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주는 울림
이 브런치북은 육아 일기이자 엄마의 사색록입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글들을 모을 예정이에요.
얼마 전, 브런치에 <정말 멋진 세상이야!>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최근 매일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하면서 연재가 없는 날에는 매거진에 글을 올렸거든요. 매거진의 이름은 '당신과 나누고픈 잡담'이었습니다. 일상에서 드는 생각들을 부담 없이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2주 정도가 지나니 알겠더라고요. 정말 잡다하게 다양한 주제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저의 현재 글쓰기 관심사는 두 가지 정도로 좁혀지더군요. 아이를 키우면서 얻는 영감에서 나온 글과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쓰는 글.
그래서 그 두 가지 주제를 나누어 연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쓴 글들은 연재 초반에 올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정말 멋진 세상이야!>를 발행 취소 했는데, 브런치 시스템 상 연재 브런치북에는 재발행이 안 되더라고요. 다행히 발행 취소한 글 하나만 아이의 말과 관련된 글이고, 나머지는 저의 자기 계발과 관련된 글이라 매거진의 이름을 '나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바꾸고, <아이의 말 한마디, 엄마의 사색>이라는 새로운 연재 브런치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발행 취소했던 글은 프롤로그로 딱 좋은 글이어서 프롤로그 말미에 다시 소개할까 해요.
<정말 멋진 세상이야!>
부제 : '자식'이라는 렌즈를 착용하고 세상을 보는 즐거움
이 글의 부제처럼, 저는 때때로 '자식'이라는 렌즈를 착용하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저 자신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와 사뭇 다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말은 조선시대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한문 구절을 유홍준 선생님께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말로 풀어서 소개한 글입니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쓸 만큼 평범하고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아이의 한 마디가 부모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이유는,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말도 성립해요. 최재천 선생님께서 <생명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저서에서 하신 말씀이 있지요.
알면 사랑한다.
서로 미워하고 불편한 이유는 상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고 깊이 이해하면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이 상반되는 두 마디의 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선순환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육아에도 찰떡같이 작용돼요.
사랑하기에 들리고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곱씹어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그 아이에 대해 더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알면 이해하게 되고 더 사랑스럽습니다.
아래에 덧붙일 글을 이미 읽으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 더 읽어주시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겠지만, 다음 글부터 읽어주셔도 괜찮아요!
<정말 멋진 세상이야!>
-‘자식'이라는 렌즈를 착용하고 세상을 보는 즐거움
정말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딸(둘째) 먼저 하원해서 데리고 놀다가 아들(첫째)의 유치원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죠. 유치원을 마치고는 병원을 가기로 한 날이었어요. 아들은, "오, 예! 나 병원 좋아!"라고 하며 길을 나섰고, 딸은 유모차에 태워 가고 있었어요. 공기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지만 흐리고 습해서 굳이 따지자면 무채색의 날씨였는데..
갑자기 길을 가던 아들이 감탄을 하며 말하지 않겠어요?
정말 멋진 세상이야!
덩달아 저의 마음에도 환한 무언가가 퍼져나갔어요. 무채색의 날씨가 운치 있는 파스텔톤으로 느껴지고요. 특별한 이유 없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아이라니! 너로 인해 잠시나마 나도 멋진 세상을 느끼는구나. 이럴 때 저는 자식을 낳기를 참 잘했다, 느껴요.
'정말 멋진 세상!'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해본 적이 언제인지, 사실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 곰곰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엔 문득 날씨가 좋은 날 하늘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아요. 한없이 내 미래는 멋질 거라는 상상을 20대까지도 했던 것도 같아요.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이제는
석가모니가 그랬지. 인생은 고라고. 그 말이 진리인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며 고된 인생을 견디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내가 특별히 힘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원래 인생은 고인 거라고, 수천 년 전부터 그랬다고. 그러니 남들보다 편하게 꿀 빠는 인생이나, 남들보다 아름다운 장밋빛 인생을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라고, 그렇게 자위하며 살고 있어요.
행복은 고된 인생 가운데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이라고 말이죠. 소소한 즐거움에 감사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저절로 아름다운 인생, 멋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서 하는 노력이죠.
가끔씩은 이런 저의 잣대로 자식 걱정도 합니다. 이렇게 흉흉한 세상, 앞으로는 더 흉흉해 질지도 모르는데, 내 아이들이 잘 살아내야 할 텐데.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아들의 말을 듣고 제 멋대로 아들의 삶을 재단한 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아들에게 두려움과 걱정을 심어주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데 말이에요.
오히려 눈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듯이, '아들의 시각'이라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세상을 멋진 세상으로 느끼게 해 줄 묘약이죠.
자식은 무채색이 된 제 삶에 색깔을 입혀주는 존재예요. 기쁨도, 슬픔도 크게 느끼지 않고 덤덤해진 저는 자식들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감정을 느껴요. 눈이 오면 차가 막히거나 길이 미끄러울 게 걱정인 저는 아들이 기뻐하며 뛰는 것을 보고 덩달아 기쁨을 느낍니다. 아이를 낳기 전엔 동네에 이렇게 많은 민들레가 있는지도 몰랐던 제가 봄이 되면 아이들이 웃는 것을 보려고 민들레 씨앗을 찾아다녀요. 그게 뭐라고, 작은 것에도 웃음 짓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도 같이 설렙니다.
그래서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살기가 무료하면 아이를 낳을 때라고. 남편은 그래서 결혼을 권장한대요. 나이가 들면,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어도 감동이 예전 같지 않고, 게임을 질리게 해도 예전처럼 재미있지가 않고, 연애도 계속 반복하면 새로 만나고 헤어지기도 귀찮고.. 새로운 것을 찾기가 어려워서인 것 같다고. 그런데 아이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우리가 별 것 아니라고 느끼는 것에도 큰 기쁨을 느낀다고. 그것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기쁘다고.
아이를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산달까요. 내가 잊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 주는 탐정 같아요. 이제는 잊어버린 줄도 모르는 것들, 그래서 아들이 대신 발견을 해줄 때마다 새삼 놀랍습니다. 아직도 그 말이 맴돌아요. "정말 멋진 세상이야!"라는 말. 아무 일도 없는데도 병원 가는 길에, 그냥, 일상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너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
엄마는 이제 너 없이는, 혼자서는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아. 그렇지만 너의 인생은 내 나이에도 그렇게 멋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에게도 따뜻하고 귀여운 렌즈가 선물이 되길 바라며,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