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소중한 너인데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힘듦은 파도가 철썩철썩 밀려오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하나의 파도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옵니다. 큰 파도도 있고 작은 파도도 있어요. 큰 파도여도 준비된 사람은 물을 먹지 않을 수 있지만, 방심하고 있으면 작은 파도에도 물을 많이 먹게 됩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 밤잠을 잘 자고, 말귀도 어느 정도 알아들어요. 말문도 조금씩 트이면서 ‘아기’에서 ‘어린이’로 탈바꿈하기 위해 준비를 하지요. 이 시기는 아기의 귀여움과 어린이의 인지 능력을 함께 지니고 있어서 무한 사랑의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러다 만 3세가 되면 ‘돌보는’ 육아는 이전에 비해 한결 수월해지고 놀이터에 풀어 놓으면 엄마와 떨어져 익숙한 친구들과도 제법 잘 놀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됩니다. 바로 훈육에 대한 고민이에요.
파도가 하나 지나가니, 새로운 파도가 오는구나..!
아들이 만 3세가 되기 이전에 저는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이고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힘들거나 우울하더라도 아이에게는 영향이 가지 않게 하려고 부던히 노력했어요. 정서와 애착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고, 훈육을 할만한 일도 없었던 것 같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만 해도 효자인 시기이잖아요. 이 시기에 저는 남들도 인정하는 ‘온화한 엄마’였었다고 자부합니다.
만 3세 이전에 훈육을 하지 않은 이유에는 어차피 인지적으로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안전’이나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행동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행동에 제한을 주기는 하였지만, 혼내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보통 제한으로 거의 해결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 3세로 접어드니, 인지 능력도 발달이 되었고 훈육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와 하는 활동들도 더 다양해지고, 요구해야 할 일들도, 제한해야 할 일들도, 그리고 잘못을 지적해야 할 일들도 세분화 되었지요. 그래서 훈육을 시작하였는데.. 훈육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더 더! 어려운 것이더군요.
소위 말하는 훈육의 기본 원칙들이 있죠.
1. 단호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2. 긴 말로 설득하기보다는 짧고 분명하게 말한다.
3. 아이의 인격을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고, 행동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4. 비난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5. 몇 번을 반복하든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한 어투를 동일하게 유지한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임신 이후 육아 서적을 읽으면서 수도 없이 접했던 내용이라 저는 잘 할 줄 알았습니다. 더욱이 저는 평소에 화가 나도 남에게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초임 교사 때에는 아이들이 조용히 하지 않으면 “조용히 하자!”라는 명령을 하기가 어려워 칠판 앞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아이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이 방법으로도 교실이 조용해 지는 데에 보통 10초가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내 아이에게만큼은 거친 엄마가 되는지… 단호하고 분명하게 ‘조용히’ 이야기해야 하는데 단호하고 분명하게 ‘큰 소리로’, ‘엄하게’ 말하게 됩니다. 때로는 ‘엄하게’를 넘어서 화를 내며 혼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아이의 정서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나와 아이의 마음이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뒤늦게 후회하고 마음 아파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부모 상담을 할 때 자주 하던 말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가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 시기에 아이와 관계가 잘 형성되면 사춘기는 큰 갈등 없이 부드럽게 지나간다.” 이 말을 진심으로 믿는 저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기도 합니다.
이러다 사춘기도 되기 전에 아이와 골이 깊어지는 것 아니야?!
가끔씩은 정말 무섭습니다. 아이에게 멘토같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은데, 잔소리꾼 화내기 대마왕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상황 : 아이가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손을 씻지 않고 거실에 있는 장난감을 집어 든다.
엄마 : (부드러운 목소리로)ㅇㅇ아, 손 씻고 놀아.
아이 : (대답이 없다.)
엄마 :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ㅇㅇ아, 손 씻고 놀아.
아이 : 네. (대답은 하지만 놀던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엄마 :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ㅇㅇ아, 손 씻고 놀지 않으면 엄마가 장난감을 가져갈 것 같아.
아이 : 네. (자리에서 일어난다.)
엄마 : (아이가 손 씻으러 가는줄 알고 부엌으로 간다. )
아이 : (화장실로 가던 도중 다른 재미있는 것을 발견, 손 씻기를 까먹고 다시 앉아서 논다. )
엄마 : (손 씻기를 마칠 시간이라 판단되어 화장실 쪽으로 가다가 놀고 있는 아이 발견) ㅇㅇ아! 엄마가 손 씻으라고 했지!
