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11

by 청화

알아듣기 힘든 강의에 출석하고 과제를 몇 차례 제출하자 대학은 축제 준비로 들썩였다. 어떤 교수는 학생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대학 축제의 일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예정대로 쪽지시험을 공지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교수는 대학의 축제를 기꺼이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대학의 축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인 줄 알았고, 마땅히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1학년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역할이 부여됐다. 축제 첫날에 학과 주점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손님에게 나르는 일이 맡겨졌다. 당황스러웠지만 재준과 같은 조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축제 첫날 이른 오후부터 학교는 난리였다. 나는 시간을 죽이며 도서관에 있었는데, 밖에서 요란하고 빠른 박자의 소리가 들이쳤다.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도서관에서 심각하게 공부를 하던 삼촌 같은 학생들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일찍 도서관을 나왔다. 가방을 사물함에 넣고 교정을 돌아다녔다. 학교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잔디밭, 넓은 길목이라면 어디든 천막이 쳐지고 주점이 생겼다. 그 안에는 포장마차에서 볼 법한 플라스틱으로 된 식탁과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자리가 실제로 필요한지 의심스러웠다. 아직은 어느 곳에도 손님은 없었고, 일하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축제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교정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더니 학교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에 맞춰 수학과 주점에 도착해서 선배들에게 간단히 교육을 받고 주문받을 준비를 했다. 다른 과와 딱히 구분할 수 없는 수학과 주점으로 사람들이 우연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확인했다. 유명 수학자의 이름을 빌린 메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주 이름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소시지볶음), 피타고라스의 정리(파전), 오일러의 정리(제육볶음), 대수학의 기본정리(골뱅이 소면) 등이었는데, 음식과 수학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했다. 사람들은 선불로 소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축제에 올 가수에 대해 평했고, 총학생회가 어느 정도로 축제에 힘을 기울였는지 척도로 삼는 듯 말했다. 해가 질수록 주점은 가득 찼고 시끌벅적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안주와 술을 나르느라 누가 오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나는 문득 재준을 찾았다. 이미 처음 보는 선배들과 술자리에 앉아서 술을 받아먹고 있었다. 속으로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쪽에서 그녀도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묶고 있는 탓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분명 그였다. 학과 사무실 앞에서 부딪쳤던 그녀였다. 그도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갔고, 주점은 흥성댔다. 주점 중앙에 앉아 있던 여자 셋과 남자 셋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주잔을 가운데로 모아들었다. 남자부터 낮은 음을 발성하기 시작했다. 순간 주점이 조용해지더니 주점의 손님과 지나가는 행인의 이목까지 그들에게 집중됐다. 곧이어 다른 남자가 처음보다는 높은 음을 내었고, 이어서 여자까지 차례로 순서를 이어받아 아, 하고 발성했다. 주점 가운데에서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여섯 명의 목소리가 한데 모이자 갑자기 그들은 술잔을 한 번에 부딪치며 “건배!”라 외치고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흥미로운 구경에 주변의 사람들은 밝고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누군가는 박수를 보냈다. 나는 화음의 주인공들이 미쳤다고 생각했고, 아마 성악과 학생들 정도가 아닐까 예상했다. 학과의 특징을 살려 건배를 한 창의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만약 수학과에서 건배를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주점 한가운데로 칠판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쉽게 생각을 그치고 안주를 날랐다. 서서히 주점 안은 활기를 띠다 못해 시끄럽고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많던 빈자리는 없었고, 온갖 대화가 섞여 들끓었다. 누군가 손을 들면 나는 부리나케 그에게 다가가 주문을 받고 돈을 받기를 반복했다. 나는 지쳐갔다.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언제까지 술을 마실 생각인 건지 막연히 가늠하며 물끄러미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하나둘 사람들의 시선이 주점 밖으로 향했다. 타닥타닥 빗소리가 들렸다. 주점 천막 옆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주 적은 비는 술자리에 운치를 더했겠지만, 빗방울은 서서히 굵어졌고 바람과 함께 주점 안으로 들이쳤다. 사람들은 부리나케 주점을 떠나기 시작했다. 금세 주점에는 운영하는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서둘러 기자재를 과방으로 옮기고 천막을 정리했다.


선배들과 과방에 모였다. 주점을 총괄하는 선배들은 이번 축제는 망했다는 둥, 금방 비가 그칠 거라는 둥, 술과 재료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둥, 푸념을 늘어놓았다. 한 선배가 1학년을 슬쩍 보면서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재준은 이미 취한 상태였는데 마치 신입생의 대표라도 되는 듯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 덕분에 신입생들 모두 인사를 하고 과방을 나왔다. 재준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함께 나간 학생들은 곧바로 흩어져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사물함에서 짐을 빼들고 1층 현관으로 나갔다. 여전히 비는 내렸다. 모르는 사람 몇이 현관에 서서 멍하니 내리는 비를 보고 있었고, 한 쪽에서 두 사람이 담배를 피웠다. 나는 우산이 없었고, 이 건물에는 우산을 살만한 곳이 없어 곤란했다. 편의점이 있는 가장 가까운 건물이 어디 있는지 떠올렸다. 마주 편 공과대 건물이 가장 가까웠다. 나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달릴 준비를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는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는데 다시 단발머리로 돌아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머리 위의 내 가방을 올려다보았다. “우산 없으세요?”


“아, 예.”


“어디까지 가세요? 씌워 드릴게요.”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 장우산이 하나 들려 있었다.


“저 앞에 공과대 건물까지요. 거기서 우산 사면 돼요.”


“지하철 타세요? 버스 타세요?”


“지하철이요.”


“그럼 역까지 같이 가요. 저도 어차피 역 앞에서 버스 타요.”


그녀는 우산을 폈고, 먼저 우산 속에 들어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졌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우산 속은 그녀와 내가 비를 피할 만큼 넓었지만, 나란히 걷기에는 좁았다. 자꾸만 팔뚝이 부딪히거나 어깨가 맞닿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으며 걸었다. 애써 주위를 살폈다. 갑자기 내린 비로 곳곳마다 세워져 있던 천막들은 무너지거나 사라졌다. 각 건물 현관마다 몇 사람이 내리는 비를 망연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길마다 어수선하게 축제의 잔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정문까지 걸어오면서 우리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내게 불편한 건, 그와 접촉이 일어날 가능성이었다. 혹시나 나의 부족한 말주변으로 상대가 침묵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건 아닌지 힐금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정면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빗속에서도 그녀의 진중한 눈동자는 여전했다. 서고에서 책을 바라보는 그 시선과 같았다.


빗소리만을 들으며 우리는 지하철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우산 속에서 나와 지하철 입구에 섰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았다.


나는 역 입구로 들어 계단을 내려가는데, 문득 그녀의 이름을 묻고 싶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역 입구로 올라섰다. 이미 그녀는 저만치 빗속을 걷는 중이었고, 내게는 우산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