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행복을 씁시다. Do HAPPITS-2

보급형 행복론

강의장에서 김경일 교수님을 우연히 뵐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운이 너무나 좋게 강연의 바로 앞 순서 강사로 말이다. 이전에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팬이 되어버린 나는 또 언젠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그 기회가 멋지게 이뤄진 것이다. 그것도 강사 대기실에서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는 영광까지 있었으니 정말 행복(행복하게 약국을 경영하는 이야기를 하러 갔다.)이 가져온 행운이라 말할 수 있다. 그때 내가 드린 인사는 "신이 모든 곳에 임하실 수 없어 엄마를 보낸 것처럼 교수님께서 일일이 가시기 힘든 곳에 '보급형 김경일'로서 행복을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였다. 교수님은 기분 좋게 웃으셨고 나는 지금도 '보급형 김경일'을 꿈꾼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행복은 '보급형 행복'이다. 보급형 행복이 무엇인고 하니 '행복세를 적절히 내고 작은 행복을 크게 보는 행복돋보기를 통해 불행은 짧게 행복은 자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왕이면 고급형 행복을 추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고급형 행복은 행복세가 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나 엄청난 공부와 고민을 통해 삶의 진리를 터득하고 행복한 강사가 된 고명환 작가나 43세에 파킨슨병이라는 큰 병을 앓고 고통을 넘어 깨달음을 통해 행복을 실천하고 알리는 김혜남 교수가 고급형 행복의 대표 격이다. 나는 기껏해야 약국이나 망하고 사업이나 망하고 투자나 망하고 중독에 빠졌던 정도니 이들의 행복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난 보급형 행복이면 충분하다.

보급형 행복이 시시한 것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물 한 컵을 마시면서 행복을 느끼고, 사랑하는 천사님을 웃기면서 행복을 느낀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차리며 행복을 느끼고 부모님을 한 번씩 안고 사랑한다 말씀드리며 행복을 느낀다. 일터에 출근하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함에 감사하고 반가운 동료들과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한다. 맛있는 점심을 골랐으니 다가오는 점심시간이 행복하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핀 노란 꽃을 보며 행복하다. 약국에 사람이 많아 바쁘면 내 삶을 윤택하게 할 수입에 행복하지만 또 사람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책을 읽고 사색하며 또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으니 행복하다. 이것이 보급형 행복의 진가인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을 더 큰 행복을 찾는다 허우적대던 예전에는 불행하기 싫었고 남보다 더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을 피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괴로움이 더 커졌고 더 큰 행복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행복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기 바빴다. 행복의 감정은 크기가 아니라 색깔이다. 내가 알고 있는 색에 익숙해질 뿐 크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주 행복하다 보면 그게 큰 행복인지 작은 행복인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냥 행복의 감정에만 충실해진다. 그렇게 흔한 행복을 잘 쓰면 내 시간은 행복의 순간들로 채워지고 그 순간을 이어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행복의 감정을 쓴 추억들이 모여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살지만, 행복하고 싶은 사람은 가진 것을 즐기기 위해 산다.


보급형 행복론을 지키며 살고 싶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이는 내가 만든 기준에 따른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1977년생,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나이는 49살이다. 법이 바뀌었다지만 나는 나이를 빨리 먹을 수 있는 이전의 방식이 좋다. 그래야 인생 성공에 하루라도 더 가까워지니까. 이제 곧 50살이 되는데 내 기준으로 드디어 인생 성공에 '가능한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성공한 인생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부와 명예, 지위와 업적 등이 해당할 것이다. 인생의 반을 넘겨 이제 삶을 좀 알게 되니 나만의 기준인 '인생 성공 판별법'이 생겼다. 이는 다름 아닌 부와 명예가 아니라 행복을 기준으로 판별하는 방법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듣고 읽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고의 인생 성공이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로 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친척 어르신이 얼마 전에 9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게 명절 연휴 전이라서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이분이 많이 편찮으셨냐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분이 평소에 하시는 말씀이 '즐겁게 살아라.'였습니다. 그날 아침도 아침 먹고 '즐겁게 살아라.'라고 하시고 오후에는 동네 나가셔서 놀다 오시면서도 '즐겁게 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인 저녁시간에도 '즐겁게 살아라.'라고 말씀을 하시더니 그날 저녁 주무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때 모든 가족이 슬퍼하기도 했지만 '참 부럽구나. 99세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사셨으니 이보다 큰 복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보다 부러운 일은 없습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성적표는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매겼다. 그때는 양이나 가라는 성적의 기준이 너무나 끔찍하게만 느껴졌지만 그 뜻을 알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모르겠다.

우선 가는 '가능할 가'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양은 '양호할 양'이다. 그래도 발전했으니 양호하다는 뜻이다. 미는 '아름다울 미'다. 성적이 아름답다니 정말 기쁜 일이다. 우는 '넉넉할 우'다. 성적이 아름답다 못해 넉넉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수는 '빼어날 수'다. 성적 중 으뜸이니 빼어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부처럼 삶도 그렇다. 50이 되면 나이듦이 '가능한 나이'가 된다. 100세 시대에 이르러 50대는 인생의 절반을 돌아선 지점이다. 이제부터 나이 든 사람이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60대가 되면 '양호한 나이'가 된다. 환갑이 60이니 그래도 한 바퀴는 돌아 나이 든 사람이 되었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리고 70대가 되면 '아름다운 나이'가 된다. 100세 넘게 사신 김형석 교수는 70대가 인생의 전성기라 하셨다. 적어도 100년 넘게 행복하게 사신 다른 분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이분의 말씀이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80이 넘으면 드디어 '넉넉한 나이'가 된다. 적어도 80이 넘게 사신 분들은 넉넉하게 사셨으니 성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0이 넘게 사신 분들은 '빼어난 나이'를 갖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생성공이다. 단, 행복한 하루하루가 이어져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사는 사람에 해당한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이어질 때 삶은 성공에 가까워진다.


양로원에 약물안전교육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약을 잘 드시는 법을 알려드리러 가는 것이기도 했고 질문을 받고 도움을 드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분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고 그러면 나도 행복해질 것이 확실하기에 진심을 담아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들, 저는 어르신들이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이미 성공하신 인생이에요. 나이도 많고 아파서 약도 많이 먹는데 무슨 성공이냐고요? 저는 어르신들처럼 오래오래 살아보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하루하루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어르신들처럼 성공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내 기준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 크기보다 색깔이다. 그런 나는 보급형 행복론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1. 행복을 씁시다. Do HAPPIT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