力)이라 말한다. 스스로에게 기약하는 힘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커진다.
더 이상 외로움은 없어졌지만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히다가 이렇게 쉽게 사라져 버린 외로움의 원인이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는 외로움에 약했던 외로운 상태의 내가 싫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와 대화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를 알 수 없었고 좋아할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별 볼일 없는 나보다 흥미 있는 남을 아는 데만 관심이 커졌고, 그렇게 내 마음을 속이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와 지내는 고독(solitude)이 즐겁다. 남과의 on-line 상태도 즐겁지만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 '나와의 on-line'을 즐긴다. 내 폰은 알람도 알림도 없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생각에 빠질 때는 비행기 모드 또는 데이터를 차단시킨 2G 폰의 상태가 된다. 이제는 이게 좋다. 그렇다고 남과의 관계를 줄이고 나에게만 빠져 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될수록 남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되니, 내 행복은 물론 내 주변의 행복이 내 것처럼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과 잘 사귀면서도 혼자일 때 나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고독의 상태라 말하는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에게 고독과 몰입은 동의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