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재준이 가장 바빴다. 수업은 전혀 듣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의 계획을 착실히 진행 중인 듯했다. 나는 강의도 재미가 없고 집중이 되지 않아, 강의실 뒤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전공 기초 과목이었기 때문에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은 같은 과 학생일 것이 분명했다. 맨 뒤에 앉은 탓에 사람들의 옆모습과 뒷모습만 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눈에 익혀 두는 것도 좋을 듯했다.
교수가 어조를 바꾸어 말했다. “수업과는 관련 없는 딴소리이기는 하지만……” 수업과 관련 없는 내용에는 더욱 집중이 되는 법이었다. “자연과학대를 구성하는 과들, 예를 들면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과, 지구화학과, 수학과 같은 과가 왜 자연과학대학에 속해 있을까요? 나는 그 지점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학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다른 과는 실제로 자연에 있는 대상을 다루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 나름의 귀납적인 방식으로요. 하지만 수학은요? 수학이 자연에 있는 대상을 다루고 있나요? 다른 자연과학대학의 과보다는 다소 거리가 있죠. 여러분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겁니다.”
강의실은 조용했다. “하지만, 수학과도 자연과학대에 속해있지요. 제 경우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연. 그러니까 한자로 하면 스스로 자에 그럴 연, 자연은 스스로 그런 것이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자연과학대에 있는 모든 과는 스스로 저절로 그런 것에 대해 질문하는 학문이고 그것을 연구합니다. 모두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고, 의문 삼지 않는 것을 우리는 질문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수학도 비슷하죠. 우리는 때로 당연해 보이는 것조차 의심하고 참인지 증명을 시도합니다. 아주 옛날의 일이지만 일 더하기 일이 이가 된다는 명제를 증명한 수학자도 있었고, 그 분량이 책 한 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우습게 생각할 수 있고,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그런 일을 하죠. 다른 학과처럼 우리 과 역시 스스로 그런 것, 아주 자연스러워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을 끄집어내고 질문하고 연역적인 방식으로 설명을 시도하는 학문이죠. 이렇게 얘기한다면 우리도 자연과학대에 속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은 명제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결국 증명하고 나면 그 모든 명제들은 사실 당연한 것들이 되죠. 으흠. 다른 얘기가 조금 길어졌네요. 다시 수업으로 돌아와서…….”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이른 아침의 볕이 들고 있었다. 창 바로 앞으로는 나무 하나가 자라 잎을 창문 가까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 바로 앞에 낯익은 옆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단발머리였고,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진중한 눈빛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녀였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녀, 축제날 함께 우산을 쓴 그녀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의 옆태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교수는 하얀 분필로 판서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재준이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말에 학생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재준은 늦은 아침 식사로 돈가스를 먹고, 나는 이른 점심 식사로 한식을 먹었다. 조촐한 부대찌개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식이었다.
재준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어디 아파? 어디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얼마 전에 발치했어.”
“혹시 사랑니?” 나는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재준이 물었다. “그거 꼭 빼야 해?”
“의사 말로는 내 사랑니가 이상하게 나서 바로 옆에 어금니에 안 좋은 영향을 준대. 그래서 뺀 거야. 내가 발치하고 나서 찾아보니까, 그렇게 잇몸에 매복되어 있는 이빨은 잇몸을 짼 다음에 무슨 기구로 이빨을 조각내서 뽑는다고 하더라고.”
재준은 인상을 쓰며 돈가스를 썰던 칼과 포크를 내려놓더니 말했다. “밥맛이 뚝 떨어진다.”
“미안. 아무튼 거기 이빨 뺀 자리로 밥알이 들어가서 불편해서 그래.”
“나도 사랑니 안 뺐는데.”
“그래? 끔찍한 게, 무료라고 해서 교정 상담을 받아보니까 의사는 사랑니를 애초에 세지도 않아. 원래 없어도 되는 이빨이라 교정 시작하면 모조리 빼야 하는 이빨이래. 그래서 내가 교정하면 이빨을 몇 개 뽑아야 하는 지 알아?” 재준은 다시 돈가스를 썰어 입에 넣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 하나 뽑았으니까, 남은 사랑니까지 세서 일곱 개를 더 뽑아야 한대.”
