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12

by 청화

축제가 끝나고 며칠 후, 교양과목의 휴강이 공지됐다. 집이 비었으므로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로 작정했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부를 했다. 배가 고프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낮잠을 자고, 다시 공부를 했다. 증명을 읽는 중에 갑자기 오른쪽 어금니가 아파왔다. 혀로 어금니를 눌렀더니 경미한 통증이 올랐다. 나는 무시하고 다시 강의 필기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끈질기게 어금니의 통증이 주의를 앗아갔다. 나는 고민하다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집을 나섰다.


언덕을 내려가 역으로 향했다. 대로로 나가 걸어가는데, 마주 편에서 두 명의 여자가 느릿한 속도로 걸어오며 나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나는 의아하여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범상치가 않았다. 한 사람은 키가 컸고, 다른 한 사람은 매우 작았다. 두 사람은 한 올도 빠짐없이 머리카락을 뒤로 돌라 묶었는데 머리털이 두피에 들러붙은 듯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허옜고 입술은 뻘겠다. 몹시 촌스러운 행색이었다. 그들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분명히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위아래에서 내게로 모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모른 척 그들을 지나치려 할 때, 그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키 큰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대학생이세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되물었다. “저요?”


“네. 대학생 맞으시죠?”


나는 키 큰 여자 뒤에 있는 사람을 슬쩍 보며 말했다. “네, 대학생인데요.”


“그러시구나. 혹시 교회 다니세요?”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답을 얼버무렸다. “네, 뭐.”


“그럼 성경 말씀도 많이 읽으세요?”


“아니요.”


여자 둘은 서로 눈을 짧게 마주쳤다. 키 큰 여자가 말했다. “저희는 같이 모여서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읽는 모임을 가지고 있거든요. 혹시 말씀을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이 있지는 않으셨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여자는 짙은 눈썹을 아래로 지나치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맞아요. 혼자서는 힘들죠. 그래서 같이 모여서 말씀을 읽고 나누고,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어디가 이상한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진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돼요.” 뒤에서 키 작은 여자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두 사람 모두 행동거지가 이상했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아니요. 지금 바빠서요. 바로 가봐야 돼요.”


“그러지 마시고, 말씀 같이 나눠요……” 키 큰 여자는 나를 잡으려 네 번이나 시도했다. 나는 바쁘다는 말을 반복하며 전속력으로 그들에게서 빠져나왔다. 몇 걸음 걸은 후에 뒤를 돌아봤을 때, 두 여자는 또 어느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역 주변에 있는 동네 치과로 들어갔다.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의 말은 이랬다. 어금니 뒤에 매복니가 비스듬하게 자라 어금니와 맞닿아 있다. 그 사이에 음식물이 자꾸 낄 수밖에 없어 앞에 어금니가 썩었다. 사랑니를 발치하고 어금니를 치료해야 한다. 덧니가 있어 치아 교정도 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손거울 앞에서 입술을 양 옆으로 벌려 치아의 배열을 확인했다. 사실 덧니가 난 이유는 내 탓이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치과에 가는 일이 무서워 치아가 흔들려도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번은 별로 흔들리지 않는 치아를 혼자서 빼겠다고 화장실에 혼자 들어갔다. 어린 그 손으로 치아 하나를 단단히 잡고 양 옆으로 흔들고 비틀었다. 통증만이 오를 뿐, 빠질 기미가 없었다. 나는 더욱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밀었다. 피가 나기 시작했고, 입안은 피로 물들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혼자서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치과에 가야만 했다. 손과 입이 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미끄덩거리는 이빨을 악착같이 두 손가락으로 집었다. 긴 씨름 끝에 나는 그 이빨을 겨우 뽑아냈다. 아마도 그때 나의 이빨은 엇나가기 시작한 것 같은데,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의사는 나에게 물었다.


우선 치료를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아 일단 의사의 말을 따라 사랑니를 발치하기로 결정했다. 간호사는 내게 연필과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가지고 와서는, 발치는 수술이기 때문에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오른쪽 아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했다. 오른쪽 어금니 주변을 따끔하게 마취를 하고 잠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감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눈앞으로 초록색 헝겊이 덮였다. 비장하게 수술이 시작됐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의 매복니 하나 때문에 고군분투를 했다. 눈이 가려져 있었고, 마취 중이어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보통일이 아니었다. 의사는 나의 오른쪽 턱 아래를 받치고 입 안에 무언가를 붙잡아 양옆으로 흔들기도 했고, 누르기도 했고, 잡아당기기도 했다. 보통 발치가 이렇게 심각하게 이루어지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내 입 안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짧고 굵은 한숨 소리가 들렸고, 이내 입술에 가느다란 실 따위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움직임이 여러 번 반복되었고, 가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폭신하고 따뜻한 물질이 입안에 가득 찼다.


