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과 부담감 사이
둘째가 태어난 지 벌써 22개월이나 되었으니 저희 첫째가 오빠가 된 건 만으로도 2년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찐오빠로 한 단계 더 성장한 건, 유치원에서 새싹반에서 형님반인 '꽃잎반'이 되면서부터였어요. 올해 봄이었죠.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몬테소리 유치원이어서 오전에는 ‘혼합연령반’이라고 하여 만 3-5세의 세 개 연령의 아이들이 함께 교구 작업을 하며 생활합니다. 보통 형님들이 리더 역할을 하는데, 아들은 신입생 시절 형님이 되는 것을 늘 동경해 왔어요. 1년 내내 “나는 언제 6살이 되지?” 노래를 불렀죠.
유치원에서 형님이 되길 그렇게 기대하더니, 형님이 되니까 찐 성장을 이루어 내더라고요. 유치원 가는 첫 날부 터 표정이 너무 즐거워요. 아들이 좀 예민한 편인데 형님이 되니까 ‘부드러운 형님미소’가 탑재되더라고요? 그 여파로 갑자기 집에서도 둘째에게 놀라울 정도로 친절해졌어요. 양보도 이전보다 잘하고 둘째가 건드려도 훨씬 너그러워졌죠.
유치원에 상담을 갔더니, “지안이가 집에 동생이 있어서 유치원 동생들에게도 잘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머, 저는 반대로 유치원에 동생들이 들어와서 갑자기 친동생에게도 잘 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유치원에서 배웠나보다 했지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아요. 둘 다 맞다. 선순환 사이클이다!
유치원에서 조를 짤 때 학기 초에 엄마를 그리워하며 잘 우는 동생 둘을 첫째와 일부러 같은 조에 묶어주셨다니 좀 뿌듯했어요. 내 아들이 유치원의 ‘웃긴 오빠’라니! 극내향인이었던 저로서는 감격적인 일입니다.
아이를 둘 낳기로 결정하면서 남편과 한 말이 있어요.
두 아이를 공평하게 대하자.
첫째에게 "오빠니까 양보하라"고 하거나 둘째에게 "오빠 말 잘 들으라"고 강조하지 말자. 오빠 역할, 동생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우애에도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둘의 영역을 지켜주려고 노력한 편입니다. 아기가 울 때나 아기를 재울 때 첫째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오빠라서 해야 하는 배려를 줄이려고 신경 썼어요. 특히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둘째가 뺐으려 하거나 손을 대면 “그건 오빠 거야.”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아들이 불편해할 때 같이 가지고 놀라고 말하진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가능한 ‘오빠니까’, ‘오빠 역할’과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잘 못할 때나 하게 하기 위해서 ‘오빠’라는 직책을 강조하지 않았어요.
그런 아들이 유치원에서 형님이 되더니 스스로 오빠임을 자처하며 말하더군요.
동생을 기다려 주는 것도 오빠가 하는 일이지?
동생 손을 잡아 주는 것도 바로 오빠의 일이지?
동생과의 관계와 관련 없는 영역에서도 ‘오빠’라는 이름을 거론합니다.
유치원 갔다 와서 가방 정리 잘 하는 것도 바로 오빠가 할 일이지?
“응, 그렇지.”라고 말하는 엄마의 동공이 살짝 흔들립니다. 오빠 역할 강조 안 하며 키우기로 했는데?
그런데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보다 ‘오빠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려는 아들의 의지가 더 큽니다. 스스로 오빠임을 강조하며 동생을 지키겠다고 동생에게 말 거는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예전에는 머리 감을 때 울었었지만 오빠가 되고나서부터 울지 않아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들 스스로 “나는 오빠다!”하는 자부심으로 성장 중입니다. 동네 여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많은 엄마들이 친구들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른 ‘오빠미 뿜뿜’을 느꼈다고 하니, 말 다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저의 육아관도 조금 흔들립니다. 내가 너무 공평함을 중요하게 여겼나. 부담감에 너무 초점을 맞췄나. 오빠라는 역할이 성장을 도울 수도 있는 건데 그 점을 간과했나, 하고요.
육아를 하다 보면 늘 의도와 다르게, 예기치 않게 흘러가는 것들이 많아요. 그 점이 제법 재미있기도 하고 생각보다 괜찮을 때가 많습니다.
제 아들의 '오빠미 뿜뿜'도 그중 하나인데, 인정의 욕구가 큰 아들이다 보니 오빠로서의 부담감보다 자부심과 뿌듯함이 큰가 봅니다. 스스로 ‘오빠라는 굴레’를 차다니!
