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한 내 몸에 적응이 안 돼...
아이를 낳고 적응해야 하는 것은 비단 달라진 나의 생활만이 아닙니다.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달라진 내 몸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침에 출근을 할 때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차를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게 되곤 했거든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꾸미지 않고 나오는지. 아이를 낳기 전보다 많이 뚱뚱해진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임신 중 항상 하던 결심이 있습니다.
나는 애 낳고 3개월 내로 원래 몸으로 돌아올거야!
결과는? 첫 아이 낳고 3년 동안 출산 직후의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그대로 둘째를 임신했지요. 둘째를 낳은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살은 출산 후에 부기가 빠진 이후로 단 1킬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내가 했던 생각들을 떠올리면,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럽기까지 합니다.
두 가지 모두 부끄럽습니다. 내가 나의 결심대로 몸 관리를 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경험해보지도 못한 주제에 남들을 재단한 것. 둘 다 부끄러운데 더 부끄러운 것은 경험하지도 못한 일에 대해 타인을 재단했던 나 자신입니다.
출산을 한 이후에 산후 우울증이 오는 가장 큰 이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호르몬의 교란
2. 잠 부족
3. 변화한 삶에 대한 부적응
1번과 2번은 그나마 일시적이고 1년 이내에 대폭 좋아집니다. 그런데 3번은 극복하려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변화한 삶에 대한 부적응 중, '육아'라는 새로운 일에 대한 이야기와 엄마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4화에서 다루었습니다.
https://brunch.co.kr/@waysbe/91
오늘은 변화한 삶에 대한 부적응 중, 변화한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엄마들은 자신에 몸에 대한 생각 변화를 겪습니다. 이를 10단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아직은' 단계 : 임신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못 알아봐. 아직은 임산부 티가 안 나.
2단계 : '임산부니까 괜찮아' 단계 : 임신했을 때 살이 찌는 건 당연한 거잖아?
3단계 : '애만 낳으면' 단계 : 아무리 임산부지만 이렇게까지 찔 줄이야! 애 낳으면 꼭 뺀다!
4단계 : '애 무게만?' 단계 : (출산 직후) 아니 어떻게 애 무게만 빠져? 양수도 나왔는데? 이게 다 살이었어?
5단계 : '붓기니까 빠지겠지?' 단계 : 부기는 천천히 빠진다고 했으니까, 좀 더 빠지겠지.
6단계 : '이게 다야?' 단계 : 저절로 빠지는 건 이게 다야? 임신 전보다 10킬로나 더 나가는데?
7단계 : '시간 여유가 나면' 단계 : 신생아 육아 정신없어. 좀 여유가 나면 그때 빼야지!
8단계 : '이제는 뺀다!' 단계 :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이제 다이어트한다!
9단계 : '예전과 달라...' 단계 : (살을 뺀 경우) 다이어트에 성공을 해도 임신 전 몸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구나... /(살을 빼지 못한 경우)어차피 빼봤자 처지고 늘어난 살들은 회복되지 않을 거야...
10단계 : '받아들임' 단계 : 달라진 몸에 적응하며 살아야지. 아줌마 된 거 인정!
처음 아이를 낳고 나서 제 몸을 보았을 때의 기분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임신 중 생겼던 기미도 사라지지 않고, 온몸에 살이 튼 자국 수십개가 흉터처럼 남아있더군요.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살을 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나의 정체성에 '몸'도 포함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정의와 이미지가 몸이 망가지면서 극심하게 무너져 내렸어요.
하루아침에 아줌마가 된 충격에 휩싸여 수개월을 보냈어요.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부분, 예쁜 부분을 찾아보려 했지만 정말로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변화한 제 몸을 제가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사랑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죠. 몇 년간 결혼 전으로 돌아간 꿈을 종종 꾸었습니다. 아직도 잠들면 그런 꿈을 꿀 때가 있어요. 깨어난 직후에는 내가 애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해요.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저 깊은 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과거의 '예뻤던 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나 봅니다.
임신 기간 내내 변화해 온 것이었기에 급작스러운 변화는 아닙니다만, 임산부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임신 기간이 끝나면 원상복귀가 될 거라는 착각. 저도 그 착각을 임신기간 내내 했었지요. 그러니 임신 기간 내내 몸이 불어도 저의 셀프 이미지는 '임신 전 내 모습'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러다 아이를 낳고 어느 날 문득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셀프 이미지는 그날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거예요.