아이 : 씻으려고 했어! 화내지 마!
엄마 : 엄마 같은 말 여러 번 하게 하면 화나는거 알지! 바로바로 가서 씻으라고!
아이 : 씻으면 되잖아! 엄마, 미워! 엄마는 나 안 사랑하나봐!
요즘 저의 흔한 일상입니다. 더 심할 경우, “엄마도 ㅇㅇ이 미워!”라는 말을 하고 아이가 우는 걸로 끝맺기도 하죠. 교사 생활 할 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내 아이에게만은 유독 이렇게 되는 걸까요? 더 슬픈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 가장 많이 나의 화내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에게라면 참았을 일도 쉽게 터져요. 왜 이러는 걸까요?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들을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지만, 부모를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아이 문제는 부모 탓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그 부모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부모가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이 스스로도 얼마나 슬펐을까 하고요.
아이는 엄마한테만큼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을텐데…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싶지만 너무나 어려운 요즘입니다. 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나의 아이에게 가장 예민하고 엄격한 존재가 되는 걸까요? 이 문제로 요즘 저는 고민이 많아요. 일상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관찰해보면, ’그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가 잘 하고 있는지, 혹시 다른 아이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등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사랑스럽다‘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노력을 하던 얼마 전,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저는 환하게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하는 말.
화내면 이마에 주름 생겨.
“엄마 지금 화내지 않고 웃어줬는데?”라고 말하자, 아들이 밝은 표정으로 쑥쓰러워하며 말합니다. “그냥 그렇다고. 예전에 화냈으니까. 화내면 이마에 주름 생기니까 앞으로도 화내지 마.” 이 말을 듣고, 아이에게 제가 평소에 얼마나 화내는 엄마였는지,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화를 많이 내는 엄마로 인식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는 얼굴에 조심스럽게 그런 귀띔을 해줄 정도로요.
남에게는 화 한 번 잘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아이에게만큼은 자꾸 화를 내게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 보았습니다.
1. 엄마의 권위 부족(엄마는 선생님이 아니고, 자기 말을 다 들어주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
2. 친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커서 자기가 잘못했어도 혼나면 더 서러움.(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
3. 아이와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지치고 짜증이 나서 쌓인 울화가 쉽게 폭발함.
4. 나나 배우자의 약점이 보이면서 걱정이 증폭 됨.(내 아이만큼은 같은 문제를 겪지 않았으면 함)
5. 아이의 인생을 위해 꼭 고쳐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발동함. (남의 아이라면 귀엽게 넘길 행동도 화가 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음.)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욕구와 사랑하는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고 싶은 엄마의 욕구가 만나 갈등이 되고, 그 갈등이 반복되며 서로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망가지고, 골이 깊어지죠. 지금부터라도 바꾸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엄마는 누구보다 아이의 편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훈육도 중요하지만, ‘내편이 나를 위해서 하는 훈육’이라는 느낌을 아이가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엄마가 아무리 사랑을 해도 아이가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는 사랑 받지 못한 아이의 정서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감정이 곧 그 사람이니까요. 아무래도 저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해야겠어요. 일단은 많이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지어 주는 것부터요. 그것을 디폴트값으로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 해요.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제가 위안을 받았던 한 마디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부모를 사랑합니다.
아이이게 부모는 존재의 근원이자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생존을 위해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저에게 매일 혼나는 저희 아들도 밤마다 잘 때가 되면 그렇게 제 몸에 이불을 덮어 주어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사랑하니까 그렇지.
추우면 무서운 꿈을 꾼다는 엄마 말을 듣고, 엄마가 무서운 꿈을 꿀까봐 열심히 제 몸 위에 이불을 덮어대는 아들입니다. 한 번으로 부족하여 세 번, 네 번, 꼼꼼히 덮였는지 확인해가며 이불을 덮어줍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러니 만회할 기회는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솔직히 막막하고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고 실천하다보면 분명히 아이에게 저의 진심이 전달될 거라 믿어요. 아이를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연애할 때처럼, 내 마음을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보는 날을 보내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이 마음을 충분히 느낄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