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대접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어떤 간장이 좋은지, 어떤 고기가 부드러울지 고민하는 시간들. 그 따뜻한 순간 안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다. 재료를 뭉근히 끓이는 과정 안에는 사랑이 스민다. 요리가 완성되어 내 앞으로 놓이면 나는 그저 웃는다. 너의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꼭꼭 씹어서 삼키고 있어. 너의 사랑이 조미료가 되어서 내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차고 있어. 상대의 정성을 치하하며 나는 대식가가 된다. 요리한 사람과 나는 그렇게 한 세트로 완성된다. 요리란 그런 묘미가 있다.
요리 잘하는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 보안업체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180센치가 훌쩍 넘는 키의 그는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이 됐다. 길고 웨이브진 더벅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왔는데 그게 참 귀여웠다. 딱히 꾸미지 않아도 몸선이 예뻐서 구석구석이 참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선한 인상의 일본 모델처럼 느껴졌달까.
그는 우리집에 방문할 때마다 식재료를 챙겨왔다. 나에게 해주는 요리 종류는 다양했다. 미역국, 감바스, 마파두부, 리조또, 스테이크···. 그를 사귀는 동안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그의 요리 사진으로 가득했다. 나는 맛있는 것 앞에선 여지없이 행복해지는 사람이였으니까. ‘맛있는 거 많이 해주는 남친’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친구들은 먹을 걸 좋아하는 네가 임자를 만났다면서 웃었다. 나 역시 귀엽고 요리 잘하는 남친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집 작은 부엌에 그는 별말이 없었다. 다만 떨어져가는 양념을 채우고 신기한 향신료를 소개해줄 뿐이었다. 가스레인지 옆으로 오종종하게 늘어선 양념통들. 남자친구는 요리하는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양념통을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 짜서 문제 싱거워서 문제.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가 걱정했다가 하면서 즐거워했다. 요리하는 과정 그 자체가 데이트가 됐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남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고백하기 부끄러워서 내 손을 잡고 성수를 하루종일 돌아다녔던 사람.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멍해지며 딴 소리만 늘어놓았던 사람. 그러다가 집에 가기 직전에서야 사귀자고 고백했던, 그런 사람. 데려다주는 길에 ‘너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라고 속삭였던, 그저 따뜻했던 영혼의 사람.
너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와의 이별은 여지없이 닥쳤다. 그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업무에 허덕였다. 조용할 날 없는 직장 생활에 침몰중이었다.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면서 행복해하면서도 그는 순간순간 우울의 빛을 비췄다. 자격증을 따고 이직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했다. 어느 날, 내가 일찍 퇴근했다는 말에 그가 격분했던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았다. 힘들었으니까. 자신이 만족할만큼 스스로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으니까. 그는 조금씩 멀어져 가더니 말수가 줄었다. 며칠 전까지 나에게 요리를 해주었지만 이내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왜냐고 묻지 않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찬장에 놓인 그의 그릇들을 씻으며 생각한다. 오늘 그의 부엌에는 향신료가 몇 개놓여있을까. 힘든 나날 속에 원하던 정답은 찾았을까. 네가 여전히 잘 웃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