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가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저의 두 아이(45개월, 22개월)는 요즘 킥보드에 빠져 살아요. 지난 주말에 큰맘 먹고 두 녀석 모두에게 새 킥보드를 사주었거든요. 둘째의 어린이집이 끝나면 데리고 집에 가서 킥보드 두 대를 끌고 첫째의 유치원 버스를 기다려요. 킥보드를 타고 놀이터로 가지요.
제가 엄마표 학습을 매일, 두 과목씩 한다는 말을 들은 지인들 중 "그럴 시간이 돼? 놀 시간도 부족하지 않아?"라고 묻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런데 저의 두 아이는 동네에서 놀이터에 제일 빨리 도착해서 제일 늦게까지 놀고 가는 놀이터 터주대감들이에요. 유치원 끝나서부터 5시는 기본이고 6시까지 밖에서 놀 때가 많아요. 친구가 "오늘 시간 돼?"라고 물으면 제일 시간이 많은 녀석들이죠. 공부는 아침과 자기 전에 하기 때문에 옴팡지게 놀아도 전혀 상관없어요.
이런,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샛길로 가고 있었네요. 다시 킥보드 이야기로 돌아와서, 킥보드를 사고 첫 월요일. 아들은 유치원에 다녀오자마자 킥보드를 타고 싶대요. 원래는 하원차를 안 타고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놀기로 한 날인데, 집에 와서 킥보드를 타야 하니 데리러 오지 말래요. 그런데 빨리 타고 싶으니 엄마가 유치원 차 오는 곳까지 들고 오라는 거예요.
미안하지만, 엄마는 동생 유모차를 끌고 킥보드 두 대를 들고나갈 수는 없어. 네가 집에 와서 킥보드 가지고 다시 나가자.
아들은 툴툴거립니다. "그럼 빨리 못 타잖아. 나 힘들단 말이야." 이럴 때 아들이 떼쓰는 걸 들어줄 엄마가 아니죠. "그럼 엄마는 힘들어도 돼? 유모차랑 킥보드 두 대나 들고 어린이집에서 너 유치원 버스 오는 곳까지 가긴 힘들어."
엄마가 힘든 모습을 상상하자 마음이 약해진 아들. 더 이상 킥보드를 가지고 오란 말은 하지 않았어요. 표정은 영 탐탁지 않습니다. 잠시 고민하며 망설이다 아들이 엉뚱한 요구를 합니다.
그럼 킥보드 대신 막대기는 갖다 줄 수 있어?
하며 아침에 가지고 놀던 리듬 막대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럼 그건 가져다줄 수 있지!
아들의 "오 예!" 하며 얼굴이 다시 환해집니다. 굳이 이런 걸 가져오라고 하는 아이는 아닌데, 킥보드를 가져와주지 않는 허전함을 막대기로 달래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엉뚱한 요구 속에 들어 있는 아들의 속마음이 귀엽습니다. 킥보드를 가져오라는 요구는 엄마를 힘들게 할 것이므로 그만두었지만, 엄마가 가져오기 싫어서인지 정말 힘들어서인지 확신이 안 서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자기 말을 거부한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확인받고 싶습니다. 막대기라도 가져오게 하자!
막대기를 흔쾌히 가져다준다고 하니 마음이 다시 환해집니다. 엄마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긴 하군. 킥보드를 가져오는 것이 너무 힘들 뿐. 그렇게 위안을 하며, 만족하기로 합니다.
섬세한 기질에 속하는 아들은 이런 확인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하나를 안 된다고 하면, 꼭 다른 사소한 것을 골라 "이건 돼?"하고 다시 물어봅니다. 처음 물은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물어보지도 않았을, 진심으로는 큰 관심이 없을 법한 다른 것. 그럴 때 재빠르게 눈치채야 합니다.
네 말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게로구나!
그렇게 해석하고 격하게 "당연히 된다! 되고 말고!"라고 말해 주어야 상황이 평화롭게 종결됩니다. 만약 막대기는 되냐고 물었을 때, "그런 건 왜 갖다 달라는 거야?"라고 무시한다면 무시무시한 떼쓰기 대마왕으로 변신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벼운 것도 안 가져다준다니, 역시 엄마는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가 봐.', '엄마는 내 말을 안 들어주는 사람이야.',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럼 킥보드 대신 막대기는 갖다 줄 수 있어?" 이 말은, "엄마가 정말 힘들어서 킥보드를 가져올 수 없는 거지? 그렇지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속상해.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랑 같은 말일 겁니다.
물론 아들 본인은 자신이 막대기를 정말 원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아들과 막대기의 중요성을 가지고 실랑이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막대기를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말을 듣고 떼쟁이로 변신한 아들에게 "너 그렇게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떼쓸래? 막대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라고 한다면, "아니야! 나는 정말 막대기를 갖고 놀고 싶다고!!!!!!!"라고 악을 쓰겠지만, 사실은 "엄마가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란 걸 확인하고 싶다고!!!!!" 이렇게 해석해서 듣고 조치를 취해야 일이 잘 풀립니다.
가끔씩은 외국어도 아닌데 해석을 해야 하는 아들의 말이 어렵기도 해요. 그래도 그 말들에 담긴 마음이 읽힐 때에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날 닮은 쬐그만 생명체가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