의사는 나의 입을 다물게 하고 눈을 가리던 초록색 헝겊을 치웠다. 조명으로 눈이 부셨다. 불이 꺼졌고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술 전과 거의 비슷하기는 했지만, 한 차례 큰 바람이 불어 닥친 듯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의사가 말했다. “발치는 잘 끝났어요.”


그 말만을 남기고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얼떨떨했다. 의사든 간호사든 모두 수술 때문에 지친 듯이 보였다. 물론 나도 힘들었지만, 그들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간호사는 나를 로비로 데리고 나가서 종이와 얼음 팩을 건네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발치 후 주의사항이었다. 나는 입을 앙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다음 예약을 어렵사리 잡고 어머니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바로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자 오른쪽 턱에서부터 저릿한 통증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치과에서 받은 얼음 팩을 턱과 귀 사이에 가져다 대고 눌렀다. 통증을 마비시키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턱에서 통증이 심하게 올랐고 나는 방에 누워 끙끙 앓았다. 시계를 보았다. 벌써 이른 저녁이었고 나는 거울을 보며 입안을 채우고 있던 솜을 하나씩 뺐다. 시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입 안쪽은 흉물스러웠다. 솜을 거두자 고통은 더 심해졌다. 나는 얼음 팩을 얼른 대고 다시 누웠다. 고작 작은 수술의 통증만으로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꼴이 스스로가 불쌍하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차라리 잠에 들고 싶었지만, 통증은 나를 현실에 굳세게 붙잡아 두었다.


저녁때가 지나서 어머니가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노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와 나를 찾았다. 나는 방 한 가운데에 누워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이빨 뺐어요.” 입을 움직이자 통증이 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왜.”


나는 누운 채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오른쪽 주먹을 90도 비틀고 왼쪽 주먹에 가져다 대었다. “어금니랑 사랑니가 이렇게 닿아서 사이가 썩었대요. 그래서 뺐어요.”


어머니는 놀란 눈이었다. “그래서 얼마 나왔어?”


“얼마 안 나왔어요.” 나는 멍하니 어머니를 올려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의사가 교정하는 게 좋겠대요. 이가 고르지 않아서 충치가 많대요.”


“네가 무슨 교정이야, 덧니도 없는데. 그거 다 상술이야. 그냥 돈 벌려고 하는 말이야.”


“아니. 무슨.” 입 안에서 통증이 올라 말을 잠시 삼켰다가 붙였다. “검사 받은 거 보니까 위아래 어금니가 엇갈려 있어서 만나지도 않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잘 살았잖아. 밥만 잘 먹었는데, 다 괜찮아.”


나는 통증과 함께 짜증이 확 일었다. “아니, 교정 안 하면 나중에 더 고생한대요. 벌써 치료할 곳도 많다는데…….”


“그거 다 씌우거나 때우면 돼. 그럼 아무 문제없어.”


“아니, 어머니가 의사예요? 무슨 의사보다 잘 아는 것처럼 말해요.”


“엄마는 오래 살아서 경험이 많잖아. 주변에 교정한 사람들 보니까 나중에 나이 들어서 무조건 고생하더라.”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가만 보면 너는 다른 사람 말은 그렇게 잘 믿으면서, 엄마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듣더라? 어! 너 왜 그래!”


어머니는 갑자기 맥락 없이 언성을 높였다. 화가 나고 있었다. 분노에 이르는 감정의 단계를 모조리 생략한 듯했다.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지금도 그렇잖아. 그리고 교정하는 게 돈이 한두 푼 들어? 오백은 깨지는데. 지금 그럴 여유도 없어. 알았어? 돈을 떠나서 교정 하지 마. 그거 다 사서 고생하는 거야.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거지. 교정은 무슨 교정이야. 교정 굳이 안 해도 지금까지 다 잘 살았어. 아니 그 누구야. 그 연예인 있잖아. 티비에 나오는 그 사람들도 교정 안하고 그냥 사는데, 네가 뭐라고 교정한다고 난리야.”


“알았어요. 알았어요. 저 이 뺀데 아파요. 다음에 얘기해요.”


어머니는 방을 나가면서 외쳤다. 문을 닫지도 않았다. “다음은 무슨 다음. 교정 하지 말라고 엄마가 분명히 말했어!”


나는 발로 문을 밀어 닫고 다시 옆으로 돌아누웠다. 아팠다. 딱딱한 얼음 팩을 턱에 짓누르다시피 가져다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