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감정은 살아갈 힘이 된다.
행복은 감정이다. 감정이 풍부할수록 행복도 풍부해진다.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내게는 어릴 때 좋은 추억들이 많다. 좋은 추억은 행복 저장소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덕(?)에 나는 거의 동네 할머니들의 손에서 자랐다.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많은 할머니들께서 나를 보고 말도 걸어 주시고 웃어도 주시고 하셨을 것이다. 어릴 때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자랐다. 서로 서먹한 시간을 지나 친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싸우면 소원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좋은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통해 세상에 많은 내 편 들을 만났다. 어른이 되어서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을 찾고 위로도 받으면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 생각한다.
또한 어릴 때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별다른 장난감이 없었기에 내가 만든 장난감에 가치를 둘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팽이치기와 딱지치기를 잘했는데 그게 내 자존감에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3세부터 19세 학생들의 대입까지 대치동의 사교육을 다룬 대치동 이야기라는 책이 핫하다. 대치동 4세반, 7세 의대반 등 남보다 앞서가야만 성공하고 성공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하는 성과지상주의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그런데 과연 그 선행이 옳은 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대치동 사교육을 '공장식 축산'에 빗대고 싶다. 부모의 불안감을 아이들을 투사체로 삼아 아이들을 투뿔 한우로 키우고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은 모두 소로 크고 싶을까? 이 아이들 중에는 강아지도 있고 고양이도 있지 않을까? 새와 나비는 소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러한 교육으로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 그리고 좋은 직업까지 가질 수 있다는 말에 크게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수능 만점을 받은 서울 명문대 의대생의 살인 사건이나 전교 1등을 자살로 몰고 가는 부모를 보면 이들은 감정의 소중함을 무시한 대가를 크게 치른 것이라는 말은 하고 싶다. 이 아이들이 부모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자기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결과를 갖게 되었을까? 이는 단순히 마음을 돌보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감정의 뇌를 발달시킬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 -> 포유류의 뇌 ->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뇌로 성숙하는 단계를 갖는다. 물론 전 연령기에 거쳐 뇌는 골고루 발달하지만 특히 자신의 시기에 맞는 발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끔찍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는 부모가 아니라 불안에 떨게 만드는 부모로 인해 평생을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무리 동물의 특성상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과 같다.) 위험을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로부터 받았기에 이들은 공격이 아니면 회피의 본능을 갖는 파충류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 결과 한 친구는 공격을 선택했고 다른 한 친구는 회피를 넘어 포기를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 것인가?
나와 함께 일하는 행복 천재 성은정 매니저는 딸 하온이를 행복으로 키운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내 아이를 내 아이답게 키우기 위해 맘 카페를 탈퇴한 엄마는 완벽한 맞춤형 육아를 위해 본인이 경험한 행복을 아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 집중한다. 무수히 많은 질문보다 더 많은 답을 해주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원하는 시도를 모두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로 인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겁이 많고 낯가림이 심한 반면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 찬 눈, 무엇이든 스스로 시도하려는 마음가짐은 ‘온 세상이 놀이터’라 생각하게 된 까닭일 것이다. 이제 일곱 살이 된 하온이는 글도 책도 본인이 익히고 싶을 때 익혔으며 언제나 내가 알고자 하는 일들은 알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이대로 아무 문제 없이 남보다 빠른 성공을 누린다면 완벽한 삶이 될까? 절대 그럴 리 없다.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고 그로 인한 좌절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속도와 성공이 아닌 성장과 방향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몰입하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닮아간다. 이게 행복으로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다. 행복을 누린 아이들은 실패와 시련에 빠지더라도 곧 돌아갈 내 집을 기억한다. 내가 불행의 터널을 지나 도착할 곳은 행복의 공원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삶에 새겼다. 그러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순위의 낭떠러지에서 평생을 위기로 살아야 할 것이라 세뇌당한 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뇌를 갖게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아이는 관심으로 크고 욕심으로 망칩니다.” 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내 아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아빠는 부모로서 너희를 위해서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그건 너희들이 주는 행복 때문이야. 아빠는 아빠의 행복을 쓰기 위해 살아. 그리고 아빠는 너희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 아니라 아빠의 행복이 너희들에게 닮고 싶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아빠가 너희들을 위한 최선으로 아빠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거야.”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행복한 사람으로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자산은 없다고 나는 단호히 말한다. 행복은 ‘생존의 도구’가 아닌가?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행복이 나를 살게 할 것이라는 믿음만큼은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내가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나를 지켰던 것이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었기에 이것보다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없다는 것을 나는 매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부모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내비치고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였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사진첩을 통해 볼 때마다 아이들이 세상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 다행을 위해 행복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행복으로 불행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 불행을 겪지 않기보다 불행을 수용하고 행복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게 하는 부모로 함께 성장 중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보면서 ‘이상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다음 장을 보면 알겠지만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의 선행을 막을 만큼 큰 배짱은 없었다. 물론 막으려 했지만 어설픈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 적어도 대치동 부모들이 자신의 불안감을 권리로 유년기의 행복을 박탈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강의를 나갈 때마다 반드시 전한다.
“선생님 시대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매우 유리한 삶을 살았어요. 그때는 모두 공부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희소가치가 높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요즘 시대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유리한 삶을 살 희소가치를 갖는 쉬운 방법을 하나 찾았어요. 첫 번째가 예의를 갖추는 것, 두 번째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에요. 시험공부는 선행까지 하면서 애쓰지만 그 누구도 예절공부를 배우지 않아요. 스마트폰 시대에 누구나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지만 책을 읽으며 오래 사고하는 친구는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직장을 가거나 직업을 갖게 되면 똑똑한 사람이 흔한 만큼 예의 바른 사람을 옆에 두고 싶을 거예요. 여러분들은 예의 바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없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요? 예의는 남을 편하게 함으로서 나를 편하게 하는 최고의 정서지능이에요. 그리고 그 지능은 책을 통해 더 깊이 새겨질 거예요.”
나는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통해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읽고 싶은 책을 통해 현명 해지며 세상이 언제나 내게 행복을 쓸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 세상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