재준은 우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말했다. “일곱 개? 그래서 교정하려고?”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니. 내가 무슨 교정이야. 그냥 생긴 대로 살려고.”
“근데 사랑니 빼는 거 많이 아파?”
“응. 빼고 나서 앓아누웠어.”
나는 부대찌개의 국물로 반찬을 대신하여 밥을 한 숟갈 삼켰다. 재준이 말을 이었다.
“사랑니를 왜 사랑니라고 부르는지 알아? 빼고 나면 사랑만큼 아프다고 해서. 그래서 사랑니라고 부른대.”
“너 지금까지 사귄 적 없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 재준은 내게 입모양으로 심한 욕을 했다. 나는 딴청을 피우며 웃었다.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물었다. “요즘도 바빠 보이던데, 여자 친구는 생겼어?”
“아니, 아직.”
“그게 진짜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마무리가 잘 안 돼.”
“그래도 대단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보면.”
“칭찬이지?”
“물론.” 나는 재준을 빤히 보다가 말을 이었다. “널 보면 맞는 말이긴 한 모양이야.”
“무슨 말?”
“사랑이 아프다는 말.” 재준은 나이프를 든 손으로 내게 위협하듯 들어 보였다. 나는 웃음을 삼키고 밥을 먹었다.
재준이 불평하듯 말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도대체가 쓸모 있는 걸 배운 게 하나도 없어.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방법이라거나, 나와 잘 맞는 연애상대 찾기라거나, 뭐 그런 걸 더 배웠어야 하는 거야 아니야? 실제로는 그런 게 훨씬 더 중요하잖아.”
“그래도 너는 잘하는 것 같은데.”
“뭘 잘해. 잘하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대학에 가기 전에 그런 것도 좀 가르쳐 주면 얼마나 좋아. 국영수 말고 말이야. 그런 걸 배우지 않아서 나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잖아. 내 방법을 찾으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다고. 아까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얘기해주실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 내가 지금 하는 방식은 귀납적인 방식이라고.”
“귀납적인 방식?”
“그래. 여자 A는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다음에 여자 B는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여자 C는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사례들을 하나씩 모으는 거지. 그러면 나는 결정해. 그렇구나, 여자는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다 그렇지는 않잖아.”
“그렇지. 분명 반례의 여자가 있을 거야. 근데 원래 귀납법으로는 일반적인 결론을 유도할 수는 없잖아. 오류가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 하지만 나름 사례를 많이 모아서 그럴듯한 결론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대화를 할 확률이 높아질 거 아니야. 드라마를 좋아한다거나, 요즘 유행하는 장소라거나, 맛집이라거나, 그런 얘기를 하나씩 시도하면 모든 주제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성공적인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너 이렇게 똑똑하면서, 공부는 왜 안 해.”
“말했잖아. 나는 이제 내 계획대로 할 거야. 대학에 가면 자유로울 거라고 내게 다 거짓말을 했지만 이제 상관없어. 내가 그렇게 하면 돼.” 재준은 돈가스를 썰다가 손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까지 여자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또 하나 얻은 명제가 있어.”
“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슬픈 말이지만 사실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일반적으로도 맞는 말 갖고. 특히 내 경우에는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더라고.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좋아하게 만들 수도 없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준은 돈가스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입을 뗐다. “참, 너 이번에 시험 되게 잘 봤다면서. 네가 그 수업 이 등이라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한영수.” 재준은 대견한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음흉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 등 누구인지 안 궁금해?”
“별로.”
“재미없게. 궁금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네가 일등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이 등인 거잖아.”
“일 등, 누군지 알아?”
“그래. 박인영 이래.”
“누구야?”
“나도 잘 몰라. 그냥 그렇대. 보나마다 교복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겠지.”
이빨이 빠진 자리로 들어간 밥알을 빼기 위해 나는 혓바닥 끝을 힘주어 굴렸다. 잘 빠지지 않아 이내 포기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 양치하기로 결정했다. 재준은 식사를 마치고 동아리 방으로 갔고, 나는 혼자 교정을 산책했다.