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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조 Feb 24. 2024

옆테이블의 커플이 헤어지고 있다

삼십대가 본 스무살의 연애


“나한테 뭐가 화가 났다는거야?”

“······.”

“오빠 말을 해줘, 제발.”


여자가 울먹였다. 스무살쯤 됐을까. 여자 볼의 솜털이 보송했다. 앞에 앉은 남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날렵한 콧대를 가진 남자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시선은 아래로 향한 모습이었다. 참 예쁘고 잘생긴 둘이구나. 예쁜 커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겠어. 여자가 잔을 들어 커피를 호록 마셨다. 남자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카페 밖은 차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가 내리는 날 이별하는 연인






여자와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둘 사이의 긴장감이 팽팽해서 옆자리에 앉은 내가 불편할 지경이었다. 나와 친구는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연기하며 카톡으로 대화를 했다.


‘옆자리 커플 헤어지려나봐.'

‘그러게, 남자가 너무 못됐어.’

‘쟤네들 30분째 말이 없네.’


나는 둘을 무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 연인의 오로라는 자꾸 넘실넘실 넘어왔다. 그 온도는 차가웠다. 시리도록 날카로웠다. 그 기운에 나는 자꾸만 어깨를 움츠렸다. 사람들은 무지개빛 청춘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끝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숨긴다. 사랑과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언제나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리고 이별 실황 중계는 결코 드라마처럼 재미있지 않다.


“아니, 그냥···”


마침내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 같아, 그러니까, 그래서, 그리고. 변명도 위로도 아닌 자신을 위한 문장이 이어졌다. 작고 비겁하게 계속 웅얼거렸다. 이런 망할 놈의 새끼. 나는 번쩍 일어나 남자의 뺨을 올려 붙이고 싶었다. 너는 참 비겁하고 못났구나. 헤어지자는 말을 자신이 하기 싫어서,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런거잖아?


여자는 이제 바스라질 것 같았다. 눈가가 촉촉했다. 누군가 나서서 가냘픈 그녀를 안아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커피잔에 기댄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남자를 아직 많이 사랑하고 있다. 여자는 헤어지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헛소리를 늘어놓은 남자는 이 연애의 ‘갑'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헤어져도 자신은 후회가 없으리라 여기고 있다. 연애에서 더 사랑한 것은 죄가 되는가?


‘저렇게 힘든 연애를 무엇이 좋다고···’


이 생각에, 지나간 전 남친들의 기억이 묵은 먼지를 털고 나에게 환상처럼 걸어들어왔다. 지지부진하고 쓰디쓴 이별 장면들이 뒷방에서 튀어나와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행복한 순간들은 왠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고 아픈 순간들만 머리 속에 나뒹군다. 하느님은 어째서 인간의 영혼에 ‘사랑’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서 이토록 아프게 만들어놓았을까. 나는 공연히 신을 탓해보았다.


헤어짐이 임박한 연인은 여자의 ‘그래, 알았어’라는 말을 끝으로 부산스러워졌다. 우산을 챙기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가방을 들었다. 먼저 자리를 떠난 것은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눈물을 부끄러워하며 카페문을 나섰다. 남자는 (아니 남자새끼는) 마지막 가는 길의 문조차 앞서 열어주지 않았다. 둘이 떠나자마자 나는 친구에게 소리쳤다.


“여자가 너무 아까워!”


스무살 무렵의 이별은 유난히 따갑고 서글프다. 여자는 집에 가며 차이는 쪽은 비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훗날 돌아보면 승리는 더 사랑한 자의 것이다. 사랑 받을줄만 아는 사람들결국 버림받지 않던가. 남자는 사랑받았던 기억을 훈장 삼겠지만 여자는 자신이 더 사랑했던 노력에 상을 주며 성장해나갈 것이다. 내가 그랬듯. 네가 그랬듯. 우리 모두가 그랬듯.


누군가 나에게 ‘아름답다’는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아름’답다의 어원은 앎에서 파생되었다고. 나를 앎, 즉 ‘나답다’는 뜻을 가진다고. 청춘은 아름답다. 청춘의 사랑도 아름답다. 하지만 가장 나다운 연애를 하는 청춘이야말로 어원 그대로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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