아들이 오빠로서의 자부심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은 유치원 교육의 덕도 큰 것 같아요. 글의 첫 부분에서 살짝 언급을 드렸지만, 아들은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닙니다. 3개 연령의 아이들이 함께 지내면서 '남'인 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니, 친동생을 보는 눈도 달라진 거죠.
몬테소리 교육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들도 몬테소리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알아보아도 우리나라에는 몬테소리 교육을 제대로 실천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씁쓸한 현실을 알겠더라고요.
몬테소리 교육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전제조건 중 하나가 3개의 연령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혼합연령 교실‘을 구성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힙니다. 이 '혼합연령 교실‘을 다수의 한국 부모들은 선호하지 않는대요. 어린 아이들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큰 아이들에게 치인다.”라고 하고, 큰 아이들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 틈에서 배움의 수준이 낮아진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몬테소리 교육에 뜻이 있는 유치원도 ‘학부모 반발’에 부딪쳐 혼합연령 교실은 시작도 못하고 교구만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둘째를 낳지 않겠다는 많은 엄마들이 이유 중 하나로 이런 말을 합니다. “첫째에게 사랑이든 돈이든 최선의 지원을 해주고 싶다. 하나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둘은 그런 지원을 하기 어렵다.”라고. 내 아이 둘도 서로 치이는 것이 불편한데, 혼합연령 교실에서 형님이나 동생 때문에 우리 아니가 손해를 보는 건 더 불편할 것 같습니다. 반면 영재 교육이나 영어 유치원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나뿐인 아이에게 해주는 최선의 교육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한 아이를 낳는 분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를 낳아 최선의 사랑과 지원을 해주는 것의 장점도 많거든요! 연구 결과 외동이라고 사회성이 떨어지지도 않으며 부모와 관계가 잘 형성되면 정서적으로 더 충만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를 하나를 낳든 둘을 낳든 셋을 낳든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며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다만, 혼합연령 교실애 대한 인식은 좀 씁쓸하였습니다. 저는 아이가 혼합연령 교실에서 더 배울 것이 많고 정서적으로도 이익이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치원 설명회에서 ‘혼합연령반’을 운영한다는 말을 듣고, 이 유치원으로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우리 아이가 작아서 치일 것 같아요.”라는 우려는 오히려 단일 연령반에서 적용되는 말입니다.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모여 있을 때 그 안에서 작은 아이가 큰 아이에게 치일 확률이 혼합 연령보다 더 큽니다. 정신적 수준도, 원하는 것도 비슷하기에 더 그렇습니다. 수준이 확실히 차이가 나면 오히려 안 건드립니다.
혼합연령반애서는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오히려 더 잘 도와줍니다. 인형 돌보기도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동생 돌보기는 더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이 올라가요. 아무리 작은 아이도 동생보다는 크고, 아무리 잘 못하는 아이도 동생보다는 잘 합니다. 형님이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동생들을 리드하고 돌봅니다. 동생들은 그런 형님들에게 사랑받으며 기분 좋은 한편, 자기도 멋진 형님이 되는 꿈을 꿉니다. 작은 아이와 큰 아이 모두에게 윈윈입니다.
학업적인 면에서도 큰 아이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자신이 배웠던 것을 가르치는 것만큼 그 지식을 제 것으로 만들기에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큰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1-2년 앞서 배운 것들을 동생들에게 가르쳐주며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유치원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누가 한글을 먼저 떼고, 영어 단어를 얼마나 알고, 사회나 과학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잖아요. 요즘 같이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시대에 오히려 혼합연령 교실은 이득이 많아요. 오후에는 단일연령을 묶어 수준에 맞는 교육 활동을 하니,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커버가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들께서 찾아보시려고 해도 '혼합연령반'은 커녕 몬테소리 교육을 하는 유치원 자체가 드물어서 대부분 고민의 기회조차 없으실 것입니다. 다만 어쩌다가 인연이 되어 '혼합연령반'을 운영하는 몬테소리 유치원을 발견하신다면, '혼합연령'을 이유로 피하지는 말아 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혼합연령 교실에 대한 말이 길어졌네요. 글을 마치며, 저도 아들처럼 저의 일을 대할 때 부담감보다는 자부심을 가져보도록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엄마로서의 자부심! 브런치작가로서의 자부심!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부심이 싹트는 하루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