그래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생활만 애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몸도 회복 불가능으로 망가진답니다. 노력으로 되는 부분이 아니에요. 아이를 품기 전의 생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아이를 낳은 이후로 예전에 선배 아줌마들이 했던 말들을 깊이 공감하게 되었어요. 그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아가씨들을 보면 어찌나 예쁜지요! 그 나이 때는 몰랐어요. "정말 예쁜 나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죠.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고 내 몸이 망가지고 나니, 아이를 낳지 않은 분들 특유의 생기와 아름다움이, 이제는 내가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실감 나게 예뻐 보입니다. 그 시절에 있는 분들이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모두 다 생기 있고 예뻐 보여요!
그렇지 않나요? 아이를 낳은 분들은 공감하시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이미 아이를 낳으신 분들도 많으실 테죠. 극복을 잘 하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러나 내 몸에 적응이 안 되어 극도로 우울했을 때의 저와 같은 감정을 지금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시기의 나에게 필요했던 말, 혹은 내가 나 스스로를 위로한 말들을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결혼을 할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물으신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겠습니다.
YES!
라고요. 저는 정말로 나와 닮은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고 싶었거든요. 한 번 사는 인생, 아이를 낳고 키워보는 경험은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 아이가 없다면 정말 아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저에게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비록 그 대가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긴 하지만, 그 대가를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저의 결정을 번복하진 않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면 이 결과가 덜 우울하고 한결 받아들이기 편해집니다.
어차피 사람은 나이가 듭니다. 나이가 들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싱그러움과 육체의 아름다움은 시들어요. 아이를 낳지 않으면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어요. 어차피 사그라들 아름다움이라면 그 아름다움이 사그라들지 전에 한 생명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듯이요.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쉬워요.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괜찮아요. 억지로 받아들이려 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런 분들은 시간이 약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울이 틈을 비집고 넘어오지 못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데에 집중하세요! 당신이 당신의 몸을 받아들이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당신에게 의미 있는 것, 더 중요한 것들이 달라질 것이에요.
아름다움은 여자들에게는 영원한 욕구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보통 더 중요한 것들이 분명히 생깁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때 여성분들이라면 '단짝 친구'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컸는지요? 20대가 지나면서 친한 친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진로'나 '남자 친구'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던가요? 저는 20대 때에는 사랑에 '설렘'이 없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설렘'이 없으면 좀 아쉽긴 할지라도 큰 결핍은 없습니다. 다른 종류의 사랑의 감정이 저에게 더 중요해졌거든요.
남들의 설득이나 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변화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어요. 저의 욕구가, 저에게 중요한 것들이. 그러니 '싱그러운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역시 마찬가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 욕구가 있을 때에는 믿기지 않을지라도, 그 욕구가 지나가고 나면 그 정도로 강렬한 욕구였던가 싶을 정도로.
여전히 저는 예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노력을 해도 이전처럼 싱그럽고 예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슬프지는 않습니다. 대신 제가 추구할 수 있는 다른 아름다움들을 추구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다른 욕구가 더 커져 갑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저의 욕구는, 이런 욕구들로 대체되고 있어요.
- 총명하고 생기 있는 눈빛을 유지하고 싶다.
-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밝고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내 아이가 생각했을 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 마흔이 넘어서도, 쉰이 넘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핑계이지만 다이어트를 할 시간이 없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는 이렇게 글을 쓰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며 자기계발 할 시간도 모자라거든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움 보다는 건강이 더 큰 이유가 되었어요.
20대 때는 백화점에서 화장법 강의도 듣고, 화장대 앞에서 한 시간씩 화장을 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이제는 화장기 없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어떤 옷이 내 장점을 가장 잘 어필해 줄까를 고민했었던 제가 이제는 어떤 옷이 제일 편할지만 따져서 입어요. 이렇게까지 사람이 변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제가 노력으로 욕구를 바꾼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해야만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냥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그리고 정말 예전에 강렬히 원하던 것들은 마음에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강렬하게 원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괴로움과 충격으로 우울한 당신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괴로움과 충격으로 소중한 현재를 망치지는 마세요. 억지로 괜찮다고 하시기보다는, 일단 스위치 오프를 하고 집중할 수 있는 다른 것들에 집중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